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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Jan 31. 2024

단순한 마음으로 전진하는 것

  내가 특히 좋아하는 영화나 소설속의 장면들이 있다. 등장 인물이 어떤 목표를 위해 무엇을 하든지 간에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한 발자국씩 계속 전진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장면들이다. 최근 본 영화의 리뷰 영상에서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아무런 목표 없이 살아가던 한 여자가 복싱에 입문하여 대회까지 나가는 내용의 영화의 요약본을 본 적이 있다. 마지막에 결국 대회에서 KO를 당해 패배하고, 대회가 끝나자마자 남자친구와 재회하여 품에 안기는 장면도 꽤 감동적이었으나, 주인공이 복싱 대회를 준비하며 매서운 눈으로 샌드백을 주먹으로 내리 꽂는 장면들이 기억 속에 남아 아른거린다. (영화의 제목은 '백엔의 사랑'이다)


  그런가 하면, 목표가 어떤 것이 됐든, 목표로 전진하는 과정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묘사'때문에 기억에 남는 소설도 있다.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라는 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 다무라 카프카군은 15살에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아버지의 집에서 가출을 하고, '세계에서 가장 터프한 15세 소년'이 되기 위해서 한 도시의 헬스장과 도서관을 매일 정기적으로 다니는데, 그 장면을 구체적으로 서술한 장면에서 나는 예상치 못할 정도로 큰 동질감과 동기 부여를 함께 느꼈다. 책을 읽으면서 마치 내가 카프카군이 된 것처럼, 고무라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다카마쓰의 한 헬스장에서 열심히 맨몸 운동하고 무게를 쳤다. 책을 덮고 나서도, 자연스럽게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샘솟기도 했다.




  이처럼 단순하고 올곧은 마음이 되어서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가장 멋진 일이고, 가치있는 일이고, 따라하고 싶은 일이다. 그저 따라하고 싶을 뿐만이 아니라, 나만의 행동양식으로 안성맞춤으로 만들어 꾸준히 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과연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지, 즉 목표의 내용이 중요할까?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자신의 신념에도 부합하는 선한 목표라면 아마 그것을 향해 전진하는 것에는 도의적으로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 것을 문제삼지 않는다고 해도 또 한 가지가 걸린다. 그 목표가 내가 실제로 원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앞에 소개한 두 작품의 주인공들은 아주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거의 한 폭의 이미지나, 한 문장의 구호에 불과할 정도로 아주 사소해보일 법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백엔의 사랑'에서는 주인공이 승자와 패자가 서로 결투를 끝내고 악수하고 포옹하는 짧은 장면을 꿈꾸고, '해변의 카프카'에서는 청소년기에나 가질 법한 '세계에서 가장 터프한 15세 소년'이 되기 위한 목표를 꿈꾼다. 주관적으로 그들에게 가장 큰 가치일 수도 있겠으나,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것들이라도 그것들이 자주 뇌리에 떠오르고 진정으로 원하기만 한다면, 우리 자신에게 가장 큰 목표가 될 수 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짧은 순간인, 목표를 설정하는 일이나 목표를 이룬 결과의 시간이 아니라,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까마득히 길고, 무수히 많은 시도가 존재하는 시간들인 것이다. 우리는 그 과정을 즐길 수만 있다면, 아니 마땅히 즐길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행복한 삶이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 장면에서 한 이야기속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끼며 멋있고, 즐겁고, 가치있게 여겨 보도록 해보자.




1968년이 오자

프라하의 봄이 끝났다

레드 제플린이 결성되었다

김수영이 죽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여전히 태어나지 않았다

비가 내리자

나는 단순하게

잠깐 울다가

전진하였다



이장욱, '좀비 산책' 中




  물론 행복이란 보장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것이 아니고, 실로 다루기 어려운 주제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시인 이장욱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단순하게 생각하고 전진해야지만 우리들이 하고자 하는 것들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하나의 목표를 이루고 그 다음의 것으로 진행시키면서 인생이 무엇이고, 세상이 무엇인지 조금 더 알게 될 것이다. 1968년처럼 꽤 오래 전 먼 시절에도 사람들은 살아갔고, 살다가 결국에는 죽어서 땅에 묻혔다. 그들이 자손들을 낳고 기르며 그 과정들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 데에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슬픈 일이 있더라도 '단순하게 잠깐 울다가' 목표를 향해 전진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들을 가장 가슴 뛰게 하며 오랫동안 살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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