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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씨 최고 아웃풋이 될 거야

8월 둘째 주 - 충청남도 서천

by 인용구

8월 둘째 주 여행은 부모님과 함께 충청남도 서천으로 갔다. 서천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산 모시와 한산소곡주로 유명한 지역으로, 서해에 접해 위로는 보령, 아래로는 전북 군산과 맞닿아 있다. 머드축제나 대천해수욕장으로 유명한 보령, 아귀찜이나 짬뽕으로 유명한 군산에 비해 서천은 사실 인지도가 아주 높은 곳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1년에 두세 번은 꼭 찾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할머니 댁이 서천에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서천군 시초면 선동리. 아버지가 태어난 그곳에 아직도 할머니와 큰아버지가 살고 계신다. 맛집이나 관광거리가 많지 않아도, 어느 곳보다 많은 이야기가 묻어있는 곳, 서천. 그 동네를 소개해보려 한다.



나의 원픽 서천 로컬 빵집


여러분이 시외버스를 타고 서천을 방문할 일이 있거든, 터미널 전에 읍내에서 한 번 내릴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때 내리면 정류장 바로 맞은편에 우리 서천 식구들이 운영하는 베이커리가 있다.


시그니처 메뉴가 있다거나, 막 엄청나게 훌륭한 빵을 파는 것은 아니다. 그냥 어느 동네든 하나쯤 있는 터줏대감 빵집. 근처에 뚜레쥬르나 24시간 무인 공장제 빵집이 생겨 장사가 잘 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로컬 브랜드라는 이유로 어떻게 서천 곳곳의 농협 하나로마트에 빵을 납품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내가 작년에 논산 훈련소를 다녀온 뒤 잠시 할머니 댁에 머물렀을 때도, 시외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작은아버지의 빵 배달을 도운 기억이 있다.

훈련소 끝나자마자 대민지원 나갔던 추억..

빵집은 여러 의미로 애틋한 공간이다. 할 말이 정말 많지만, 그 절반 이상은 할 수 없는 말이다. 적어도 글로는 남길 수 없는 이야기다. 그냥, 우리 아버지나 구 씨(丘氏) 집안 가족사나 드는 마음들을 생각하면 대부분의 내용이 그렇다. 그만큼의 깊은 애(愛)와, 증(憎)이 서려있다.


조금만 이야기하면. 우리 작은 아버지에게 빵집은 삶의 터전이었다.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부터 빵을 만들며 자식 넷을 길러내셨다. 그것도 아이들에게 비올라, 골프, 축구, 판소리 같이 잘은 몰라도 돈 많이 드는 예체능을 시켰으니 얼마나 고생 많으셨을까. 그걸 아는지, 어릴 때는 귀엽기만 하던 새침데기 사촌 동생들은 어느 순간 의젓하게 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조금은 안쓰럽고, 또 한편으론 야속한 부분도 있다. 그들이 무얼 잘못했겠냐마는. 자식들을 모두 대학에 보낸 지금도 작은아버지는 여전히 빵을 만들고 계신다. 고모가 돌아가신 뒤로는 농사짓는 큰아버지도 일손을 돕고, 심지어 구순을 넘긴 할머니까지 새벽같이 나와 빵을 포장하신다. 부디 건강만 하시면 되는데. 허리도 잘 못 펴시는 할머니가 주방에 앉아 빵을 포장하는 모습을 보면 좀 속상하다. 손주인 나도 그런데, 아무리 말씀드려도 할머니는 늘 막내아들 걱정뿐이다. 자식밖에 모르는 부모. 그 사랑을 알면서도 감히, 부모를 향해 어떤 원망을 품기도 하는 것이 다시, 자식이다.


이번에는 부모님이 서천 내려가는 길에 대전도 들르셔서, 부모님 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었다. 전날 천안 사는 고모댁에서도 잠시 머무르셨다는데, 그래서 천안 고모도 동승해서 이동했다. 어머니가 내 최근 글들을 잘 읽으셨는지, 천안에서 "충남집" 순대도 아침부터 포장해 오신 덕분에 차에서 끼니를 때울 수 있었다. 아 충남집 순대 확실히 든든하고 맛있는데, 직접 가서 먹었을 때의 기억에는 조금 못 미쳤다. 잘 익은 양배추에서 물이 빠져나온 것이 아쉬웠다고 할까. 그래도 내 글을 기억해 주시고 일부러 사다 주신 그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맛있게 먹었다.

충남집 순대 맛있어요

서천에 갈 때마다 우리는 도착해서 한 번, 떠날 때 또 한 번 꼭 빵집을 들른다. 그럴 때마다 식빵이나 카스테라 같은 것을 하나씩 뜯어먹는 아버지를 보면 ‘빵집하는 형제가 있어서 참 좋겠네’ 싶은 생각이 든다. (먹기만 하고 일 도와주는 건 본 적이 없다. 아차차.) 나도 빵 몇 개쯤 집어 먹는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을 테지만, 웬일인지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어릴 때는 나도 많이 먹었던가. 사실 나는 원래 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탄수화물 중독인 내가 빵에만큼은 크게 끌리지 않았던 이유가, 어쩌면 밀라노 빵집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부분 역시 자세히 풀어내기는 어려운 내용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오랜만에 피자빵 하나 먹어봤음. 달콤하게 조린 팥이 올라가서 맛있는 피자빵. 서천 맛집 추천!! (본 게시물은 유료 광고를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서천의 성심당, M 빵집

할머니와 바다


이번 서천 방문 동안에는, 그래도 선동리 할머니댁에만 머무르진 않고 조금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할머니도 모시고 말이다. 부모님과 천안 고모, 그리고 할머니까지 다섯 명이 차를 타고 이동했다. 사실 서천 주변에 볼거리가 엄청 많지는 않다. 명소라고 불릴 만한 곳은 이미 다 둘러본 탓도 있겠지만, 이번에 찾아간 곳도 전부 예전에 몇 차례 방문했던 곳들이었다.


이를테면 새만금 방조제가 그렇다. 33.9km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 이름만 들으면 제법 흥미롭지만, 막상 가보면 그냥 도로일 뿐이다. 바다 위에 난 길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새삼 놀랍지만, 그 위에 있을 때는 별 감흥이 오진 않는다. 둑 한쪽에 바닷물이 말라 넓은 뻘이 펼쳐져 있다거나, 갈라진 홍해처럼 양쪽으로 바다가 시원하게 트여 보였다면 또 다르겠지만. 실제로는 양쪽으로 높게 담이 쌓여 있어 그냥 직선도로처럼만 느껴진다.


전망대에 잠시 차를 세우고 바다를 보자고 했을 때도 나는 조금 시큰둥했다. 해변도 아니고. 뭐 섬이 보인다던가, 파도 소리조차 돌아오지 않는 끝없는 수평선뿐. 뭐 하러 길 한가운데 차를 세우나 할 정도였다. 그런데 할머니가 너무 좋아하시는 것이었다.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시기에, 아예 자리를 깔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는 바다를 보고 싶으셨다고 했다. 바다를 보러 가자 말을 해도, 바쁜 두 아들은 '바다는 뭣 하러 본다요, 멀기만 하지,' 하며 섭섭하게 했다고 한다. 사실 할머니가 말을 했다고는 하지만 별로 티도 안 나게 하셨을 것 같은데, 이렇게 좋아하실 줄 알았다면 큰아버지든 작은아버지든 꼭 모시고 나들이 한 번 가셨을 건데 말이다. 그리고 이번 자리에서 할머니는 내가 8월에 박사 되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정말 많이 좋아하셨다. 우리 할머니, 눈물이 부쩍 많아지셨어. 살아서 우리 가문에 박사님 나오는 것도 본다고, 이제 여한이 없다는 무시무시한 말씀도 하셨다. 손주 결혼하는 것까지는 보셔야지요...

할머니 부디 건강만 하셔라

이어서 군산 끝자락에 있는 선유도랑 장자도까지 다녀왔다. 나로서는 벌써 두 번째, 할머니도 여러 번 가보신 곳인데 굳이 왜 또 갔는지는 모르겠다만. 걷기 힘들어하시는 할머니를 호떡집에 모셔두고 어른들은 장자교 스카이워크를 걸었다. 나도 할머니 옆을 지키다가 금방 다녀왔는데, 사람 많은 곳에 할머니 혼자 계실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물론 할머니도 오랜만에 소풍 나오셔서 좋으셨겠지만, 진짜 쉽지 않네 우리 집안.


돌아오는 길에는 장항 송림 해수욕장에도 들렀다. 여기 스카이워크는 4천 원인가 내야 하는데, 이미 몇 차례 올라본 터라 이번에는 생략했다. 8월 말에 오면 소나무숲을 뒤덮은 맥문동 꽃이 장관이라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아쉽게도 볼 수 없었다.

맥문동 꽃피면 멋있을 거 같긴 해요.

해수욕장이라고는 하지만 기대하는 바다의 풍경은 아니었다. 솔직히, 서해는 초라하다. 물이 푸르고 깊은 동해나, 구불진 해안선과 섬들이 멋진 풍광을 만드는 남해보다는. 진창처럼 펼쳐진 뻘 군데군데 말뚝이 비목처럼 박혀 있었다. 즐길 구석이라고는 흙 토해낸 구멍을 보며 발 밑의 게나 맛조개를 상상하는 것뿐이다. 그래도 나름의 재미를 찾고자 나는 예쁜 조개껍데기나 조약돌을 탐색했다. 할머니는 소나무 밭에서 바다 있는 방향으로 의자를 놓고 앉아계셨다. 그 자리에서 바다가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돌줍기 컨텐츠를 즐길 수 있는 서해의 풍경

그래도 할머니와 함께할 수 있어 행복했던 나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순탄치 않았다. 내가 미리 검색해 둔 저녁 식당이 있었지만, 아버지가 본인이 아는 집이 있다며 마음대로 식당을 정했다. 운전하는 사람 마음이죠. 그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검색해 보니 그 식당은 영업하지 않았고, 가는 도중 이미 내가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폐가 같은 식당까지 차를 끌고 갔다. 그 사이 시간이 늦어져 결국 우리가 원래 가려던 식당도 갈 수 없게 되었다. 아버지는 본인 탓이 아니라고 했지만, 뭐. 해수욕장부터 슬슬 가자고 몇 번을 이야기해도 대꾸도 않다가, 할머니 모시고 우리가 출발한 한참 후에야 오던 모습이 떠올라 짜증이 났다. 그런 와중에 내가 알아본 식당이 멀다느니, 읍내에 있는 곳 아니었냐며 화를 내시고, (나는 그런 말 한 적이 없다.) 내비게이션에서 무료 도로를 설정하지 않았다고 또 역정을 내셔서 조수석에 앉아있는 동안 기분이. 엄청 상했다. (진짜 에둘러 표현한 거다.)


뒷좌석에 할머니와 고모가 함께 계신 자리에서조차 제 성질을 드러내시는 아버지. 그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없고, 아마 평생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더구나 그 직전, 할머니께서 부모님께 "이제 네 아들이 큰 일할 박사님이 되었으니, 행동거지 조심하고, 막 대하지 말고. 자식 앞길에 방해되지 않도록 처신 잘해라,"라고 덕담을 해주신 참이었다. 내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하겠냐마는, 손주가 박사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벅차하시며 당부하신 말씀인데. 금세 분을 못 이기고 분위기를 깨뜨리는 것이.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게 마무리된 적이 없는 것 같다. 물론 나도 말이 곱게 나가지 못했다. 내딴에선 참는다고 참아가며 억눌러가며 말했는데, 내 말투에 고모도 놀라셨다고 하니 결국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것 같다. 이런 나 역시 효자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보고 배운 대로 닮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집에 돌아와 아버지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대로 다음날 돌아오고 싶었는데, 이튿날 아침부터 전날의 갈등은 다 잊으신 건지 ChatGPT 성능이 좋아졌다며 말을 거는 모습에 그냥 두 손 들었다. 단순해서 다행이라 해야 할지. 내가 아직도 그날 일을 사소한 부분까지 다 기억하고 있다는 걸 알고는 계실까. 결국 말복이라고 백숙도 먹고, 다음날 집에 돌아왔다. 밀라노 빵집에서 백숙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 묘소를 들러 할아버지께도 박사학위 취득 소식을 전했다. 명절 때 성묘하러나 다 함께 갔지, 혼자 할아버지 무덤을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할아버지, 손주 박사 됐어요. 절 받으세요. 한 번 더 받으세요. 하고 왔다.


집에 가는 날, 할머니에게 살면서 받은 용돈 중에 가장 큰 금액을 받았다. 선동집 큰아버지도 비슷한 금액을 맞춰주셔서 백만 원이 생겼다. 너무 큰돈이지만 '너 박사 되면 마을 곳곳에 현수막을 걸려고 모아둔 돈인데, 그건 못하겠고 너 써라,'라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어른 분들께 받는 마지막 용돈이라고 생각해야지. 다가오는 명절부터는 내가 용돈을 드려야지, 하고 다짐을 했다.


후일담이지만, 결국 현수막이 붙었다. 서천 IC부터 해서 읍내 곳곳에 총 일곱 군데인가 붙었다고 한다. 서천에서 나고 자란 것도,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닌데 왜?! 싶긴 했지만, 할머니 소원이었다 하시니 부끄럽지만 말릴 자격도 없는 것 같았다. 덕분에 평생 없을 호사(?)를 누려보긴 하네요.. 물론 힘들었던 대학원 생활 끝에 얻어낸 값진 박사 학위지만, 이렇게까지 축하받을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어안이 벙벙하지만, 막상 붙은 걸 보니까 포켓몬스터의 태초마을 오박사처럼 시초마을 구박사도 울림이 좋은 것 아니겠어요. 무엇보다 할머니께 기쁨을 드린 것 같아 나도 더없이 기쁘다.

노희준 여사님의 손자 구인용

평해 구(丘)씨 집성촌 서천. 옛날에 서천 마트에서 앞사람도, 그 앞사람도 모두 구 씨 성을 쓰길래 새삼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는 빵집 배달을 가다가 평해 구 씨 회관도 발견해 버렸다. 우리 구 씨 일족에서 지금 제일 유명한 사람은 21대 대선 자유통일당 대통령 후보 구주와 씨인데(...) 나도 열심히 살아서 구 씨 이름을 드높여야지. 할머니가 정말 자랑스러워해도 되는 큰 인물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보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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