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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돈 아깝지 않게 먹는 법

7월 셋째 주 - (3) 강원도 평창

by 인용구

상원사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중, 저녁 메뉴가 정해졌다. 무려 한우(!)를 먹기로 한 것이다. 평창 한우? 원래 평창이 한우로 유명한가? 보통 한우 하면 떠오르는 지역은 횡성이지만, 가까우니까 뭐 비슷한 걸로 하시죠. 마침 오대산 가는 길에 "국립축산과학원 한우연구센터"도 보았겠다, 오늘부터 한우는 평창이다. 비싼 소고기를 먹자는 데 트집 잡을 이유는 없다. 바로 식당을 알아보고 네이버 예약을 완료했다. (미리 예약하면 5% 할인과 사은품이 있다. 우리는 사골 육수팩을 받았다.)


평창 시내로 돌아오니 저녁을 먹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라, 시내의 유일한 스타벅스(평창 DT점)를 찾아가 시간을 보냈다. 찾아보니 다음으로 가까운 스타벅스는 강릉 IC DT점이었는데, 거리가 무려 25.2km였다. 원주에서 강릉을 잇는 영동고속도로 상에 위치한 유일한 스타벅스... 그래도 기프티콘을 쓸 수 있는 곳이 하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보르헤스의 <픽션들>을 조금 더 읽고, 여행에 대한 감상도 메모로 남기면서 한우를 먹는 순간을 기다렸다.



So, 고기를 먹었는데요


식당 이름은 "평창한우마을 정육식당"이었다. 일주일 만에 전주한옥마을에서 평창한우마을로 오다니... 진짜 성공한 삶이다. 정육식당답게 1층에서는 고기를 판매하고, 2층에서 바로 구워 먹을 수 있는 구조였다. 착각일 수도 있지만, 이런 곳은 메뉴판을 보며 주문하는 일반 고깃집보다는 조금 더 가성비가 있는 느낌이다. 물론 많이 먹는다는 가정 하에. 고기 값에 서비스 비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렇다. 상차림비를 받긴 하지만, 먹는 고기 양에 상관없이 한 번만 내면 되니까요. 또, 내가 먹을 고기를 직접 보고 선택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장점인 것 같다. 가끔 주문한 고기가 가격에 비해 초라해(?) 보이면 마음이 안 좋다.


고기 냉장고 앞에 서서 한참을 고민했다. 부위도 등급도 다양했고, 그 가격은 또 천차만별이었다. 기왕 한우를 먹는 만큼 양보단 질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았지만, 그렇다고 허기진 채로 식당을 나오긴 싫었다. 고심 끝에 1등급 등심, 채끝, 부채살로 구성된 3인용 팩을 골랐다. (그램 수는 기억이 나지 않는 한 근 정도 됐던 것 같아요.) 가격은 10만 원 가까이 나왔던 것 같다. 상차림비에 식사까지 하면 인당 4만 원은 썼을 듯.



잠시 한우 얘기 벗어나서. 지지리 궁상인 것 아는데, 나는 이런 상황에서 자꾸만 계산적이게 된다. '한 끼에 4만 원을 태워? 그 돈으로 삼겹살 먹으면 배 터지게 먹는데.' 같은 생각을 하고, '여행 왔잖아. 점심 김밥 먹었잖아. 삼겹살이랑 한우랑 같니?' 하며 스스로를 설득한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집이 가끔 한우 못 사 먹을 정도로 가난한 것도 아니고, 내가 평소에 막 엄청나게 검소하게 생활하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한 달 술값이..) 그런데도 뭔가를 살 때면 가성비부터 따지고, '사치를 부린다'는 생각이 들면 하염없이... 부끄럽다.


사실 나는 감각이 예민한 편이어서 완전 '저급 초딩 입맛'도 아니다. 고급 숙성회의 오묘한 감칠맛도 즐길 줄 알고, 조미료로 맛을 낸 싸구려 불량식품을 먹으면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숙성회보다 활어회를 더 편하게 즐기고, 노포 식당의 분위기를 좋아하고. 고급 양주를 아껴 마시는 것보다 소주잔을 부딪히며 얼큰하게 취하는 걸 더 좋아한다. '서민'의 삶을 지향하고 싶어한다. 혹시 이것도 일종의 언더도그마인가?


아무튼, 그래서 나는 사치를 즐기지 않는다. 그보다 적은 비용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 그런데 그게 '부끄러움'일 필요는 없지 않나 반성하는 요즘이다. 돈 아껴서 뭐 할 건데? 가끔 이렇게 좋은 경험 하려고 그러는 것 아니야? 한편으로는 너무 가성비만 따지는 것도 좀, 궁상맞다는 것을 느꼈다.


8년 전, 절친한 친구에게 "너 가끔 보면 너무 거지근성이 심한 거 같아,"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의 수치심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벌렁거리는데, "우리 집이 너희 집보다 못 살지는 않을 텐데?"라고 대꾸하려다가 꾹 참았다. 그 녀석도 그걸 몰랐겠냐, 그런데도 내가 자꾸 망설이고 돈 아까워하는 모습이, 오히려 좀 기만적이라고 느꼈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거지근성'이라니. 우리 부모님이 그렇게 나 키우지 않았다. 이런 말 밖에서 듣는 건 부모님을 욕되게 하는 것 같아서, 가끔은 좀 있는 티도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요즘은 종종(?) 과소비도 잘 한다. FLEX, '돈 쓰는 즐거움'도 배워야지. 수업료가 비싸긴 한데, 일단 비싼 건 좋긴 함ㅋㅋ 그건 확실히 알게 되었다. 또, 내 용돈을 내가 벌게 되니 지출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후배나 동생들에게도 선뜻 잘 사주는 선배가 되려고 한다. 조금이라도 더 벌 때 생색을 내야지. 돈으로 환심을 살 수 있다니, 생각해 보면 엄청 가성비 좋은 일 아닌가! 내 사람들 챙길 때는 기분이 좋다. (박살 난 경제관념..)


물론 지금도 누군가에게 얻어먹거나 비싼 선물을 받을 때는 부담스럽다. 황송하고 송구스럽다. 그럴 때면, 내가 누군가를 사줄 때의 즐거움을 떠올리며 ‘그걸 당신에게서 빼앗진 않겠다’고 마음먹는다. 나 당신에게 되게 소중한 사람이구나, 그걸 알려주고 싶은 거잖아요? 감사히 받고, 120% 즐기며 리액션해서 돈 쓴 보람 있게 하기. 그래도 너무 부담스러우면, 나중에 내가 갚으면 되는 일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와, 다른 얘기 되게 오래 했네. 다시 평창한우마을로 돌아와서, 아버지가 결제한 고기 한 접시를 소중히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친절한 직원들이 창 자리로 안내해 주었고, 이내 정말 좋아 보이는 숯이 놓였다. 고기 세 덩어리를 올리는 순서를 고민하다가, 부-채-등 순으로 굽기로 했다.

숯이 좋았다.. 정작 고기는 굽는 데 집중하느라 못 찍음;;

신중에 신중을 기하면서, 고기를 열심히 구웠다. 만화 <식객>에서 봤는데, 기름이 떨어지면 그 자리에서 연기가 올라오면서 그을음이 생기는 거래. 그러니까... 『지금』<- 이런 호들갑을 쳐가며 얻은 고기 한 점의 맛은... 가히 "천상의 맛". 역시 소고기 첫 점은 참 맛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 후로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두 점째는 그냥 첫 입과 비슷한 맛이고, 괜히 소금 말고 다른 밑반찬이랑 한 번 먹어보게 되는. (고추냉이랑 같이 먹으면 좋은데, 처음에 안 줘서 아쉬웠거든요? 요청하면 줍니다. 우리는 등심 절반 먹었을 때 알았어요 까비.) 채끝살은 조금 질기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니, 엄청 맛있었거든요? 근데 기대가 너무 커서 그랬는지, 한 점 한 점 음미하면서 먹다 보면 괜히 아쉬운 점도 발견하게 되는 것이었다. 등심도 맛있었는데, ‘역시 평창 한우는 확실히 다르다’ 이런 감상까지 들지는 않았다. 막 입안에서 살살 녹진 않았다는 말. 혹시 이것도 1++ 등급이 아니어서 그랬던 걸까?


그래서 생각이 많아진 나는, 다음에 한우를 먹게 된다면 어떻게 고기를 사야 좀 더 잘 즐길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다. 그리하여 공개하는 "한우 돈 아깝지 않게 먹는 법". 완전 뇌피셜 이론(가설)이니 얼마든지 반박 환영.


1. 등급이 낮은 고기로 다양한 부위를 먹어본다 – 처음부터 1++급 한우를 먹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소고기는 원래 맛있으니까, 일단은 조금 등급이 낮은 소고기를 통해 맛있는 부위를 찾아보는 거다. 그냥 구이용 등급이면 2등급, 1등급도 좋고, 꼭 한우가 아니어도 되니까 일단 ‘소고기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육향과 식감에 집중해서 부위별 특성을 파악해 보자.


2. 그중 가장 맛있었던 부위를 더 높은 등급으로 먹어본다 – 이제 대조군이 생겼으니, 한 번 비싼 고기가 ‘돈값을 하는지’ 확인해 볼 차례다. 가장 맛있었던 고기 부위로 앵콜을 하되, 처음 먹은 것보다 더 높은 등급으로 맛보는 것이다. 마블링이 달라지면서 확실히 육즙이 더 많이 나오는지, 기름이 살살 녹는지 이런 포인트에 집중하며 맛을 보면 좋겠다.


3. 먹을 때만큼은 돈 생각하지 말기 – 이게 되게 중요한 것 같은데, 그냥 인당 예산은 가늠해 보되 먹을 때만큼은 비싸다는 의식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나도 인당 4만 원은 감수하고 있었지만, 막상 고기를 잘라 한 점을 먹는데 ‘이게 2천 원인 거죠?’라고 생각하니까 훨씬 부담스럽고 기대도 높아졌다. 그런 과한 기대는 오히려 과한 실망을 불러올 수도 있다. 맛있게 한우 즐기는 데 몇만 원 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럼 결제한 다음부터는 생각 금지. 맛을 즐기는 데에 영향을 준다.


대충, 등심 1++로 한 번만 더 먹어보고 싶었다는 얘기. 고기가 비싼 건 맞으니까 그걸로 배를 채울 필요는 없는 것 같고, 좋은 경험이다 생각하며 맛보기에 집중하면 그럭저럭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식당에서 후식으로 시킨 냉면이랑 된장찌개는 실망스럽지 않게 확실히 맛있어서 다행이었다. (원래 고깃집 가서 냉면 안 시키는데, 여긴 냉면이 고기 더 먹는 것보다 싸서….) 육회비빔밥도 시켜 먹었는데, 뭔가 새싹 같은 야채 고명이 고기 맛을 많이 지우는 느낌이어서 아쉬웠다. 육회 자체는 평범. 무난했음.


그래도, 좋은 구경을 하고 맛난 음식을 먹었으니 여행 3일 차도 잘 즐긴 것 아닐까? 숙소에서 마지막 밤은 지역 막걸리와 함께했다. 전날 아바이순대와 먹었던 "봉평 메밀 막걸리"가 제일 맛있었다. 그래서는 아닌데, 다음날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봉평을 들렀다.

로컬막걸리 또 열심히 (약 2.5L) 먹어줬고요.

봉평, 이효석문학촌


메밀 막국수를 파는 집 가운데 봉평 메밀을 쓰지 않는 곳은 본 적이 없다. 사실 우리나라의 최대 메밀 생산지는 제주도라고 하는데, 그럼에도 봉평이 메밀로 유명한 것은 단연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소설 덕분이다. 봉평이란 이름은 익숙했지만, 정작 어디있는지도 몰랐는데 이번에야 평창군의 작은 면(面)이라는 걸 알았다.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이쯤 되면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면 중 하나일지도. "메밀꽃 필 무렵" 이 정말 큰 일 했다.

시장에서 먹은 메밀부침개와 전병, 수수부꾸미. 올챙이국수도 처음 먹어보는데 차가워서 놀랐다.

아닌 게 아니라, 봉평면에 가보니 어딜 가나 "메밀꽃 필 무렵" 천지였다. 봉평전통시장 입구부터 이효석 동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온갖 곳에 "메밀꽃 필 무렵"의 가장 유명한 구절이 적혀 있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살짝 긁힌 부분이 있었다. 저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흐붓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봉평 시내에서 본 문구 절반은 '흐뭇한'으로 적혀있었다. 심지어 기념비에는 '흐믓한'이라고 새겨져 있더라. 원문은 '흐붓한'이 맞다.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라고 하는데, 말맛은 훨씬 살아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래 기사를 참조해 주길 바란다.


'흐뭇하다'는 '흡족하다, 만족스럽다'의 뜻이지만, '흐붓하다'는 '흐벅지다'에서 파생된 말로 여겨지며, "탐스러울 정도로 두툼하고 부드럽다 또는 양이 많다"의 뜻을 지닌다. 그래서 '달빛이 흐뭇하다'는 것은 '달빛이 흡족할 만큼 만족스럽다'는 뜻이지만, '달빛이 흐붓하다'고 하면 '달빛이 탐스러울 정도로 아름답고 포근하다'는 뜻이 된다. (중략)

모르긴 몰라도 이효석은 그 어감과 의미를 생각해서 '흐뭇'이 아니라 '흐붓'을 썼다. 이런 아주 미미하고 미세한 부분까지 고려해서 작가는 단어를 선택한다. 그런데 마음대로 단어를 바꿔버린다면 작가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며, 그만큼 작품의 느낌도 상쇄된다. 작가는 이런 것들에 매달린다.

[출처]: https://www.kbmaeil.com/article/201701200182737


나도 소설을 읽었을 때 '흐붓함'이 주는 인상이 너무 좋았다. 모르긴 몰라도 뭔가 흐드러지는, 분분하여 흠뻑 적시는, 그래서 정말 '숨이 막힐 지경인' 풍경이 그려졌다. '흐뭇함'으로 바꾸면 그 의미가 너무 달라진다. 셰익스피어가 'lonely'를 비롯한 수천 개의 단어를 새로 만든 것처럼, 이효석이 만든 신조어가 낯선 나에게도 어떤 의미와 감동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엄청 빼어나다고 느꼈단 말이다.


그것에서 깊은 영감을 받아 나도 나만의 단어들을 만들어 시를 써본 적도 있다.


달이 보름지다.

모자랄 것이 없는 밤이다. 달빛 흐붓한 공기를 깊게 마시니 모든 것이 안녕하다. 넉넉한 마음 찬찬한 호흡으로 다독이며 어스레한 동산 길을 올라본다. 밤벌레의 울음소리 호젓함을 달래주니 반갑고, 밟히는 이른 낙엽은 인사도 없이 군대 가버린 친구처럼 뭇 섭섭타.

언덕에는 굵은 산벚나무가 옹연한 자태로 단단히 서있었다. 나를 보듬던 분들의 거친 손등 같아 잠시 기대 본다. 눈을 감고 고래의 호흡을 헤듯이 수짓한 맥박을 느낀다. 등을 타고 선선한 정기가 흘러 무룩하니 가슴을 적신다.

몇 모금의 시간 후 눈을 여니 은명한 빛은 여전하였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빛에, 종일 치대고 에이던 곳도 쉬이-...

훌적했던 하루도 풀어지는 것이었다.

보름지다, 수짓한, 무룩하니, 은명한, 훌적했던... 이런 단어들을 조합하며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무튼, 이효석에 대한 리스펙을 할 거면 좀 제대로 하란 말이다! 이효석으로 먹고사는 동네면 말이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좀 심했다. 이효석길, 효석문화마을, 효석달빛언덕, 이효석 문학의 숲, 이효석 생가, 이효석 문학관…. 모든 곳이 이효석이어서, 이쯤 되면 문학관을 안 가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메밀꽃 필 무렵" 말고는 이효석의 다른 작품을 몰랐다.


그래서 방문한 이효석 문학관, 입장료를 2천 원 받길래 기대했는데 전시는 다소 부실했다. 공간의 1/3은 봉평 메밀 홍보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고, 이효석의 생애와 발표작들이 연표로 나열되어 있었으나 각각의 작품이 어떤 문학적 가치를 갖는지는 충분히 느끼기 어려웠다. 하다못해 좋은 구절이나, 소설의 줄거리 정도는 같이 소개를 해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았다.


그나마 15분가량의 홍보자료 영상을 보면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걸 본 감상은 오히려 이효석에 대한 실망감(?)을 안겼다. 이효석은 등단 초기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문학에 관심이 많아 '동반자 작가'로 불렸으나, 이후 순수문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해졌지만 그것 말고 향토적인 작품이 많지는 않았고, 오히려 서구 문화와 생활양식에 대한 강한 동경 있었다고 한다. 일제에 직접 부역하는 작품을 쓰진 않았지만, 일본어 작품도 여럿 발표했다고 하니. 뭐랄까 잘 포장했지만 그냥 어느 정도 당대의 사회적 시대적 상황에서 애써 눈 돌리며 마냥 '순수'하고 싶었나 보네, 제법 사대주의적인 면모가 엿보이네, 라는 인상이 강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평가가 너무 박한 것 같아, 조금 더 찾아보니 이런 평가도 있다:

일제는 그 말기에 우리 문화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한글 사용을 억제하였으므로 우리 문인들은 붓을 꺾거나 일문으로 작품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이효석 선생도 <은빛 송어> 등 5편의 단편과 <녹색의 탑>이라는 장편을 일문으로 발표하였다. [이것들은 모두 우리말로 번역 발행되어 있다.] 그러나 이효석 선생은 일제의 어용 교육기관인 경성 제일고보와 경성제국대학 출신에다 당대의 유명 문인으로 온갖 회유와 박해를 받았으련만 끝내 창씨개명을 거부했고 창작에 부득이 일문을 사용하면서도 내용에서 친일성을 철저히 배제한 애국 작가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출처: https://www.dsb.kr:40007/detail.php?number=10713&thread=21r10&PHPSESSID=31c38d4c5c7d312496c36d8474e80ea0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한글을 지켜낸 문인들이 있고, 붓을 꺾은 사람들도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설명만으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윤동주가 창씨 개명을 했다고 친일을 한 건 아니지 않나? 내용에서 친일성을 철저히 배제했다는 설명은 소설을 직접 읽어봐야 알 것 같았다.


게다가 여러 번 언급된 "유진오"와의 친분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초기에는 이효석과 같은 '동반자 작가'였으나, 중일전쟁 이후 변절해 친일 반공으로 전향했고, 광복 후에는 초대 법제처장을 지냈다. 이효석의 임종을 지켜볼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고 하니, 어쩌면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효석 신화"를 만든 장본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건 나무위키에서 가져온 평가:


절친한 친구 유진오가 소설가이자 학계, 정계의 거물이라 정치권력을 뒤에 두고 문단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는 먼저 간 친구를 기리고 부각시키는 데 성심을 다했다. 반민족 행위 경력이 있음에도 오래 회자되는 작가들은 서정주나 김동인처럼 차마 지워 없앨 수 없을 정도로 문학적 성과가 뚜렷한 작가들이 대부분인데, 이효석은 유진오의 판깔기로 예외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모든 것이 조금 우습게 느껴졌다.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 그나마도 배경이 봉평이었기에 동네가 열심히 치켜세워주는 것이지, 만약 제목이 "사쿠라 필 무렵"이었다면? 아마 고향에서도 무시받았을 것이다. (아니면 벚나무를 많이 심었으려나?) 결국, 메밀 장사와 관광 유치를 위한 간판 역할에 불과하다는, 그런 못된 생각이 자꾸 들었다. (비슷한 예로 춘천 김유정문학촌이 있다.) 그래도 8월, 9월에 정말 메밀꽃 흐붓하게 피었을 때는 한 번 와볼만 할 것 같다.

이효석 문학관 뒷산 이름도 문학산이었다. 정상은 문필봉.. 멋있다.

점심은 다시 시장 근처로 돌아와 "현대막국수"에서 먹었다. 메밀면 100%라고 하여 기대를 했는데, 확실히 일반 족발집에서 먹는 막국수와 맛은 달랐지만 그것이 더 입에 맞았는지는 모르겠다. 당면 같은 찰기가 아예 없고 면이 조금 거친 느낌이긴 했음. 다만 여기도 "모주"라는 걸 팔길래 설마 전주 모주랑 비슷한 건가 시켜봤는데, 훨씬 맛있었다. 도수도 11도면 나쁘지 않죠. 이게 술이지~


위에 올라간 것도 메밀 순이려나?

부모님이 경기도 이천 쯤에서 터미널에 내려주셔서, 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돌아왔다. 유독 길었던 이번 여행, 그것도 혼자가 아닌 오랜만의 가족 여행이어서 좀 피곤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더운 날씨에도 곰배령과 선재길을 함께 걸을 만큼 건강한 부모님이 계신 건 참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다. 다음에도 이렇게 또 기회가 있다면, 무리하지 않는 걸음으로 오래 같이 걸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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