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역사가 살아 숨쉬는 안동 유람기

7월 넷째 주 - (2) 안동 볼거리 편

by 인용구

지난 글에서는 안동을 대표하는 먹거리 — 소주, 찜닭, 간고등어 — 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가득 채웠다. 그렇다고 내가 안동까지 가서 먹기만 한 것은 아니니, 오늘은 그 나머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물론 먹는 이야기가 또 등장하긴 할 예정이다.)



안동역 구 역사에서 돌아보는 용구의 역사


여행 첫날 안동소주 박물관에서, 직원분과 안동의 볼거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 추천 받은 곳이 있었다. "월영교", "월영공원"이었는데 지도를 찾아보니 안동시내에서도 동쪽 근교에 위치한 관광지였다. 어차피 하회마을은 다음날 하루 전체를 일정으로 잡아놓았기 때문에, 첫날 할 일도 없었는데 잘됐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가보기로 했다.


찜닭을 맛있게 먹고, 시장과 문화의 거리, 음식의 거리, 안동갈비골목을 거쳐 이곳저곳 구경하다 보니 안동역 구 역사(驛舍)에 이르렀다. “그래, 내가 기억하는 안동역은 이렇게 생겼어,”하며 잠깐 추억에 젖었다가, 10년 전 내일로 여행 때 찍었던 사진이 기억났다. 그래서 잔디에게 부탁해 그 사진을 재현해 보았다. 그때보다 25kg가 늘었다. 몸무게 복사 버그. 하얗고 여리던 피부도 거뭇한 여드름 흉터로 더러워졌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앳된 내 모습과 비교하니 지금의 나는 너무 아저씨 같았다.

지난 세월이 야속하구나..

그래도 나이랑 몸무게만 늘은 건 아니랍니다. 그때의 나는 꽤 치기어렸던 것 같다. 당시 썼던 글을 되짚어 보면, 나는 ‘관계’라는 키워드로 스스로를 재정의하기 직전이었고, 그래서 늘 주변 사람들을 대할 때 절박하고 불안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사랑을 받는 동안에도 그것이 사랑인 줄 몰랐다. 한편으로는 대회마다 입상하고, 도전하는 족족 성공하며 KAIST까지 합격했으니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때였지만, 동시에 대학생활에 대한 두려움도 품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자신감은 더닝 크루거(Dunning-Kruger) 곡선의 '우매함의 봉우리'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대전에서의 10년 동안 나는 새로운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여러모로 성장했다. 일단 십대와의 가장 큰 차이는, 내게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 선생님이나 부모님 같은 어른이 아니라 또래 선배, 동기들과 후배들이었다는 것. 불완전하고 미숙한 사람들끼리 우정과 상처를 주고받으며, 나는 내가 되고 싶은, 또 비쳐지고 싶은 모습을 발견했다. 내 약점과 진심을 드러내는 것을 겁내지 않고, 당신의 선함을 믿으며, 좋은 사람들과 소중한 관계를 만들어 갔다. 대학원에 들어와서는 오랜 슬럼프를 겪으며 '능력'에 대한 헛된 자부심을 많이 벗어냈다. 그리고 처절한 분투 끝에 커다란 역경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불행하지 않았고, 나다움을 잃지 않았다.


열아홉 살의 나는 삶이 감사하고 행복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십대를 살아낸 지금의 나는 그때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게 행복하고 당당하다. 그때 가졌던 두려움과 걱정, 기대와 소망 모두에 대해 “괜찮았고, 잘 해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10년 전의 나에게 지금의 나를 보여준다면, 아마 “뭐야, 왜 이렇게 돼지가 됐어”라며 질색하겠지. 그래도 한편으로는 지금의 나를 부러워하고, 다행스럽게 여길 것이다.


서른아홉에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그때 나는 또 어떤 모습일까. (설마 여기서 25Kg가 더 늘진 않겠지.) 그 여행에는 어린 자식이 함께하면 좋겠는데. 삼십 대가 나에게 가르쳐줄 삶의 요소들이 또 있을 것이다. 사회인으로서의 책임감, 퇴색하는 젊음, 형태가 달라지는 우정...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역시 두려움이 앞선다. 하지만 그간의 경험에 바탕하여 귀납적으로 추론해보건데, 나는 결국 잘 해낼 것이다. 30대! 드루와, 드루와.

옛 안동역

낙동강 위의 달그림자



월영교 가는 버스는 안동역 구 역사 앞에서 탈 수 있다. 다만, 하루에 4회만 운행하는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구 안동역을 천천히 둘러보던 중, 우리의 마지막 버스가 막 출발했다는 것을 알았다. 월영교까지는 약 3Km.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햇볕이 살인적이었다. 박물관에서 산 안동소주도 짐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걸었다.


나는 솔직히 좋았다. 택시비가 아까운 건 아니고, 나는 그냥 여행 가면 발로 직접 걷는 게 좋더라고. 혼자였으면 고민도 없이 걸었을 텐데, 그걸 군말없이 함께 걸어주는 잔디가 옆에 있어 더 기뻤다. 낙동강을 따라 걷는 동안 별 쓸데없는 이야기를 잔뜩 나눴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현수막을 보고 하회마을에서 아프리카 민속춤이나 가면무도회 왈츠가 펼쳐지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풍경은 밋밋하고 날은 더웠지만, 친구와 잡담하며 걷는 시간이 좋았다.


그렇게 도착한 월영교는, 그냥 다리였다. (찾아보니 국내에서 가장 긴 목책 인도교라고 한다. 흠.) 다리 한가운데 멋진 정자가 있긴 했지만, '이걸 보려고 이 길을 걸었나?' 싶었다. 옆에 붙어있다는 공원은 더 볼품 없었다. 그래도 이름이 좋아서 봐준다. 월영(月影), 달그림자라니. 뭔가 무협지에 나올 법한 이름. 마침 우리가 갔던 날이 음력으로 완전 그믐날이었어서, 보름지기 친구와 함께하기엔 묘하게 어울리는 장소처럼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달그림자'라는 말이 왜 이렇게 익숙한가 했더니, 우리 부끄러운 윤 전 대통령이 탄핵 재판 때 '마치 호수 위의 달그림자 좇는 듯'이라는 문학적 표현을 해주신 것이 떠올랐다. 시발.


잠시 다리 위 정자에 앉아 쉬다 걸어온 곳을 돌아보니, 뜻밖에 멋진 풍경이 있었다. 택시를 타지 않은 덕분에 마침 일몰 시간이었는데, 안동의 아파트 단지에 노을이 번지는 모습이 꽤 큰 도시처럼 보였다. 멀리 보이는 용상대교가 마치 액자 틀처럼 그 장면을 담아내고 있어, 잠시 감탄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래도 이름이 월영교인데, 야경은 좀 볼만하지 않을까 싶어 주위를 둘러보다가, 근처에 민속촌이 있는 걸 발견했다. '어차피 다음날 하회마을을 갈 텐데, 굳이?'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오히려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겠다 싶어 발걸음을 옮겼다.


언덕을 오르는 동안에는 초가집 몇 채만 썰렁하게 보였다.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조금 을씨년했다. 그런데 더 올라가니 갑자기 성벽이 나타나더니, 그 안쪽에 기와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집집마다 따뜻한 불빛이 흘러나와서 훨씬 사람 사는 동네 같았다. 이것이 진정한 부르주아(bourgeois, 성 안 사람들)?! 아이들에게 유교 문화를 가르치는 '예움터마을'도 안쪽에 있다고 하여 한 번 구경 해볼까 했는데, 여기부터는 사유지 전통가옥 리조트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진짜 부르주아네... 시에서 운영하는 민속촌의 일부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상업적인 전통가옥들이 등장하니 좀 당황스럽고 웃겼다. like 전주한옥마을.


다시 월영교로 돌아와 보니, 야경은 제법 볼만했다. 조명이 예뻤고, 우리가 도착하자 마침 분수도 나왔다. 달 모양 배가 여러 척 강 위를 유유히 오가고 있었는데, 역시 배달의 민족. 돈을 내고 구경거리가 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잠시 헤아려보았다.

월영교의 야경

돌아오는 것은 택시를 탔다. 길도 어둡고, 좀 피곤해서. 월영교, 찾아보니 "월영야행"이라는 행사가 우리 방문 시기보다 조금 뒤에 열렸다고 한다. 행사 기간이라면 한 번쯤 와볼만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찾아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차가 있으면 접근성도 나쁘지 않다. (무료 주차공간이 넉넉하다.)



하회마을-병산서원 대중교통 팁


이튿날은 안동 하회마을을 찾았다. 하회마을은 안동 시내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다. 버스 배차가 거의 한 시간 간격이니, 미리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신시장 앞에서 210번 버스 (10시 30분 출발)를 탔다.


하회마을 입구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하회탈박물관에 들렀다. 아침에 화장실을 못 가서 허겁지겁 들어갔는데, 들어간 김에 구경까지 하니 꽤 재미있었다. 하회탈뿐 아니라 봉산탈, 북청사자탈 같은 다른 지역의 탈도 전시되어 있었고, 심지어 세계의 가면도 다양하게 볼 수 있었다. 전날 이야기했던 아프리카 가면이나 베네치아 카니발 가면은 물론, 할로윈 마스크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넓고 넓은 "탈"의 세계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영노’라는 요괴 탈이었다. 하늘에서 죄를 지어 인간 세상에 내려온 영노는, 부패한 양반 99명을 잡아먹고 한 명만 더 잡아먹으면 승천한다는 설정이라고 한다. 이거 완전히 2차 창작 재질. 영노를 주인공으로 한 도시 판타지 스토리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재미가 있었다.

맨 왼쪽 친구가 영노이다.

하회마을 입장권(5,000원)을 끊고, 병산서원도 가보고 싶어 관광안내소를 찾았다. 안내에 따르면 병산서원은 하회마을에서 또 한참 떨어져 있었는데, 210번 버스가 하루 3회만 운행된다고 했다. 돌아올 때도 그 버스를 타야 하니, 회차 출발까지는 대략 25분밖에 없어 조금 조바심이 났다. 다행히 타이밍이 잘 맞아,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병산서원 가는 두 번째 버스(오전 11시 40분)를 곧바로 탈 수 있었다. 세 번째 버스(오후 2시 45분)를 타려면 별신굿탈 공연을 보다가 중간에 나와야 한다고 하니, 차가 없다면 우리가 ‘하회마을 대중교통 이용’의 정석을 밟은 셈이다. 사실 별신굿탈 공연이 있다는 것도 몰랐는데,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열린다고 한다. 완전 럭키비키잖아~!


병산서원은 과연 아름다웠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진 않아 금방 둘러볼 수 있었지만, 서원에 앉아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는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서원 안에는 배롱나무가 곱게 피어 있었고, 분재처럼 다듬어진 나무들이 잘 조경되어 있어 구경할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사람이 없었으면 더 고즈넉하고 좋았을 것 같다. 그곳에 머물며 책 한 권 읽을 수 있었다면, 그 또한 큰 낭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버스 시간 때문에 10분 남짓 둘러보고 나와야 했다. (게다가 버스 정류장과 서원이 왕복 10분이나 떨어져 있다… 왜?!)

짧게 즐겼던 멋진 병산서원

짧은 병산서원 구경을 마치고 다시 하회마을로 돌아온 우리는, 입구에서 제공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드디어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하회별신굿탈놀이, K-컬쳐의 매운맛


하회마을 구경에 앞서, 관광안내소에서 소개했던 하회별신굿탈놀이 공연을 보러갔다. 탈놀이 전수관이 셔틀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왼쪽에 있었는데, 무작정 마을 쪽으로 걸어 들어간 탓에 잠시 헤맸다. 본 공연장은 보수 공사 중이라 지하의 임시 공연장에서 진행한다고 했다. 무대가 생각보다 작아 조금 실망스러웠다. 공연 시작 시간이 되자 200석 가까운 자리가 가득 찼고,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붐볐다. 관객을 둘러보니 외국인 관광객도 많아서, 역시 K-컬쳐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별신굿탈놀이 공연. 나무위키를 찾아보니 총 여덟 개의 마당이 존재한다는데, 우리는 앞의 여섯 개를 보았다. 첫 번째 무동마당은 각시탈이 나와서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마당이었다. 작은 공연장이지만 옆에 라이브 세션(?)이 있어서 음악 구색은 갖춰졌다. 다만 춤이 조금 느리고 지루해서 살짝 '큰일났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한 시간 공연이 내내 이런 식이면 좀 곤란한데;;ㅋㅋ 공연이 펼쳐지는 동안 양옆의 모니터에서는 각 마당의 내용을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번역해 보여 주어서, 외국인 관객들도 이해할 수는 있겠구나 싶더라.


두 번째 주지마당은 신성한 동물 '주지' 한 쌍이 등장하는 액풀이 마당이었다. 주지탈을 박물관에서 미리 봐서, 그걸 직접 착용하고 춤추는 모습을 재밌게 보았다. 입을 캐스터내츠처럼 움직이며 힘겨루기를 하는 장면이 확실히 신묘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조금은 지루한 감이 있었다.


그러나 세 번째 백정마당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앞 두 마당에서 탈춤 추시는 분들이 아무 말도 없길래 그냥 이런 예술인가보다, 했는데 여기부터는 대사가 있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백정이 소를 잡고 도축하는 묘사가 나오더니, 소의 그것(balls, 우낭)을 파는 내용이었는데- 그 큰 알들을 흔들며 관객들을 희롱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성(性)에 대해 폐쇄적인 유교 문화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대목이라고 하지만, 아이들도 많은 공연에서 너무 외설적인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다섯 번째 파계승마당에서는 수위가 더 높았다. (네 번째 할미마당은 생략.) 부네(기생)가 오줌을 싼 흔적을 발견한 땡중이 그 냄새를 맡으며 성욕을 느끼는 모습(...)은, 그 풍자의 대상과 의도를 이해하면서도 보는데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코를 흙에 파묻고 킥킥대는 묘사가 지나치게 노골적이었다. 외국인 관람객 몇 명이 이 즈음에서 나갔는데, 부디 공연에 실망한 것이 아니라 병산서원 방문 때문이었기를 바랄 정도였다.

논란의(?) 백정마당과 파계승마당

솔직히, 전통문화 예술에서 PC(정치적 올바름)을 기대하진 않는다. 그것이 현재의 기준에서 너무 선정적이라거나, 사회 통념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 내용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애초에 당시의 젠체하는 양반들, 유교 문화를 디스하기 위해 만들어진 풍자, 사회비판 성격의 장르이다. 그래도 이렇게 전위적일 줄은 몰랐다. 소가 쓰러지는 장면에서는 진짜 사람들이 '헉'하는 소리가 들렸다. 파계승 장면은 진짜 의도한 대로 불쾌감이 팍 들었다. 외국인들이 보면 어땠을까. 오우 K-컬쳐, so spicy... 내가 봐도 매웠다. 적어도 공연 전에 '이 공연에는 선정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같은 경고 문구는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들었다.


물론 전승자 분들의 노력은 존경스러웠다. 공연이 재미없고 불쾌했다는 얘기가 아님. 잠깐 어지럽긴 했는데, 애초에 여기서 PC하지 않다는 이유로 불편해하는 것도 우습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정신 놓고 즐겼다. 여섯 번째 양반선비마당은 이전에 나왔던 모든 탈들이 나오는 마당이다. 대사도 재치 있었고, 전체적으로 연기나 춤은 모두 맛깔났다. 탈의 표정이 바뀌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공연 끝에 탈을 벗고 인사할 때 보니, 모두 나이가 그윽한 어르신들이어서 또 깜짝 놀랐다. 할미탈이나 부네탈 안에는 여성분이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지. 아무튼, 무료로 보기 죄송할 정도로 좋은 공연이었다. (아, 하회마을 입장료가 이 공연으로 표값했다.) 조금의 경고사항을 숙지하고 본다면, 분명 관람을 추천하고 싶은 공연이다.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하회마을, 그리고 여행의 마무리



정작 하회마을은 할 이야기가 많지 않다. 날이 더워 돌아다니기 힘들었던 것만 빼면, 그냥 좋았다. 확실히 전주한옥마을이나 다른 민속촌과는 느낌이 달랐다. 훨씬 전원(田原)의 분위기가 강했다. 입구부터 연꽃밭이 있고, 모시밭과 논이 이어져 있었다. 마을을 에워싼 낙동강이 평화로운 느낌을 더했다. 부용대는 케이크 단면처럼 지층이 드러난 모습이었지만, 대단한 광경은 아니었다. 우리가 방문한 날 밤 ‘선유줄불놀이’가 예정되어 있어 여러 시설물이 설치된 탓일 수도 있다. (이거 예전에 유튜브에서 보고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하회마을에서 하는 줄은 몰랐지... 알았다면 여행 계획에 넣었을 텐데 조금 아쉽다.)


마을은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고 있었고, 지나치게 상업적인 느낌이 없어 좋았다. 곳곳이 아날로그한 분위기를 풍겼고, 편의점 하나 없는 점마저 기대했던 바여서 만족스러웠다. 정말 옛날 우리나라 지방 마을도 이랬을까? 평화롭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하회마을은 그래서 사계절을 모두 방문해보고 싶다. 꽃피는 봄이나 낙엽지는 가을, 눈덮인 겨울은 또 다른 감상을 전해줄 것 같다. 다음에 꼭 다시 와야지, 대신 여름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너무 더워.

참 좋은 풍경

시내로 돌아올 때도 210번 버스를 탔다. 관광용으로 만든 특별한 버스였는지, 내부 구조가 특이해 재미있었다.

놀이동산 온 것 같아!

저녁으로는 일직식당에서 고등어조림을 먹고, 잠시 집에서 쉬었다가 또 술을 먹으러 나섰다. 안동소주에는 두 브랜드가 있다고 했죠? 전날 '민속주 안동소주'를 한껏 즐겼으니, 이번에는 '명인 안동소주'를 즐기기로 했다. "명인안동소주 브랜드관 잔잔"은 명인 안동소주를 사용한 칵테일을 판매한다. 인테리어도 잘 꾸며놓았고, 재미있는 창작 칵테일이 있는 곳이다. '안동 한량'이랑 '안동 사워'를 주문했는데, 사장님이 술을 가져다 주시면서 약간의 스토리텔링도 해주시고, 훈연기를 사용한 쇼를 보여주셔서 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칵테일바 잔잔, 방문 추천

돌아오는 길에는 또 '막창골목'이 있길래 술을 더했다. 경상도에 왔으니 '참'으로 달렸다. 막창도, 갈매기살도 훌륭했다. (안동에서 먹은 것 중에 제일 맛있었다 하면 안 되겠죠?) 안동에서 먹는 소주가 곧 안동소주라며 인당 세 병씩은 마셨다. 나와 이렇게 진하게 대작해주는 친구가 있어서 참 좋다... 잔디야, 어떡하냐? 나 너 사랑하나 봐.

참, 좋은 소주

그 결말은 뭐, 만취 엔딩이었다. 다음날 체크아웃 시간까지 뻗어있다가, 겨우 일어나 시장에서 해장국을 먹었다. "옥야식당"이라는 곳이었는데,. 찾아보니 리뷰도 많고 꽤 맛집이었던 듯? 선지해장국이 아주 야무졌다. 맛집 인정. 잔디는 숙취로 조금 힘들어하는 것 같더라.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카페에서 내내 뻗어있었다. 귀여운 녀석.


술 좀 줄이자, 친구야. 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렇게 마실 수 있을 때 마셔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나쁜 생각을 또 하는 나였다.


keyword
이전 08화소주, 찜닭, 간고등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