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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Sep 06. 2024

빌딩 숲 속의 자연인

삼성동 오피스텔 일주일 살기 中

  노란색 LED 조명이 줄줄이 서가를 밝힌다. 복층 구조로 층고가 높은 천장까지 온통 책으로 채워져 있는 이 곳은 강남구 삼성동의 별마당 도서관. 이곳에 오면 책도 인테리어가 될 수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책 구경을 실컷 하고, AI 기술을 활용한 코너로 박목월 시인의 시를 육성으로 듣기도 했다.


  이책 저책 살펴보며 여유있는 문화 활동을 할 수도 있으나, 이런 곳에서는 사람 구경이 빠질 수 없다. 기다란 개방형 책상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주로 어린 청소년들이나, 신문을 보는 중년 남성들이 많았다. 공립 도서관과 큰 차이는 없으나 이 공간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외국인들도 많이 있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동행하는 외국인 부부들도 있는 걸로 봐서, 아주 어쩌다 방문하는 관광지는 아니라는 느낌이다. 아이들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책을 고르거나, 또래 아이와 서로 어울렸다. 별마당 도서관은 꽤 인기있는 명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독서라는 목적을 위해서 방문하기엔 사람이 너무 많고, 책을 고르기에도 자료별로 쉽게 구분되어있지 않아 좀 번거로울 것 같았지만, 장소가 주는 나름의 주관적인 애착이 있을 것이다. 또한 개방된 공간이라서 탁 트인 느낌을 주었기 때문에 그럴만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삼성동의 스타필드에는 그밖에 대형서점을 비롯한 각종 쇼핑몰과 영화관 등이 있었다. 큰 목적없이 몇 시간째 구경하고 쇼핑도 하고 시간을 보내다 보니 벌써 저녁이 된다. 숙소에 가면 며칠 전에 마트에서 사두었던 팩에 들어있는 육개장과 계란과 훈제 오리고기를 떠올린다. 집에 와서 간단하게 한 상 차리고 나면, 내가 이렇게 스스로 밥상을 차려본 지 꽤 오래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1시간 뒤에도, 내일도, 모레에도 혼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시간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느긋한 마음으로 요리를 하고, 밥상을 차리고, 식사를 한다. 이는 오직 나 자신만을 챙기기 위해서이다. 나의 행동이 오직 나만을 위한 것이고, 이 행동을 누군가가 대신 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나에게 익숙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무척 즐거운 일이기도 한 것 같다. 나 한 몸도 건사하기 힘들다고 느끼는 세상에서, 적어도 나 자신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축복이자 감사의 이유로 느껴지기도 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데에 점점 익숙해진 나는 아예 오늘은 가까운 탄천으로 나가서 러닝을 해보기로 한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러닝화는 가져오지 않았지만 평상시에 신던 나이키 에어맥스로 만족하기로 했다. 삼성역 1번출구를 나와서, 이름 모를 짧은 다리를 지나 탄천에 도착한다. 20분 가량 뛰고 걷고, 다시 그 만큼 뛰기를 마친 나는 온 몸으로 땀을 흠뻑 흘렸다. 땀을 잘 배출하는 운동복이 젖어서 2배는 더 무거워질 정도로 열심히 운동하니 몸은 한결 가뿐하고 정신은 개운하다. 서울 밤의 시원한 바람이 불자, 잡생각은 말끔히 사라지고 휘파람이 절로 나온다. 낯선 풍경과 그 속에서 느끼는 낯선 기분에, 내가 살아왔던 삶, 유지했던 생활과 완전히 다른 것들이 펼쳐지고 있음을 새삼 실감한다. 그리고 그 기분은 혼자 느끼며, 혼자서 발견한다. 외롭긴 해도, 우울하진 않다. 낯설은 기분이지만, 싫지 않다.


  다음 날에는 행동 반경을 조금 넓혀서, 용산구 쪽으로 가보려 한다. 동생이 며칠 전에 알려준, lp판을 판매하는 '바이닐앤플라스틱'이라는 매장이다. 원하는 사람은 청음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한국에는 서울같은 대도시에도 lp판을 취급하는 곳은 드물다. 그런데 청음까지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니, 꼭 가보고 싶었다. 전신 거울을 살펴보니 사람들에게 치이며 경험하는 스트레스가 없어서인지 살도 많이 빠져있다. 내일도 많이 활동해서 문화 생활도 하고, 살 빼는 데에도 집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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