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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용구 Sep 26. 2023

헤드라인의 중요성

같은 뉴스, 다른 반응

    어제 오후 올라온 기사 두 개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다음은 하나의 소식을 다루는 두 기사의 헤드라인입니다.


A. "치마 속 찍던 남성 손 '덥석'.. 휴무날 불법 촬영男 검거한 '막내 순경'" (파이낸셜뉴스, 23.09.25)

B. "치마 속 찍던 팔목 덥석... 휴무날 불법촬영 검거한 '막내 女순경'" (중앙일보, 23.09.25)


   직접 링크를 클릭해서 확인해 보면 아시겠지만, 두 기사는 제목부터 내용까지 정말 많은 부분에서 비슷합니다. 아마 양산형 인터넷 뉴스가 으레 그러하듯, 하나의 보도를 베껴다가 표절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만 문장을 수정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사 작성 시간은 A 언론사가 먼저이긴 한데, 더 찾아보니 그 이전에 작성된 기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커다란 차이가 있는데요. 혹시 눈치채셨나요?

    먼저 A 언론사는 기사 제목에서 피의자의 성별을 강조한 반면, B 언론사는 해당 남성을 검거한 순경의 성별을 굳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A 기사는 본문에도 순경의 성별 정보 언급하지 않습니다.) 썸네일로 사용되는 첫 이미지로도 A 언론사는 기사 내용과 관련 있는 CCTV 장면을 보여주는 것에 비해, B 언론사는 기사의 주인공인 "女순경"의 얼굴과 신상 정보를 내세웁니다.

    같은 내용의 기사라도 이 둘에는 미묘하면서도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A 언론사의 보도가 훨씬 더 적절하게 쓰였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책임감 있게 멋진 행동을 한 경찰에 대한 박수를 보낼 때, 그 경찰의 성별이 중요한 정보는 아니니까요. 우리나라 언론은 여대생, 여경, 여교사 이런 말 참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팔목이라는 부자연스러운 표현까지 쓰면서까지 (*손목이 올바른 표현) 가해자의 성별을 외면하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이러한 선정적, 자극적인 보도 행태가 한 번 크게 이슈화가 된 적이 있습니다. 작년 '인하대 사건' 보도 대한 내용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언론사가 '알몸,' '나체,' '여대생' 등의 표현을 썼지만 한겨레 신문의 기사의 제목에는 그러한 표현이 없었다는 점에서, 한겨레의 보도윤리에 대한 네티즌들의 칭찬이 이어졌습니다. (뒷이야기: "선정적·성차별적 제목, 고백합니다" 한겨레, 22.07.18)

당시 한겨레와 다른 언론사의 기사 제목

    저는 기자는 아니지만, 젠더편향적이고 선정적인 표현 사용을 지양하려는 언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맞춤법을 존중해야 하듯, 기자는 본인이 작성한 기사가 닿는 사회 구성원과 그 영향력을 고려해서 책임감과 윤리 의식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것이 제가 유난을 떠는 것인지 꽤 오랜 시간을 고민했습니다. 사실 평범한 사람들은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데 제가 필요 이상의 언어 감수성 잣대를 들이미는 것이 아닌가, 하고요.

    그러나 어제의 기사 댓글창을 나란히 비교해보고 나서 확실하게 느낀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보기 불편하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래는 A 언론사와 B 언론사의 기사 댓글을 일부 발췌한 내용입니다.

기사 제목에서 순경의 성별을 언급하지 않은 A 언론사의 댓글
"막내 女순경" 헤드라인을 사용한 기사의 댓글

A 언론사의 기사에는 경찰의 칭찬과 "불법 촬영男"에 대한 욕이 대다수를 이루는 반면, B 언론사의 기사 댓글은 "女순경"에 대한 조롱과 비아냥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링크로 들어가서 직접 확인해 보세요. 제가 일부러 그런 댓글들만 선택적으로 골라낸 것이 아닙니다. 두 독자 집단은 같은 사건을 인식하는 시선이 극명하게 엇갈렸습니다. B 언론사의 기자가 해당 경찰의 미담을 나쁜 의도로 기사화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사소한 표현 하나로 기자의 메시지는 가려지고, 혐오의 반응이 댓글창을 뒤덮고 말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헤드라인의 중요성, 언어 감수성의 필요성을 체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반응의 온도 차이가 두 언론사의 보도 방식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언론사 성향에 따른 소비 집단의 차이에서 발생한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단순한 우연의 결과일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제가 읽고 싶은 기사, 또 함께 소식에 대한 의견을 교류하고 싶은 집단의 형태는 B 언론사의 그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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