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셋째 주 - (1) 강원도 일대
전 주에는 홀로 전주를 다녀왔다면 이번 주에는 부모님과 3박 4일 일정으로 강원도 일대를 여행했다. 평창(대관령)에 숙소를 잡고 강릉, 인제, 양양, 속초를 두루 다녔는데, 지역 특성상 산행이 많은 일정이었다. 나는 오히려 좋았다. 이번 여행이 아니었다면 혼자서라도 강원도 한 번 산 타러 가려했거든. 이번에도 아주 작정하고 등산을 하려던 건 아니어서 못했지만, 언젠가 잘 준비해서 설악산 대청봉을 직접 밟아보고 싶은 꿈이 있다. 나랑 공룡능선 같이 탈 친구 없으려나?
여행 첫 이틀은 큰 이모 내외도 함께하여 5인큐를 완성했다. 이 글은 그 여행의 전반부, 첫 이틀에 대한 이야기이다.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3시였다. 전국 곳곳에 호우 피해 소식이 끊이지 않아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대관령에 도착할 즈음에는 비가 그쳤다. 어른들이 주문진에서 회를 사러 가신다 하여, 나는 방에 혼자 남아 보르헤스 <픽션들>을 읽었다. (차 한 대로 이동하신다 하여 그냥 쉬었음... 불효자식 맞음...)
화요일 문뜨 소설 모임에서 읽기로 한 책인데, 정말 어렵고 지루했다. 혼자서는 도저히 못 읽겠어서 인터넷 서평과 줄거리 요약도 좀 훑어보고 했는데도, 겨우 무슨 말인지 어렴풋한 느낌만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1994년 번역본을 읽어서 더 어렵게 느껴졌던 것도 있었다. 1부 서문 첫 문장이 "이 책에 들어 있는 일곱 개의 단편들은 특별한 주석을 요하지 않는다,"인데, 페이지마다 옮긴이의 빼곡한 주석이 달려있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그래도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았다. 대관령은 우리나라에서도 연평균 기온이 가장 낮은 지역으로 유명한데, 아니나 다를까. 비가 온 후라지만 한낮에도 기온이 25도를 넘지 않았다. (당시 대전은 35도였다고!) 창문을 통해 나무를 흔들던 바람이 들어오는데 그게 퍽 운치 있어서, 재미없는 책도 왠지 읽을 맛이 났다. 숙소에 에어컨이 없는데도 밤에 더운 줄 모르고 잘 잔 거 보면 정말 여름 피서지로는 최고였다.
저녁이 되니 어른들이 시장에서 돌아오셨다. 광어, 도미, 방어와 복어, 멍게에 오징어까지 정말 푸짐한 구성으로 만찬을 즐겼다. 사실 광어, 도미, 방어 하면 친구들과 겨울철 여행지에서 먹는 단골 3인방인데, 복어는 어른들과 함께할 때만 맛볼 수 있는 고급 횟감 같아서 괜히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실제로도 식감이 확실히 달랐다.) 무려 12만 원어치를 사 왔다고 하셨는데, 회 양이 정말 많았다. 회만 먹어서 배불러본 건 진짜 처음인 듯. 한동안은 회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진짜 많이 먹었다.
바닥에 앉아 먹을 상이 없어서 아이스박스와 캐리어 위에 신문지를 깔고 둘러앉았다. 근데 또 그게 막썬회 감성에는 더 맞는 거 같기도 하고. 부모님이 텃밭에서 기른 상추랑 깻잎, 바질(?!)도 챙겨 오셨는데, 그것에 회를 푹푹 싸 먹는 맛은 고급 횟집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감성이었다.
숙성회와 활어회는, 물론 다른 느낌이다. 위생적인 환경에서 포를 뜬 후 숙성지로 감싸 냉장고에 두었다가, 편백 도마 위에서 사시미 칼로 정갈하게 썰어 내놓는 회. 그런 숙성회에 대한 선망이 없진 않다. 아무래도 더 비싸고, 그만큼 더 맛있으니까. 숙성을 하면 생선 고유의 살맛도 더 잘 난다고 하니, 왠지 초장을 찍어 먹으면 범죄 같고, 괜히 와사비도 생이 아니면 아쉽다. 유튜브에서 본 것처럼 소금을 뿌려 먹어보기도 하며 '미식가'인 척하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내게 더 친숙한 것은 아무래도 활어회. 수산시장에서 피곤한 눈치 싸움과 적당한 흥정을 거쳐 얻어낸, 내가 아니었다면 잠시 더 살았을 생선들을 아주머니들이 눈앞에서 잡는다. 피를 해수에 벅벅 씻어가며 숭덩숭덩 썰어내는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다. 투박한 손질 탓에 버려지는 살을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스티로폼 도시락에 위 - 천사채도 없이 대나무잎을 모방한 종이 깔개 위에 가득 담겨, 고무줄 하나로 툭 묶인 - 선도 100% 활어회가 눈앞에 놓인다. 그 쌈마이(?) 감성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다.
젠체하며 한 점 한 점 값을 생각하며 음미하는 것보다, "야- 니 이게 얼만지 아나? 이런 거 스울에선 절~대로 못 묵는다!" 하며 붓싼 감성으로 먹는 거. (물론 저희 집도, 이모 내외도 부산 출신은 아님.) 그 낭만이 내겐 하나의 기쁨이었다. 녹말과 식용색소, 실제 고추냉이 함유량이 궁금한 연와사비를 초장에 대충 섞어 회를 푹 찍는다. 상추에 깻잎을 겹쳐 깔고, 회 두어 점에 마늘 한 점, 고추 하나 올려 입에 넣을 때의 즐거움. 이를 밀어내는 탱글탱글한 회를 씹어 삼키고는, 시원하게 들이켜는 소맥 한 잔. 캬~ 죽인다. 어른들과 그 흥겨운 과정을 반복하며 소맥도 연거푸 들이키고, 아빠랑 이모부 주무실 때는 엄마랑 이모랑 와인도 나눠 마셨다. 곯아떨어진 시간은 11시였다. (대충 첫날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야무지게 술 먹고 뻗었단 이야기)
이튿날은 새벽 5시 반부터 시작됐다. 일찍 잤다고는 하지만, 너무 일찍 기상한 것 아닌가요... 그래도 아침잠 없는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어느 정도 각오는 했다. 이날은 아침 9시부터 등산 일정이 있었다.
"점봉산 곰배령"은 설악산 국립공원 남단, 인제군에 위치해 있다. 설악산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점봉산이나 곰배령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다. 근처에 한계령은 알거든요,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고 함 (feat. 양희은). 곰배령 생태숲은 '대한민국 100대 명품숲' 중 하나라고 한다. 솔직히 우리나라 숲 이름을 100개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긴 하다. 그럼에도 기대를 품었던 이유는, 여기는 입산하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 곳이었다. 그렇다고 또 유료도 아님. 입장료가 없는 대신 일일 출입 인원을 제한할 정도면 얼마나 멋진 곳일지 궁금했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7시 반쯤 숙소를 나섰다. 꼬불꼬불한 강원도 산길을 따라 차로 한참 올라가니 곰배령 초입에 닿았다. 길이 좁고 험해서 뭐 사람들이 많이 오기는 하나 했는데, 금방 산악회 버스가 여러 대 도착했다. 사람이 정말 많았다. (이건 살짝 불호 포인트) 그래도 곰배령 생태숲길은 좋았다. '숲'이라는 이름답게 경사가 심하진 않았고, 옆에 계곡이 우렁차게 흘러서 내내 시원했다. 확실히 비 온 후라 물이 많았던 것 같은데, 덕분에 크고 작은 폭포들이 생겨서 물소리가 좋았다.
전에 제주도 바다를 찾았을 때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물은, 너무 투명해서 거대해지면 하늘마저 담는다. 그 색이 푸르다 못해 검을 지경이다. 투명함이지만 공허함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듯, 장엄한 색을 갖는 바다가 좋았다. 그런데 파도가 부서질 때 드러나는 하얀색은 새롭게 다가왔다. 물도 다른 존재와 충돌한다. 경계에서 맞부딪힐 때 철썩, 하고 부서진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파도가 부서지는 모습뿐이지만, 사실 긴 시간을 두고 보면 바위가 깎여나가는 것이다. 해변이 그 증거다. 물은 항상 이긴다. 다만, 매 전투에서는 져주는 것이다. 그 모습이 하얗다. 어떤 얼룩도 없이.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물은 평소에 투명하다가, 다른 존재와 부딪힐 때는 하얗다. 마찰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모습이 새하얀 물이 좋았다. 특히 계곡의 백색은 탄산처럼 좀 더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이다. 바다는 거대한 체급 때문에 '져주는' 느낌이 강하지만, 계곡물은 좁은 만큼 맹렬하고 젊은 느낌이 있달까, 어떤 호승심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유연하다. 물대포는 아니어서 무대포는 아니다. 막아서는 바위 때문에 멈춰서는 일 없이, 뚫고야 말겠다는 그런 아집 없이, 다른 길을 찾아 에둘러서, 때로는 넘어서면서, 흐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 점이 또 좋았다. 또 그 과정에서 바위에게도 영향을 준다는 점이. 단단하고 무뚝뚝한 녀석을 오랜 시간에 걸쳐 더 원만하게, 둥글고 매끈하게 하는 그 선함이 나는 좋았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등산이라고 하긴 애매한, 평탄하고 걷기 좋은 길이었지만 확실히 호우의 여파가 느껴졌다. 길 곳곳에 물웅덩이가 있는가 하면, 땅이 질어서 신발에 진흙이 묻는 게 신경 쓰였다. 끊임없이 발밑을 살펴야 했고, 괜히 쉬운 길을 밟지 못해 이상한 길을 새로 개척하기도 해야 했다. 그래서 좀 짜증이 날 뻔하다가, 갑자기 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흙이 젖으면 진흙이 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렇지. 질은 흙이 진흙이지. 그 당연한 것을, '진흙'이란 낱말의 어원을 새삼스럽게 깨닫자 왠지 너그러운 마음이 생기는 것이었다.
어린이의 미숙함을 죄로 생각하면 안 된다. (feat. 아가야)
"애는 좋지만 애가 우는 건 싫어"
-> 하지만 애는 원래 우는걸요? 잘 우는 것이 곧 아이다움이잖아요. 그건 애가 싫은 거 아닐까요?
그렇지. 무언가를 좋아한다면, 그 대상의 당연한 단점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그것들에 분노하기에도 부족한 삶이다. 어른답지 않은 어른, 대통령답지 않은 대통령. 뭐 이런 것에 화가 날 수는 있지만, 흙이 흙의 성질을 가진다고 해서 짜증을 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자연을, 순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 어떤 화해. 그것이 돈오처럼 찾아와 기쁨이 온몸에 퍼졌다. 언제나 산행은 깨달음을 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곰배령에 이를 수 있었다. '곰배령 정상'이라고 쓸 뻔했는데, '령(嶺)'이라는 말에 '고개'나 '마루', 즉 하나의 고점(정확히는 saddle point에 가깝지만)이란 뜻이 있으므로 그냥 곰배령. 그곳에 도착하자 또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오르는 동안에는 보지 못한 안개가 자욱했다. 마치 구름이 산 사이를 흐르기 위해 모인 것처럼, 희뿌연 증기(정확히는 김에 가깝지만. 차가운 김 ㄷㄷ) 속에 야생화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그것도 아주 다양한 꽃들이 서로 구분 없이 피어 있었다. 야생화의 melting pot, 하나의 미국(美國)처럼.
표지석을 보고 나서야 곰배령의 별칭을 알 수 있었다.
"천상의 화원, 곰배령"
세상의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전에 정재승 교수님 인터뷰 때 내가 감명받아서 썸네일로도 썼던 문구인데, 그 멋진 문장이 눈앞에서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대관령은 평창과 강릉의 경계에 있고, 한계령은 인제와 양양의 사이에 있다. 곰배령은 인제군 내에서 귀둔리와 진동리 사이에 있는 고개-니까 뭐 상대적으로 좀 약해 보이긴 하지만 뭐 암튼, 이곳 또한 하나의 경계 아닌가. 그것도 해발고도 1,164m 높이에 있는. 초복인데도 정말 춥다고 느껴질 정도의 척박한 땅에서 자생하는 야생화들이, 그것도 여럿이 군락을 이룬 모습이 퍽 감동적이었다.
사람이 가꾸는 꽃밭은 보통 구역이 있단 말이죠. 네덜란드 튤립 밭처럼 색깔별, 종류별로 구분해서 질서 있게 배열되어 저들끼리 모여사는 화원은 많이 보았다. 하지만 이곳은 자연의 방식대로, 산발적으로, 얽히며 피어 있었다. 그것을 선명하게 볼 수 없다는 것마저, 좀 자연의 웅장함처럼 느껴져서 어쩐지 종교적인 감상마저 들었다. 마치 우리에게 그 전경을 허락하진 않겠다는 것처럼. 안개로 가려놓아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하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천상의 화원. 곰배령은 정말 오를 보람이 있는 장소였다.
곰배령에서 내려와서는 원래 닭백숙을 먹으려고 했다. 등산 후 백숙, 이거 국룰 아닌가요? 마침 또 초복이기도 하고. 근데 역시 초복이어서, 미리 예약을 했어야 했음. 단체 손님으로 이미 예약이 꽉 차 있어서 결국 닭은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차로 조금 멀리 돌아서, 산채 정식을 파는 식당을 갔다. 개인적으로 단백질이 먹고 싶었는데... 다행히 식당을 가보니 돼지 두루치기도 있었지만, 딱히 기록으로 남길만한 맛집? 까진 아닌 것 같아서 스킵하겠음.
식당 근처에 "오색약수터"도 있더라고요. 주차장이 무슨 홈플러스 건물만하길래 대단한 명소인가 싶었지만, 계곡은 좋았으나 약수터는 별 볼일이 없었음. (비 온 직후라 그런지 마실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고.) 그래도 설악산 등산 코스의 주요 기점인 것 같아서, 언젠가는 다시 오지 않을까요?! 싶었던 곳.
식사 후에는 이모부가 여행 첫날부터 내내 추천하신 "설악향기로"라는 곳을 가보았다. 대충 자연 경관 좋은 곳에 으레 있는 스카이워크 길이었습니다. 소나무 숲 사이를 20m 높이에서 걸을 수 있다- 이런 느낌이길래 좀 기대를 했지만 약간 겉핥기(?) 느낌이었고, 그래서 그늘도 없어서 살짝 힘들었다. 그래도 경관이 나쁘지는 않았다~. 근처 무슨 숙박촌이 있었는데 다 문 닫고 죽어가는 느낌이라서, 역시 관광 명소로 추천은 못하겠습니다. 약간 로토무 나올 것 같은 건물이 있었음. 설악향기로, 나쁘진 않았는데 나는 그곳보다 이모부를 더 좋아하는 걸로.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대충 하나의 챕터를 할애하긴 애매해서 요약으로 넘긴단 얘기)
ㅋㅋㅋ 이래놓고 아바이순대에 한 챕터 할당하는 거 개웃기네. 분명 곰배령은 인제였는데, 식사장소인 오색약수터는 양양이었고, 설악향기로는 속초 근처였다. 그래서 그냥 내친김에 속초중앙시장을 가서 또 오징어를 사 먹기로 함. 이때야 알았는데, 어제 먹었던 오징어도 활오징어가 아니었다. 시장을 가면 막 죽은 오징어를 훨씬 저렴하게 파는데(우리는 세 마리 만원에 샀다), 어차피 물에 데쳐 숙회로 먹을 것이었기 때문에 문제없었다.
다만, 내가 속초 시장을 찾는다고 했을 때 꼭 먹고 싶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속초 하면 아바이순대, 오징어순대가 또 유명하지 않은가? 마침 나는 지난주 전주에서 피순대를 먹고 깊은 감동을 받은 직후여서, 순대에 애정이 한껏 충전된 상태였다.
사실 아바이순대는 이북에서 먹던 순대, 함경도에서 대창에 만드는 순대라고 하고 - 이건 사실 글 쓰면서 방금 알았음... 내가 먹은 거 대창 순대는 아니었는데.. - 속초만의 오리지널 명물은 오징어순대라고 하는데, 이틀 연속으로 오징어를 먹는 입장에 오징어순대까지 맛보자고 하는 것은 좀 과한 것 같았다. 그래서 속초 아바이순대 골목에서, 제일 리뷰 많고 평가 좋은 "장터순대국"에서 아바이순대 2인분과 돼지 머릿고기 안주 1인분을 구매했다.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가는 차에 오르면서, 솔직히 말하면 좀 초조했다. 왜냐하면 순대는 감가상각의 원리가 크게 작용하는 음식이거든. 다시 대관령의 숙소로 돌아가려면 한 시간 반은 족히 넘게 걸리는데, 순대가 식기 전에 얼른 맛보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 낭만을 아는 어른들이, 무릇 순대는 따뜻할 때 먹는 것이 아니겠냐며 차에서 먹는 것을 허락해 주시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ㅋㅋ 차에서 포장된 순대 하나를 까서, 또 구매한 봉평 메밀 막걸리(이거 진짜 맛있음) 하나를 곁들여서 (운전자는 안 마셨습니다. - 아 자꾸 부연 달게 되네) 먹었다. 그리고 대 존 맛이었다.
하아... 지난번 글에도 말했지만, 나는 순대가 하나의 예술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돼지 창자로 만든 하나의 쌈. 피(선지)와 야채, 고기의 조화. 내가 이번에 느낀 아바이순대(장터순대국 ver.)는 선지가 많이 든 느낌은 아니었다. 짙은 칡색 보단 조금 더 밝은 색깔이어서, 안에 든 당근이나 찹쌀이 눈에 띄었다. 그래, 찹쌀. 나는 아바이순대의 특징이 찹쌀인 줄 알았음. (아니 검색해봤는데 아바이순대는 대창 피(皮), 커다란 크기가 특징이라네?! 나 아바이순대 제대로 먹은 거 맞음? 맛은 있었지만.) 장터순대국 메뉴판에서도 찹쌀을 강조했는데... 뭐, 물론 찹쌀순대가 유명하긴 하지만, 솔직히 시중의 찹쌀순대는 그냥 당면순대니까요. 얘는 당면은 안 들어가고 ㄹㅇ 찹쌀이 씹히는데, 그게 진짜 쌈 먹을 때 밥 한 술 넣는 것처럼 든든하게 밸런스 딱 잡아주어서 좋았다.
무튼, 맛있었다구요. 물론 제 원픽은 여전히 병천순대(충남집 ver.)이지만. 그래도 아바이순대를 사람들이 찾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더군다나 메밀 막걸리도 메밀 함유량 5%, 잘 만든 막걸리여서 아주 맛있게 먹었기 때문에 무척 행복했다. 나중에 다시 속초를 찾는다면 여기서 일단 국밥을 먹어야 할 것 같고, 그리고 제대로 된(대창으로 만든) 아바이순대를 한 번 탐색해봐야 할 것 같음... 오징어순대도 먹어보고요.
집에 돌아와 씻고 밥을 먹었다. 전날보단 단출했지만 좋았다. 새벽부터 시작한 긴 하루였기에, 오징어 숙회와 순대, 고기 안주에 오징어를 넣은 라면까지 끓여 먹으니 아주 든든한 한 끼였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잠들었는데, 자정이 넘은 시간에 이모댁이 집으로 돌아가신다고 하여 인사를 드렸다. 와, 이모 술 안 드심. 또 그 늦은 시간에 운전을 하신다고? 그 자제력과 체력에 다시 한번 존경심이 절로 샘솟았다. 이모와 이모부 덕분에 너무 즐거운 여행 전반부를 보냈다. 두 분의 사랑과 유쾌함이 아니었으면 우리 구 씨 일가는 분명 몇 번쯤 싸웠을지도.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
긴 하루였다. 곰배령 하이킹, 기억에 남을만한 모먼트가 많았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다음 날 갔던 곳이 걷는 즐거움은 더 컸단 말이죠... 많은 기대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