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첫째 주 - 광주광역시
빛고을 광주. 광주를 떠올리면 왠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중학교 때 학원 선생님이 전라도 분이었는데, 학교를 광주에서 다니셨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등교를 하려는데 부모님이 말리셨다고 한다. 지금 광주에 가면 위험하다고, 절대 나가면 안 된다고. 선생님은 한 달이 넘도록 학교에 가지 못한 채 집에 숨어 지내며, 끊임없이 들려오던 끔찍한 소식에 떨며 지냈다고 했다.
대학에 들어와 영화제작동아리, 은막 활동을 할 때는 광주과학고 출신 선배들이 많았다. 5월이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 어느 주말엔 모두 집으로 내려가곤 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친척이나 가까운 지인, 아니면 지인의 지인이라도 1980년 5월에 희생된 분이 꼭 있었다.
5·18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날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 그런 잔혹한 학살이 이 땅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을 나는 믿기 어려웠다. 무고한 광주 시민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지금의 대한민국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마음이 숙연해진다. 우리 모두가 광주에 어떤 빚을 지고 있다고, 늘 생각했다.
그런 까닭에 지난 몇 차례의 광주 방문 동안, 나는 항상 비극적인 역사를 되새기며 엄숙한 마음으로 여행을 했다. 5·18 기념공원이나 민주화운동기록관을 참배하는 심정으로 찾고, 괜히 민중가요를 들으며 금남로 거리를 걷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살짝 "ㅈㄹ꼴값"이었다.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현재의 광주광역시—여전히 내 친구들을 비롯한 140만 시민들의 삶의 터전인 이곳—을 마치 공동묘지처럼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광주는 빛고을이지 빚고을이 아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역사 테마를 잠시 내려놓고, 현재의 광주를 만끽하기로 했다. 전라도에서 가장 큰 도시, 살아 있는 빛고을 광주를.
전날 나주에서 버스를 타고 광주로 올라온 나는 찜질방에서 이른 아침을 맞았다. 잠자기 좋은 환경은 아니어서 조금 일찍 깼지만, 사우나를 실컷 하고 때까지 밀고 나니 개운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첫 행선지는 광주 동쪽 끝자락에 있는 "원조 두유"라는 곳이었다. 유튜브에서 보고 알게 된 집인데, 맷돌로 갈아낸 콩물이 진하고 고소하다는 평이 많아 꼭 가보고 싶었다. 마침 여름이니 콩국수도 한 번 먹어야지 싶었던 차였는데, 사실 국수보다는 시원한 콩물이 더 간절했다.
묵었던 찜질방이 터미널 북쪽, 광주역 근처라 길이 제법 멀었다. 버스를 갈아타고 한참을 걸어 도착한 원조 두유. 근본이 넘치는 간판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다독이며 문을 열자, 작은 공간 안에는 사장님 내외와 손님 두 분이 있었다. 사모님은 기계식 맷돌에 노란 콩을 조금씩 넣고 계셨다. 천천히 돌아가는 맷돌 사이로 진한 콩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콩물 소(小)자 4천 원. 손님들이 먹는 것을 보니, 사발에 담긴 그것은 물보다는 죽에 가까웠다. 맛있겠다… 커피 한 잔 값에 저 귀한 걸 먹을 수 있다니. 흥분한 나는 서둘러 한 그릇 주문이 가능하냐고 여쭈었다.
그런데 아뿔싸, 예약이 필요하단다. 전날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고, 오늘치 예약은 이미 다 끝났다고. 망연자실하여 서있는데, 사장님께 마침 걸려온 전화 너머로 같은 말을 반복하시는 걸 듣고는 알겠다고 하고 문을 닫았다.
하지만 눈앞에 아른거리는 그 하얀 콩물을 떠올리니, 그냥 돌아설 수가 없었다. 다시 문을 열고는 "사실 제가 대전에서 일부러 왔는데, 이거 먹으려고 정말 일찍부터 왔습니다. 혹시 조금만 안 될까요?" 하고 간청했다. 사장님 내외가 곤란한 듯 서로를 바라보더니, 냉장고에서 한 그릇을 꺼내 내주셨다. 만세!
그렇게 영접한 콩물 한 그릇. 과연 그 질감이 거의 요거트 수준이었다. 숟가락으로 떠 기울여 보니, 거의 그대로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입안에 넣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내가 먹고 싶었던 건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간콩죽. 상상했던 맛 그대로, 진하고 고소한 맛. 설탕도 넣지 않았는데도 은은한 단맛이 느껴졌다. 아주 예쁘고 맛 좋은 콩을 물 한 방울 섞지 않고 갈아냈구나. 아주 곱디고운 비지. 콩의 정수. 차가운 콩물을 그냥 삼키면 안 된다. 입안에서 씹고 굴리며 체온과 비슷해질 때 삼켜야 그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입을 다문 채 숨을 내쉴 때 코로 퍼져 나가는 고소한 향이 정말 일품이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맛있게 먹었다. 못 먹을 뻔한 것을 사정해서 겨우 얻어낸 귀한 한 그릇이라는 생각에 더 맛있게 느껴졌던 것 같다. 구역을 나눠 설탕과 소금도 살짝 쳐서 먹어보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소금만 아주 살짝만 쳐서 먹는 게 제일 맛있었다. 조금의 간이 콩 본연의 단맛도 끌어올려주는 느낌. 여기에 콩국수를 해 먹기는 조금 어렵겠더라. 국수를 넣으면 거의 비빔국수가 되겠는데? (그것도 맛있긴 하겠다.) 큰 각얼음 몇 개 띄워서 먹는 상상도 했다. 얼음이 녹으면서 조금 더 다양한 농도로 즐겨보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얼음컵에 담아서 진짜 아이스 커피처럼 들고 다니고 싶었는데, 아마 얼음 녹기 전에는 빨대로 마실 수도 없었을걸.
아무튼, 인상적인 맛이었다. 아마 평생 '궁극의 콩물'로 기억될 듯하다. 다만 정말로 콩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한 그릇을 위해 먼 길을 찾아올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상상하는 맛 그대로, 그 이상은 아니라는 뜻. 미슐랭 1.5스타. 이것이 '목적'이면 조금 애매하고, 근처 갈 일 있으면 꼭 들러야 하는 곳. 단, 반드시 예약은 잊지 말자.
만족스러운 콩물 영접을 마치고, 진짜 식사를 위해 갔던 곳은 "산수 쌈밥"이라는 곳이었다. 혼자서도 우렁쌈밥정식을 만이천 원에 먹을 수 있는 곳. 리뷰도 좋고, 마침 아시아문화전당으로 가는 길에 있어서 걸어서 이동했다.
그런데 아뿔싸(x2), 여기는 일요일 휴무였다...!! 망연자실하게 또 한참을 서있었지만 출근하지도 않은 사장님에게 간청을 올릴 수도 없는 노릇. 대신 충장로에 있는 유명한 빵집, "궁전제과"로 목적지를 정했다. 전에 광주 사는 친구 녀석이 '광주의 성심당' 같은 거라며 데려갔던 기억이 있는데, 찾아보니 아시아문화전당과도 가까이 있었다. 아아, 빵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은 아쉬운데…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갑자기 떠오르는 이문세의 "깊은 밤을 날아서". 조금 우울하게 후렴부를 불러보았다. 궁전으로 갈 수도 있어…
그리고 가는 길에 5·18 민주광장을 가로질렀다. 길게 뻗은 금남로 한쪽에, 헬기 사격 탄흔이 발견되었던 전일빌딩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의 사직서가 기억나 잠시 멈춰 섰다.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갑자기 식사 투정이나 하며, 노래를 흥얼거리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던 이 공간의 무게가 느껴지며 숨이 턱 막혔다. 그런 와중에 신호등이 바뀌고, 시민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여기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것은 나뿐인 것 같았다. 또 혼자 오버하고 있네. 지랄, 에휴. 나의 부끄러움은 애먼 부끄러움이었을까, 다시 부끄러웠다.
돌아보면, 그때 내가 느낀 부끄러움이 잘못은 아니었다. 그만큼 잊거나 외면하기 어려운 우리 공동체의 비극이 맞으니까. 오히려 직접 겪은 일도 아니고, 가해자도 아닌데도 어떤 책임감, '내 몫의 기억'으로 이런 감정을 받아들인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내가 사회적인 존재라는 증거, 염치가 있다는 얘기 아닌가. 부끄러워할 수 있지. 그 부끄러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다시 부끄러워하는 게, 진짜 애먼 감정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도 이유는 다르지만 그 감정을 떨쳐버리려고 애써 노력했다. 부끄러움? 부끄러움에 대한 부끄러움. 즐거운 여행이잖아, 분위기 망치지 말고 다시 힘차게 걸어! 그분들 덕분에 누리는 일상이다. 평화로운 광주를 천진하게 돌아다니며 맛있는 밥(혹은 빵)을 먹고, 문화 전시를 보는 것을 그들도 바랐을 것이다. 그리고 억지로 '척'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즐거웠다. 비가 온다더니, 비는 안 오고 구름만 많아서 시원하고 걷기 좋았다. 맛있는 콩물을 먹었고, 얼른 빵에 커피 한잔 때리고 전시를 볼 생각에 들떠 있었다. 즐거워도 된다. 죄책감은 내려놓자. 사랑하는 사람에게 듣고 싶은 말은 '고마워'이지, '미안해'가 아니다.
궁전제과. 공룡알빵과 나비파이가 유명하다. 공룡알빵은 바게트 끝을 파서 계란샐러드를 가득 넣은 빵인데, 이름처럼 계란 서너 알은 족히 들어간 듯한 양이었다. 나비파이는 나비 모양의 사과 파이. 패스츄리가 꽤 괜찮다. 다른 빵들도 여럿 있었지만, 나는 원래 빵을 크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 (솔직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빵은 ‘맥주’다.) 궁전제과의 시그니처 메뉴만 맛보기로 했다.
공룡알빵은 11시 반에 나온다고 해서, 먼저 나비파이와 처음 보는 '구운 공룡알빵'을 사서 2층 카페에서 커피와 함께 먹으며 기다렸다. 돌이켜보니 구운 공룡알빵이 위에 치즈가 올라가 있어 오리지널보다 더 맛있었던 것 같다. 사실 나비파이, 공룡알빵 모두 충분히 예상 가능한 맛이다.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는 녀석들이랄까. 크기는 확실히 엄청났다. 솔직히 이 빵들을 극찬할 거라면, 전날 나주에서 먹었던 행운분식 사라다빵부터 재평가해야 함. 그래도 충장로에 들를 일이 있다면 한 번쯤 가볼 만한 곳. 역사도 제법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대전 성심당에는 못 비비지만.
아씨; 아- 문화 쩐당….
ACC, 아시아문화전당. (제목 진짜 지옥 같다 ㅋㅋ) 사실 광주에 왜? 아시아문화전당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진짜 ‘전당’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규모와 전시를 갖춘 복합문화공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서울의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보다도 더 볼만했다.
내가 본 전시는 두 개였는데, 특히 2025 ACC 포커스 <료지 이케다>가 인상 깊었다. 이 아티스트는 잘은 모르지만 100% 이공계 베이스를 가진 사람이다. “사운드 아트”라는 장르의 전시를 선보였는데, 'music'이 아닌 'sound' 아트인 것에 주목해야 한다. 멜로디도, 화성도 없는 펄스 형태의 청각 자극을 흑백의 파원으로 시각화하는데, 진짜 전자과 실험실에서나 보던 함수 발생기의 소리가 떠올랐다. 오실로스코프에 연결해 파형을 보고 싶었다. 여러 주파수를 오가는 소리랑 빠르게 전환되는 영상 때문에 넋 놓고 보고 있으면 정말로 넋이 나갈 수 있다. 공간도 크게 써서 그 시청각 자극에 압도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의 후반부에는 다양한 공학적 시각화(visualization)가 나열되었다. 게놈(genome) 지도, 뇌 신경망 연결, 비행기 항로, 별의 운동이나 전자회로 등등. 다양한 분야의 정보들이 일정한 비프음(beep)에 맞춰 싱크가 맞는 모습은 묘하게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각각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세포 현미경 영상에서 각 세포에 segmentation mask/bounding box를 그리는 시각화가 조금 PTSD를 유발하긴 했다.
흥미로운 전시. 올해 말까지 쭉 진행되는 것 같으니, 직접 가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다른 전시는 <애호가 편지>라는 조금 낭만적인 제목의 전시였는데, 아시아 여러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뽕짝 감성'을 다루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트로트나 디스코풍 반주, 각설이 춤 같은 것이 전시 소재로 등장했다. 중앙의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여러 테마 공간이 뻗어 있는 구성이 인상적이고 재밌었다. 하나하나 들어가서 인터랙티브 하게 즐기는 재미가 있었는데, 친구랑 보면 더 좋았을 것 같음. (얘는 전시가 내일(8/24)까지네. 여러분들은 못 보겠네요! 유감~!!)
전시뿐 아니라 붙어 있는 도서관도 괜찮았다. 책이 엄청 많다기보다, 앉아 책을 보고 자료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 잘 꾸려져 있었다. 세미나도 자주 열리는 듯했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은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도 자리를 잡고 앉아 <금각사>를 끝까지 읽었다. (금각사 강추. 이번 소설 모임 책 중 최고로 좋았어요.)
글을 쓰며 알아보니,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에 포함된 사업이었다.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장소인 옛 전남도청 건물을 보존하려는 의미도 있었다고 한다. (내가 방문한 8월 당시에는 복원이 진행 중이었는데, 원래는 올해 6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고 함.)
언젠가 다시 광주를 찾게 된다면, 아마 또 ACC를 들를 것 같다. 지금은 상무지구도 놀기 좋지만, 금남로, 충장로가 대표적인 번화가이기도 하고. 이곳의 새로운 전시와 복원된 도청 건물을 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ACC 구경을 마칠 즈음,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종일 구름만 많아 걷기 좋았는데, 결국 비가 오는구나. 다행히 건물에서 바로 지하철역으로 연결되어 젖지 않고 이동할 수 있었다. 대전으로 가는 기차는 광주 송정역에서 탈 예정이었고, 가기 전 마지막 저녁 메뉴도 이미 정해 두었다.
몰랐는데, 송정 떡갈비도 유명하다면서요? 하지만 내가 고른 집은 "서울곱창"이라는 곳이었다. 광주에서 먹는 서울곱창이라니, 아이러니하지만 서울곱창은 다른 곳 어디서도 먹을 수 없는 특이한 곱창으로 유명한 집이다.
송정역에서 내렸을 때는 또 비가 잠시 그쳐있었다. 이때다 싶어 앞에 있는 시장도 구경했다. 1913 송정역시장이라고, 꽤 젊은 감성으로 꾸며놓은 시장이 있었는데 딱히 볼거리는 없었다. 다만 인상 깊었던 것은 한 닭집이 있었는데, 그 안에 진짜 살아있는 닭이 막 날아다니고 있는 거임! 지도를 열어 확인해 보니 정말 말 그대로 주문 즉시 닭을 잡아주는 생닭집이라고 하는데, 이 집의 통닭은 먹어보고 싶었다… 혼자 치킨과 곱창을 모두 먹기에는 무리라 아쉬웠다.
서울곱창으로 이동하는 길, 다시 소나기가 쏟아졌다. 어느 건물 처마 아래에서 기다리다,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편의점에서 3천 원짜리 우산을 샀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비가 약해지는 것이었다. 좀 억울했는데, 원영적 사고에 성공했다. '내 삼천 원으로 소나기를 그치게 했다고? 나 완전 날씨 요정이잖아?! 나 덕분에 난처했던 사람들 몇 명은 돈 아낄 수 있었겠지?' 물론, 내 정신 승리가 무색하게 다시 비가 거세게 와서. 그냥 우산이 돈값한 걸로 하기로 했다.
그렇게 도착한 서울곱창. 70년 전통을 자랑하는 노포답게 간판부터 근본력이 확실했다. 순대랑 국밥도 팔지만, 내가 먹으러 온 것은 양념곱창(24000 원). 접시로 나왔을 때는 사실 양을 보고 조금 실망했다. 양념된 곱창이 내 손바닥만한 접시에 뭉티기처럼 올려져 나왔다. 그리고 대망의 첫 입… 와, 큰일 났다. 내 입맛에 맞진 않았다. 카라멜라이즈- 곱창이라는 수식어가 있을 만큼 양념이 곱창에 거의 완벽하게 스며들긴 했는데, 그 양념이 너무 달았다. 불향이 느껴지긴 했지만, 입안에서 쫄깃쫄깃 씹힐 때 거의 사탕처럼 느껴지는 단맛이 나한테는 너무 과했다.
이게… 70년을 지켜온 맛?! 이걸 먹으러 사람들이 줄을 선다고? 믿을 수가 없어서 카카오맵 리뷰를 보는데, 사람들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기는 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호평이 더 많았다. 자꾸 생각나는 맛, 다른 곳에선 맛볼 수 없는 맛이라는 평가. 그건, 인정. 이런 곱창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냥 평범한 야채곱창이 훨씬 가성비도, 맛도 좋다고 느꼈다.
슬픈 마음을 달래려고 소주를 시켰다. 그래도 전라도를 왔으니 잎새주를 마셔야지. 지난주에 마셨던 안동의 '참'을 떠올리며 먹는 잎새주. 곱창이 달아서 그랬는지, 술도 달았다. 하아. 속상하다 속상해. 그래도 끝까지 먹어야 할 것 아닌가. 음식을 남길 수는 없는 노릇. 상추에 마늘과 쌈장을 듬뿍 올려 먹으면 그래도 먹을만했다. 밥도 올리면 단맛을 중화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밥 두 공기랑 소주 세 병을 클리어했다... (???) 억울하네... 왜 밥이랑 술이 끝없이 들어가지... 상추랑 마늘도 두 번씩 리필해 먹었는데, 사실 자꾸 더 달라 하기 미안해서 그럴 때마다 소주며 밥을 주문한 것도 있다. 다 먹을 즈음에는 입구에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혼자서 한 테이블 자리를 차지하는 게 조금 눈치 보이긴 했는데, 그래도 술 세 병이나 먹었으면 저도 자리값은 한 거잖아요.
배부르게 먹었는데 취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실 개쩌는 안주였던 거 아님?!) 기차를 타고 서대전역으로 돌아왔는데, 원 막걸리와 콜라보한 꿈돌이 막걸리가 있어서 네 병을 샀다. 동방으로 갔더니 후배들이 있길래 한 병씩 마셨다. 꿈돌이 막걸리는 맛있었다. 청량함과 바디감이 공존하는 훌륭한 막걸리. 동생들과 마신 이 녀석이 내 슬픔을 달래주었다. (사실 즐거웠던 것 아님?!?!)
결국은 또 술얘기로 끝내는 이번 주의 여행기다. 즐거웠던 나주-광주 여행. 사실 이번에는 엄청 밀도가 높은 여행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또 이렇게 글로 쓰니 분량은 꽤 되네. 사건이 없을수록 사유(思惟)가 남는 법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