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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Jan 30. 2024

작년이 나에게 좋았던 이유

이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운동이 된 달리기에 관하여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 캘린더에 일정을 기록해두는 습관을 들였다. 캘린더를 쓸 때 가장 좋은 점은 내가 잊어버릴 것 같거나 절대 잊으면 안되는 일정이 기록하는 행위와 동시에 예외없이 장기기억으로 넘어간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좋은 점이 있는데, 그것은 캘린더를 쓰면 미래의 일정뿐만 아니라 과거의 일정도 한 눈에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달 몇 번째 주는 모임이 많았고, 그 다음 주는 혼자 하는 활동이 많았네'라는 식으로 분석하는 재미도 쏠쏠한 것 같다. 길게 일기를 남겨놓는다면 쓴 그 날로 돌아가 인생을 다시 사는 것 같을 때가 있어서 좋지만, 캘린더로 한 눈에 보는 한 달과 일년은 그것을 바탕으로 분석과 평가를 할 수 있게 되어서 좋다. 



  오늘로 작년이 되어버린 2023년을 한 눈에 캘린더로 살펴봤을 때 내가 느낀 점은, 한 해동안 빼곡히 일정이 채워져있었다는 것이다. 내향적인 나에게 있어서는 거의 유례없이 연말즈음해서 모임이 많기도 했고, 신앙생활 관련하여는 이미 일정이 많아 교회 행사에 잘 참여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가장 희망적이었던 것은 처음으로 시도했던 것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연초에는 노래와 발성을 배우러 서울까지 왕복하기도 했고, 직장 안에 있는 직장 동호회에 나름 열띤 마음을 품고 가입을 결심했고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활발한 직장생활을 위해 필수가 아닌 회식과 교육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보기도 했으며, 출퇴근과 업무에 필요한 운전 연수를 받는 것도 무사히 실천했다. 그 밖에 봉사활동에 참여해보고 글쓰기 강의에 나가보는 것도 시도해봤는데 둘 다 예상외로 적성에 맞고 기쁨을 가져다주어서 집중적으로 지속해 나아갈 생각이 들었다. 또한 고등학교 이후로 거의 잊고 지냈던 독서에 대한 열정도 다시 되살린 것에도 성공을 했는데, 이렇게 풍성한 한 해를 어떻게 보낼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 보자면 이렇다.



  예전부터 나는 체력하면 그야말로 젬병이었다. 체력은 수치같은 것으로 확연히 알아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내가 체력이 좋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다른사람에 비해 피곤해하고 말수가 적어지는 타이밍이 훨씬 빠르게 왔고, 빈번하게 발생했기 때문이다. 나는 감정노동이라는 말도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처음 듣자마자 곧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다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게 감정노동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한 친구는 내가 조용히 있으면 자신의 말을 재밌게 생각해 집중하는 줄 알고, 더 관심도 없는 이야기를 끌어다가 빠르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다가 거의 번아웃처럼 피곤해진 적도 몇 번 있었다. 몸으로 하는 활동도 당연히 예외는 아니었다. 나에게 밤을 새서 무엇이든 하는 건 거의 고역에 가까웠다. 노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 내가 2023년 3월중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원래 같이 하는 스포츠보다는 혼자하는 것에 약간 더 자신이 있었고, 수치, 기록상으로 확연히 성장 과정을 볼 수 있는 일을 좋아했다. 그래서 달리기에 더 끌렸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2km를 달리는 것이 큰 과제였다. 한 번에 쉬지 않고 달리는 것에 큰 보람과 성취감을 느꼈던지라, 2km를 하루에 달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점점 거리를 늘려보는 시도를 했는데, 처음에는 2km에도 숨이 턱끝까지 차고 다리가 아파왔다. 온갖 귀찮음과 통증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3km를 뛰어봤는데 예상 외로 몸은 멀쩡했다. 그러한 과정을 반복해서 5km까지 뛰어보기도 했고, 1시간을 쉬지 않고 조깅 페이스로 뛰어본 적도 있다.



  그러던 2023년 5월초, 성남의 탄천 어느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5km를 달리고 다시 돌아서 5km를 완주하여 10km를 쉬지 않고 주파하는 데 성공했다. 10km를 모두 완주하고 나서의 뿌듯함은 어떠한 높은 목표를 성취하고 난 뒤의 감정과도 비할 수 없다. 그것은 특별하기 때문이다. 다리와 폐는 기진맥진해서 이완되어 휴식을 요구하고 있고,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지만, 머리와 심장만큼은 성취감으로 희열을 느끼는 기분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오늘만큼은 두다리 쭉 뻗고 꿀같은 잠을 잘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10km의 벽을 허문 그 이후로도 쭉 10km를 무리 없이 완주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10km의 거리는 지금 생각해도 길지만, 그 당시의 기분을 또 느끼고 싶어서 그 이후로 여러 번 달렸다. 10km를 완주하고 나서는 하프를 도전하여 지금까지 하프 마라톤을 2번을 완주한 기록을 갖게 되었다. 모 예능에 출연한 웹툰 작가처럼 나도 올해 풀마라톤을 꿈꾸며 맹연습을 마음먹고 있는 중이다. 달릴 수 있는 거리를 측정하다보니 거리가 늘어가는 재미에 맛을 들리고, 같은 거리에 시간을 단축하는 속도 연습도 하다보니, 체력이 안 늘래야 안 늘수가 없었다. 그렇게, 2023년 초에 시작한 달리기라는 운동이 나비효과가 되어 올해 내가 살아가는 방식들을 바꾸었다고 나는 분석한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을 이제는 진실로 믿게 되었다. 끊임없이 현재라는 발판을 올라타며 살아가는 나에게 과거의 기록들이 말해주는 것을 듣기만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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