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나의 네 번째 기독교 뮤지컬이었다. <ABBA:아바>와 같은 기독교 뮤지컬을 관람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시작하기 전에는 성경의 내용을 재구성한 뮤지컬이 얼마나 대중적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들어갔다가 극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까맣게 잊고, 끝날 즈음 돼서 무대를 향해 박수를 치며 그것이 쓸데없는 걱정이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생동감 있는 음악과 각양각색의 뮤지컬 넘버들, 풍성한 감정 표현, 과한 듯 결코 과하지 않은 역동적인 안무와 춤, 숨을 죽이며 귀 기울이게 되는 드라마틱하고 강렬한 화음까지. 풍성한 음악과 무대가 펼쳐지는 시간은 전율하고 그렇지 않은 시간에는 무대 뒤에 감추어진 성경적인 메세지들을 바라보게 된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묵상하다 보면, 배우들이 읊조리는 가사가 입체적인 말씀으로 각자의 마음으로 다가온다. 그러다 보면 뮤지컬 속 요나가 고민하던 것들을 나도 고민하고 있었고, 요나같이 완고한 모습이 내 안에도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아무도 없으며, 성경 속 인물들이 겪는 고난과 유혹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을 생동감 있게 재현해낸 무대 위의 인물들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뮤지컬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선지자 요나의 이야기와 탕자 이야기이다. 여기서 탕자 아버지의 큰 아들 이름 역시 극 중에서는 '요나'이므로, 선지자 요나와 그와 우연히 같은 배를 타게 되는 큰아들 요나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큰아들 요나의 이야기를 보면서, 나는 아버지가 큰아들과 작은 아들인 탕자를 바라보며 가졌을 감정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로써 재현된 각본에 마음 깊이 공감을 하게 되었다. 성경의 텍스트만으로 읽어 내려갔을 때는 느끼지 못했을 생생한 장면이다. 물론 성경은 말씀 그 자체만으로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영혼과 관절 깊숙한 곳으로 꿰뚫지만, 재해석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재현으로써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장면을 뮤지컬로 관람하며, 나는 탕자인 동생보다는 형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공감을 더 크게 한 것 같다. 단순히 공감만 한 것이 아니라, 형의 감정이 단지 동생이 잘되는 것에 대한 질투였을까, 아니면 아버지의 마음을 오해한 것에서 비롯된 분노였을까라는 의문도 생기게 되었다. 어느 쪽이든, 동생이 아버지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음을 부정하고, '마음 속으로 아버지를 죽였다며' 상처를 주는 등 아버지와 재회하는 것도 방해할 정도로 눈덩이처럼 불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선지자 요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희극적인 요소가 많다는 점에서 마음을 놓고, 여유롭게 힐링할 수 있는 시간으로 느껴졌다. 인생이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격언처럼, 요나의 이야기는 무대와는 먼 관객석에서 바라볼 때, 그저 재밌고 안쓰러웠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방방 뛰며 "하나님 차라리 저를 죽여주세요"라고 밥 먹고 숨쉬듯 외치는 요나를 보고 무슨 마음이 들으셨을까. 나는 끝까지 요나에게 자비로운 로고스를 보고, 박넝쿨을 발견한 요나처럼 마음이 따뜻해졌다. 결국 마지막에는 완고한 선지자 요나의 회개를 받아내시는 모습은 놀라웠다. 정리하자면, 선지자 요나에게는 끝까지 인내하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에게 따뜻한 은혜를, 큰아들 요나에게는 두 아들 모두에게 항상 공평하신 하나님에게 경외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뮤지컬을 가장 효과적으로 압축해서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 있다면 바로 선지자 요나가 아버지에게 달려가 품에 안기는 장면이다. 두 이야기는 이질감 없이 융화되었고, 멋진 시너지를 이끌어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