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공원(Yulim Park)은 유성구청 앞, 갑천이 두 갈래로 나뉘는 곳에 위치한 작은 공원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제법 규모가 되는데, 카이스트 쪽문으로 나가면 바로 찾을 수 있었던 공원이기에 너무 친숙해서 나만의 쁘띠 (petit; 프랑스 어로 '작은'이라는 뜻이다.) 공원처럼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의외로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은 유림공원을 자주 오가지는 않는다고 하는데, 어쩌면 유림공원을 남들보다 더 많이 찾는 이유도 내가 낭만꾼이기 때문일 것이다.
유림공원은 학생들이 찾는 술집이 많은 어은동, 궁동과 봉명동을 모두 이어주는 음주적 요충지에 있다. 굳이 따지자면 만년동과 월평동에서도 걸어서 이동할 만한 거리다. 그것은 진탕 취한 당신이 잘 조경된 호수변과 공원을 거닐며 정신을 차리기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또는, 안주는 충분히 먹었고 가볍게 n+1차를 즐기고 싶을 때 노상을 까기도 적절한 장소라는 뜻이기도 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유림공원에서 노상을 깠던 기억들은 모두 제법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학부 1학년, 달과 호수가 잘 보이는 벤치에 앉아 팩소주에 빨대를 꽂아 마시며 더럽게 쓰네, 얼굴 찌푸리고 궁상 피우던 것. 2학년, 술 제일 잘 먹던 은막의 동기 후배들과 전망대 정자에 올라 해 뜰 때까지 소주를 해치우던 것. 딸기 파티 시즌, 자리를 잃은 OB 늙은이들끼리 돗자리를 들고 나와 치킨 시켜다가 맥주를 한참 먹던 것도 다 좋은 추억이다. 공원 음주는 불법 아닌가요? 그런가요, 잘은 모르지만 유림 공원에서는 매년 재즈 & 맥주 페스티벌도 열린답니다.
완벽한 하루를 선물해 주었던 작년의 (재즈 &) 맥주 페스티벌
나는 요즘도 밤을 새웠다거나, 고단하고 보람찬 하루를 보낸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종종 치킨을 포장해서 유림공원을 찾고는 한다. 해 질 녘 잔디밭에 앉아 치킨을 뜯으며 맥주를 마시고 있으면 서울 사람들의 한강 놀음이 부럽지 않다. 현대인에게 여유는 사치라고 했던가, 그런 사치를 누리는 기분이 제법 행복하다.
노상(路上)이라는 단어에는 사실 음주의 의미가 없다. 그냥 길바닥 위라는 뜻이다. (feat. 노상방뇨) 그러나 낭만은 의미가 없는 것에 새로운 의미를 더하는 것이 낭만. 그런 의미에서 노상은 그 단어부터가 1 티어 낭만이 아닐 수 없다. 아, 노상의 다른 뜻으로는 "언제나, 변함없이, 늘, 줄곧"이라는 뜻도 있다고. 그렇다면.
나는 노상 음주를 즐기는 사람이고 싶다.
수석과 분재
국화와 낭만이 가득한 유성국화축제
유림공원과 어은교 일대에서는 매년 이맘때쯤 "유성국화축제"라는 것이 열린다. 유성구와 국화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겨울을 앞둔 10월 마지막으로 꽃구경을 하염없이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좋은 행사라고 생각한다. 각양각색의 국화와 핑크뮬리 등 화초로 거리를 물들이고, 국화를 테마로 한 여러 조형물들을 세워 포토 스팟을 여럿 제공하는 한편, 간소하지만 푸드트럭도 몇 개 와서 간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구민들이 부담 없이 즐기기에 좋은 축제이다. 그중에서도 아주 주관적인 내 소견으로는 유성국화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수석과 분재 전시이다.
쉬운 단어로 말해서 수석(壽石)은 예쁜 돌, 분재(盆栽)는 예쁜 식물을 말한다. 매년 어은교 아래에서 수석 전시가 있다는 것은 알았으나, 국화를 중심으로 한 분재 전시가 있다는 것은 올해 방문에서 처음 알았다. 아래 사진들을 보면 알겠지만, 분재 정말 아름답더라... 그 모양새나 기품에서 느껴지는 멋도 있었지만 이렇게 식물을 가꾸기까지 사람들의 노고와 애정이 함께 느껴져서 더욱 가치 있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수석 전시보다 더 자주, 더 크게 감탄하며 감상을 했다. 어느 정도의 감동이었냐면, 관람을 마치고 며칠 지나 퇴근을 하는데 날이 추워서 식물들이 잘 있으려나 걱정이 들 정도였다. (내가 주인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면서 꽤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이공계 대학원생이라 그런가, 수석은 자연과학, 분재는 공학과 닮아있다 싶었다. 아름다운 돌은 "발견"하는 것이다. 수석은 관심을 갖고 자연을 바라보는 이에게 선물처럼 다가오는, 불변의 아름다움이다. 그것은 자연이 빚어낸 것이고, 인간이 그것에 변형을 가하려고 하면 오히려 그 가치가 떨어진다. 반면, 분재는 "발명"에 가깝다. 어떤 인위적인 목적에 맞춰 설계되고 미세조정을 거쳐 변형되어 의도에 맞게 모습을 갖춤으로써 가치를 얻게 된다. 그 아름다움은 지속적인 관리와 보수를 통해 유지되며, 그럼에도 결국 어느 순간에는 수명을 다하기 마련이다. 좋은 분재는 종종 수석 위에 뿌리를 내림으로써 멋이 더해지기도 하는데, 그것 역시 공학은 자연과학 위에 기틀을 잡는 것처럼 상징적으로 다가왔다.
이거 진짜 상징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자연과학보다는 공학의 길을 걷고 있는 내가 분재에서 더 큰 매력을 느끼는 것도 어쩌면 필연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자연 속에서 정말로 빼어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의 기쁨도 비할 데 없이 크겠으나, 기술은 그것을 기르고 가꾸는 '주인'이 있고, 생명이 있다는 점에서 더 개인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막상 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수석 애호가들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돌을 찾기 위한 노력이 식물을 기르는 데 필요한 노력보다 작을 리 없다. 식물을 기른 사람만큼이나 그 돌을 찾은 사람이 임자인 것도 맞고, 돌은 관점에 따라선 무생물이나 한편으로는 영원 불멸한 생명의 존재이기도 하다.)
나는 유한함의 아름다움이 좋다. 어떤 기술이든 한계가 있고, 더 나은 기술에 의해 밀려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 기술을 개발하고 개선해 나가는 과정이 온전히 나의 과정이어서 좋다. 내 생각과 의도가 반영된 연약한 존재에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좋다. 수석은 내가 발견하지 않아도 수석이지만, 분재는 내가 가꿈으로써 잡초가 아닌 화초가 된다는 것이 좋다.
별안 든 생각이지만, 수석과 분재의 비유가 이학과 공학에 대한 제법 적절한 비유가 아닐까 하여 궁금해졌다. 혹시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친구들은 정말로 수석에서 더 큰 매력을 느끼려나? 술자리에서 한 번쯤은 이야기 나눠보고 싶은 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