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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Jan 29. 2024

나의 수험생활을 함께 한 밴드, 전기뱀장어

듣고 또 들었던 앨범 <fluke>에 대하여

  때는 3년 전, 준비하던 시험이 있어서 매일 스터디카페에 출근하던 때의 이야기이다. 나는 수험생으로써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이었고, 공부가 밥을 먹여준다는 사실에 전혀 의심치 않았다. 따라서 하루하루 공부 진도를 빼며 열심히 공부했다. 때로는 하루 정도 빼먹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날씨가 좋은 날에는 햇빛을 쬐기 위해서라도 나가고, 날씨가 궂은 날에는 오늘만큼은 빨리 진도를 빼고 집에 일찍 돌아와 쉬자는 마음으로 스터디카페 출근 길에 올랐다. 코로나의 여파로 몇 번은 공부장소가 도서관이나 다른 스터디카페로 바뀌기도 했으나, 나는 대부분의 공부장소로의 출근길을 좋아했다. 몇몇 길은 아기자기하기도 했고,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이기도 했다. 오늘 하루 많은 내용을 공부하리라 다짐하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귀에 이어폰을 껴고 스마트폰의 재생버튼을 누른다. 흘러나오는 음악은 웹서핑을 하다가 커뮤니티에서 우연히 발견해서 좋아하게 된 인디밴드' 전기뱀장어'의 노래였다. 제목은 '낚시왕의 사랑'


  오늘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를 해야된다는 것 외에는 달리 할 것도 없었고, 공부를 하기만 한다면 다른 것들에는 자유가 보장되었다. 공부하는 내용 자체는 아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읽고 암기하면 풀 수 있는 문제들이므로, 공부를 하는 일은 머리를 쓰는 단순 노동과도 같았다. 한 과목을 집중적으로 파서 공부하다가도 머리를 식힐 겸 다른 과목의 공부 계획을 한번 세워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출출함에 점심을 먹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친구에게 카톡을 한다. 아직 공부를 하고 있던 친구가 1시간 정도 뒤에 답장이 온다. 친구와 함께 나가서 근처의 돼지불백을 하는 집에 가서 맛있게 한 끼를 마친다. 여유롭고도 태평한 시간들이 흘러간다. 마치 휴양지에서나 느낄법한 시간의 흐름이 약간 경계할만큼이나 흘러갔을 때, 나는 자리에 복귀하기 전에 노래 한 곡 만 듣겠다고 다짐한다. 귀에 들리는 곡은 전기뱀장어의 '적도'이다.


  때로는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고역일 때도 있었다. 더 이상 앉아있고 싶지도 않고 펜을 들고 싶지도 않을 때는 잠시 자리를 비우고, 겉옷을 챙기고 나가서 산책을 했다. 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을 때도 있었는데, 그때는 우산을 가지고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간다. 산책을 갈때마다 듣는 곡은 다양한듯 싶다가도 어느새 한 두 가지의 곡으로 수렴되곤 했다. 내 답답한 심정과 풀리지 않는 고난도 문제, 그리고 진행되지 않는 진도에 막막해지면 내 심정을 대신 토로해주는 듯한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된다. 그 노래의 제목은 전기뱀장어의 '미로'이다.


  집에 돌아가는 길은 항상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하루를 잘 살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할 것 같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오늘도 계획한 만큼 하지는 못했고, 그냥 '열심히만' 했다. 그래도 이렇게 공부하다보면 언젠가는 끝까지 다 할 것이고 시험날은 다가올 것이다. 그때까지만 버티고 살아내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러다 운이라도 좀 따라주면 합격하지 않을까? 적적한 마음에 뭐라도 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이어폰을 귀에 낀다. 재생버튼을 누르니 또 전기뱀장어의 노래가 나온다. 또 같은 앨범의 노래이다. 제목은 '행운을 빌어'


  이 노래들 뿐만이 아니라, 별 관심은 없었지만 어느 순간 꽂혀서 계속 듣게 되었던 '이별순간' 문득 비오는 날 누군가를 기다리는 먹먹한 마음에 괜시리 공감하게 됐던 '주륵주륵주르륵' 남모를 신세한탄에 고개 숙일 때 냉수 한 잔과 같은 청량감을 줬던 '트램폴린' 그리고 미처 소개하지 못한 곡들도 모두가 주옥같은 곡들이다. 항상 내 수험생활과 같이 했던 <fluke> 앨범은 닳고 닳아 내 뇌에까지 새겨지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듯 한 아티스트, 한 앨범에만 푹 빠져서 그것만 들었던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특별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그래서 시험에 합격하고 취업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fluke>를 전곡 재생하는 일은 많았다. 그러던 어느날 검색으로 우연히 전기뱀장어가 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냉큼 반가운 마음에 결제를 해놓고 가기로 마음 먹었다. 재작년 겨울 어느 토요일, 서울까지 가서 직접 밴드 전기뱀장어를 보고 음악을 듣게 된 나는, 여러 번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참았다. 그들의 일상 이야기와 음악에 푹 빠져 추억 여행을 하다가 끝나는 시간이 훌쩍 다가와버렸다. 수십번도 듣던 이 노래들을 내가 직접 듣게 되다니. 기타리스트 김예슬은 관객 들에게 다음을 기약하며 자리를 떴고, 나도 다시 한번 그들을 보겠노라 다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객석과 무대가 가까웠던 공연장을 뒤로 한채 밖으로 나섰다.

2021년 12월 11일


  그러던 전기뱀장어가 이제는 두 명의 멤버가 탈퇴하고 원맨 밴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안타깝고 섭섭한 마음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제는 리더 황인경만이 자리를 지키는 전기뱀장어를 응원한다. 언제나 전기뱀장어만의 청량하고 에너지넘치는 음악을 모두에게 계속해서 들려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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