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절과 작별하는 데 아픔은 당연한가요
인용구
가을이 매년 짧아집니다
채 바래지 못한 잎들
여전히 숨을 쉬는 것들이
바닥에 나뒹굴며 헐떡거려요
하얗게 얼어붙은 국화의 계절
가까워진 종말을 실감하나요
창백한 하늘은 말없이 멀고
우리는 침묵의 의미를 알죠
어제의 바람 앞에 고개 숙여요
코트 주머니에 손을 꽂아요
만져지는 작년의 영수증
의미를 잃어버린 추억의 기록
어떻게든 다시 살겠죠
감기 같은 쓸쓸함도 필히 떠날 거고
안녕, 안녕이란 말도 내게 돌아오겠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한 시절과 작별하는 데 아픔은 당연한가요
그 아픔의 시간도 한철에 불과한가요
신음하지 말까요 엄살 같나요
그조차도 않는 우린 뭐가 되나요
완연한 가을이다. 며칠 비가 내리더니 기단이 바뀌었는지, 급격히 날이 추워졌다. 엄마와 통화를 했다. 요즘 길에 낙엽이 많이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갑작스레 추워진 탓에 아직 단풍도 들지 못한 푸른 잎들이 떨어져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전화를 받으며 길을 걷다 나도 아직 엽록소를 간직한 잎들이 바닥에 즐비한 것을 보았다.
유림공원에서는 국화 축제가 한창일 텐데, 날이 너무 추워서 나는 또 꽃들이 걱정된다. 어차피 곧 지겠지만 그들의 꽃시절이 조금은 더 길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도 추석 때 가져온 긴팔 옷을 꺼내 입었다. 코트는 생략하고 패딩을 꺼내 입어야 할 날씨. 부쩍 짧아진 가을에, 성큼 다가온 이별을 생각한다. 올해로 마지막인 것들을.
주책인 걸 알면서도 자꾸만 남은 날들을 헤어보게 된다. 아쉽고 섭섭하다. 떨켜를 만드는 일은 수고로움보다도 아픔에 가깝다. 우리가 공존하는 계절은 이것이 마지막이지만, 그렇다 하여 서로를 영영 다시 못 보는 것이 아닌데. 봄은 다시 올 텐데. 또 시간이 흐르면 그리움도 점점 옅어질 것도 경험적으로 알지만, 나는. 나는 여름 같던 시절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이 섧다.
나이가 드는 것은 이별에 익숙해지는 것이라던데. 나는 아직 철이 덜 든 건가 싶다가도, 그딴 것에 익숙해지는 건 어떤 의미가 있나 싶고. 한 시절을 떠나보내는 아픔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했으면 한다. 사랑한 만큼 아파하고, 또 사랑하니까 견뎌내는 내가 되고 싶다.
이별이 아니라 작별로 하자. 서로 안녕을 당부하는 순간에 웃고 싶어서, 나는 요즘 혼자 있을 때 이런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