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디쯤이야?
> 나 이제 시청역
- 한 정거장 남았네 금방 오겠다
> 아
> 나 여기서 내려
화면 왼편에 메시지 입력 중 표시가 잠깐 뜨더니 이내 사라졌다.
> 2호선 타고 왔어서 ㅇㅇ
> 그냥 걸어가려고
답장이 도착하기까지는 다시 5초 남짓이 걸렸다.
-알겠어~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영호가 짧은 시간 동안 했을 생각을 가늠해보았다. 환승하는 것보다 걷는 게 빠른가, 그건 아닐 텐데. 그럼 왜. 궁금해하는 게 느껴지는 몇 초의 망설임이었다. 그리고 온 답변이었다. 알겠어 물결표. 굳이 이유를 물어보지 않는 것이 영호다웠다. 마지막에 물결표를 넣는 것까지.
고개를 들어 에스컬레이터 끝을 보았다. 사라지는 계단 너머, 흔들거리는 플라타너스 이파리 사이로 쨍한 하늘이 비쳤다. 오늘 덥겠네, 작은 기합을 넣고 계단을 올랐다.
왜옹왜옹왜애옹. 왜애애앵. 덕수궁 근처라 그런지, 서울 한복판임에도 차 소리를 뚫고 매미 울음이 들려왔다. 17년 만에 지상으로 나왔건만, 기다리는 것은 지옥불 같은 무더위. 세상이 이리 가혹해도 되는 거냐 묻는 것처럼 숨이 넘어가듯 쥐어짜는 울음이었다. 왜, 왜요 왜. 나도 그렇게 묻고 싶었다. 왜 하필 유월. 올해 첫 폭염주의보 발령일을 일부러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왜 하필 오늘.
건널목 앞은 그늘이 없었다. 내리쬐는 햇볕을 손으로 가려도 오가는 자동차 유리에 반사되는 빛 때문에 눈이 찡그려졌다. 도로 너머 탁 트인 시청 앞 잔디 광장이 그나마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서울도서관 앞에 흰 천막 몇 대가 마치 구호소처럼 설치되어 있었다.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넓고, 조용했다. 여기 좋네, 좋았겠다, 생각하는 사이 신호등이 바뀌었다.
종각을 가기 전에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별 건 없었다. “책 읽는 서울광장”이라는 행사 이름에 걸맞게 천막 아래 늘어선 책상에 어린이 도서가 진열되어 있었다. 종이 썬캡에 목걸이 명찰을 찬 자원봉사자 몇 명이 자리를 지킬 뿐, 평화로운 광장의 모습이었다.
어디에도 “퀴어 출입 금지” 같은 표지판은 보이지 않았다.
시청 앞 광장 사용 금지 조치를 2년 연달아 맞은 주최 측은, 올해는 아예 사용 신청도 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퀴퍼를 직접 가지는 않았지만 언론을 통해 매년 소식은 챙겨보았다. 올해 퀴퍼 개최 소식을 알리는 뉴스 썸네일엔 드랙(drag) 분장을 한 남성이 자신감 넘치는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작년 퀴퍼에서 찍은 사진을 활용한 것 같았다. 그런 기사에는 꼭 조롱의 댓글이 수없이 달렸다.
“댓글창 너무 많이 보지 마.”
옆에서 숏츠를 던 영호가 어느새 내 화면을 보고 있었다. 이불 위에 나란히 엎드려 각자 휴대폰을 보던 중이었다. 나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뱉으며 스크롤을 내렸다.
“근데 솔직히, 일부러 멕이는 거 같아.”
“누가.”
“기자가. 굳이 저런 사진을 쓰는 게, 그냥 어그로 때문이잖아.”
“그래도 기사 내용은 평범하던데.”
“그건 그렇지.”
댓글창을 끝까지 넘긴 나는 휴대폰을 뒤집어 덮고 영호 쪽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직접 가면 어때? 저런 사람들 많아?”
“그러엄. 안 그런 사람도 많고.”
“막 진짜 웃통 다 벗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그래?”
“있지이. 근데 그건 완전 가끔. 요즘은 알아서 좀 자제하는 분위기라. 아쉽지.”
“아쉬워?”
“완전 눈 호강인데.”
킥킥 웃으며 영호는 자신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오른쪽에만 있는 영호의 쌍꺼풀 진 눈이 혜성 같은 눈꼬리를 만들었다. 그 모습이 좋으면서도 얄미워서 나는 영호한테 달라붙었다. 포근한 냄새. 영호의 옷에서 살내음과 섬유유연제 향이 뒤섞인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다음엔 같이 가자.”
영호의 목소리가 등을 통해 전해졌다.
“난 싫어. 요란해서. 가면 또 반대 집회도 볼 거 아냐.”
“그래도 가면 즐거워.”
“다음에. 다음에 같이 가자.”
롯데호텔 앞을 지나는 동안 사람이 점점 늘어나더니, 을지로입구역 근처에 다다랐을 즈음에는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나는 어느새 군중 한가운데 휩쓸려 있었다. 어디선가 장구 소리가 들려왔다. 주위엔 하나같이 하얀 마스크를 낀 사람들이 저마다 팻말을 들고 뭐라 외치고 있었다. 코로나도 끝난 지 오랜데, 한여름에 마스크라니. 시위에 나오면서 얼굴을 가리는데 필요한 감정은 뭐였을까. 그러나 그것을 뚫고 나오는 목소리에 묻어나오는 감정은 가릴 수가 없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죄송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신발들뿐이었다. 반스, 나이키, 뉴발란스. 어지러이 나열된, 그러나 둘씩은 꼭 짝을 이룬 발들을 밟지 않으려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그러다 부딪히고 말았다. 아. 주먹 쥔 손을 허공에 내지르며 구호를 외치던 청년의 팔꿈치에 어깨를 맞았다. 아야, 고개를 들어 상대방을 보니 그쪽도 적잖이 놀란 듯 보였다. 이십 대 초반, 군대는 다녀왔을까 싶은 나이의 남자였다. 괜찮으세요? 죄송해요, 못 봤어요. 말하는 그의 눈에 정말로 미안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욱신거리는 어깨를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아팠지만, 그보다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서둘러 무리의 앞쪽으로 나아가는 내 뒤로 청년의 걱정 어린 시선이 잠시 느껴졌다. 그리고는 다시 그가 목청껏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에게 사과하던 목소리 그대로, 볼륨만 높인 소리였다. 동성애 아웃, 똥꼬충 아웃.
백화점 앞 사거리는 경찰의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허리 높이의 가드레일 너머로, 군데군데 형광 조끼를 입은 순경이 뒷짐 진 채 군중을 지켜보며 서 있었다. 중앙차선 반대편은 차선 두 개를 임시 펜스로 분리해 놓았는데, 그 안에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도 이쪽을 마주 보고 있었다. 굳게 입을 다문 채였다.
길을 건널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좌우를 살피다가, 횡단보도를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움직였다. 시위대에는 삿대질하는 아저씨, 기도하는 아주머니. 심지어 아주 어린 아이들도 몇 있었다. 그러나 내 눈에 가장 많이 밟히는 사람들은 내 또래의 남자들이었다. 멀리서 누군가가 선창하는 소리가 앰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사방에서 성난 목소리가 울렸다. 차별금지법 반대한다. 동성결혼 반대한다.
“잠시만요.”
나를 불러 세운 것은 횡단보도 앞의 경찰이었다. 내 가슴팍에 주황색 경광봉이 닿았다. 순식간이었지만, 경찰의 시선이 나를 위아래로 빠르게 훑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내가 어느 쪽에 속하는 사람인지 재단하는 듯한 눈길이었다. 확신이 들지 않는 듯 경찰이 말했다.
“반대쪽은 반대쪽 집회예요.”
우스운 동어반복. 맞는 말이지만 동시에 틀린 말. 뭘 자꾸 반대하는 쪽은 이쪽이던데요. 그런 말대꾸를 속으로만 했던 것 같다. 네, 알고 있어요. 대답을 했던가, 아니면 그저 고개만 끄덕였던가. 내 눈을 마주친 경찰은 잠시 주춤하다가 몸을 비켜 길을 열어주었다.
8차선 도로를 가로지르는 사람은 나 하나였다. 달려나가는 동안 약속이라도 한 듯 일순간 찾아왔던 주위의 정적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뒤통수에 꽂히는 시선도, 무시하기로. 애써 생각했다. 아까 부딪혔던 어깨가 아직도 아팠다.
“영호야.”
“으응? 왜?”
영호의 등에 머리를 베고 누운 채, 엎드린 그의 속옷 안으로 손을 살짝 집어넣은 상태였다. 천장을 바라보면서, 나는 두툼한 그의 둔부에 가만히 손을 올리고 엄지만 움직여 장골을 살살 쓰다듬었다. 영호가 움찔댈 때마다 기댄 머리가 들썩였다. 가끔 우리는 이렇게 아무 일 없다가도 흥분하여 애무를 시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저 아래 긴 풍선처럼 부풀고 있을 영호의 물건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너는 근데 왜 매년 가는 거야? 퀴퍼 말이야.”
“글쎄, 약간 명절 같은 거잖아. 사람들도 만나구. 가면 즐거워.”
“명절……. 허, 명절 좋지.”
내 목소리에서 자조 섞인 웃음을 감지한 영호가 몸을 돌려 누웠다. 갑자기 베개가 움직여서 나는 몸을 일으켰다.
“미안.”
“아냐, 사과를 왜 해.”
“미안, 내가 무신경했어.”
영호가 나를 끌어당겨 안았다.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나는 몇 해 전 가족과 보냈던 마지막 명절을 회상했다. 결혼은 언제 하냐는 외할머니, 성주는 연애부터 해야 한다며 핀잔주는 이모. 참지 못하고 내뱉은 한마디에, 내 따귀에 아버지 손바닥이 꽂혔다. 분에 겨워 몸을 떠는 아버지와 눈물만 뚝뚝 흘리던 엄마를 두고, 그대로 할머니 댁을 뛰쳐나와 집에 들러 짐을 챙겼다.
그리고 갈 곳이 없었다.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될 때까지 동네를 떠돌다 지하철을 탔다. 용산 해방촌에 위치한 영호의 자취방 앞에 도착한 것은 자정에 가까운 시각이었다. 지금의 방 두 칸짜리 옥탑방으로 이사 오기까지, 우리는 몇 달을 그 작은 원룸에서 함께 살았다.
경찰이 말한 ‘반대쪽’에 도착한 나는 입으로 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짧은 거리를 뛴 것 치고는 가슴이 과하게 쿵쿵댔다. 그새 더위를 먹었나. 심장 소리에 귀가 먹먹할 정도여서, 벌렁거리는 가슴을 움켜쥐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빌어먹을 서울, 고개를 수직으로 쳐들어도 고층 건물이 하늘 일부를 가렸다. 보고 싶지 않은 미디어 파사드 광고들이 시야 귀퉁이에서 요란하게 번쩍거렸다.
집에 가고 싶다. 아니, 아니야.
잠시 진정한 후 고개를 내리니 세상의 소음도 그대로 돌아왔다. 아니, 건너편의 시위대 소리가 더 잘 들리는 것 같았다. 소리에도 지향(指向)이 있다. 이쪽을 향해 고함치는 저들을 마주 볼 용기는 생기지 않았다.
그때였다.
“찬성한다! 찬성한다!”
커다란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바로 근처에서, 해병대 교관 복장을 한 남성이 허리춤에 한 손을 얹고는 맞은편 시위대를 향해 메가폰을 들고 악을 쓰듯 외치고 있었다. 조금 더 들어보니 남자는 저들이 반대한다 구호를 제창하는 타이밍을 맞춰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귀에 들리는 소리는 이랬다. 차별금지법 찬성한다. 동성결혼 찬성한다.
남자의 앞에서 두 명의 경찰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를 제지하는 척했다. 자극하지 마세요, 메가폰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가만히 보니 그의 메가폰은 작동하고 있지도 않았다. 소품에 불과한 빨간 메가폰을 치켜들고, 순전한 생목으로 그는. 일당백의 고함을 토해내는 것이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그가 반대편의 수많은 사람보다 더 큰 소리를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만 그 남자가 나와 더 가까이에 있었으므로, 겨우 저들의 소리를 지워내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주위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어느새 그 남자 근처의 사람들도 그의 목소리에 입을 더했다. 옅은 미소를 띤 채 서로를 보며 중얼거리듯 시작한 합창은 점점 커져서 어느 순간에는 그 남자의 목소리가 묻힐 정도가 되었다.
마치 운동회의 응원전처럼 양쪽에서 열띤 함성이 이어졌다. 굳은 표정으로 반대편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이제는 싱글싱글 웃으며, 차선 너머의 울부짖는 시위대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며 목소리의 맞불을 놓았다. 나는 주위를, 그 신기한 광경을 조금은 감격하며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 시작에 있던, 메가폰을 든 남자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영호와 같은 통건장 체격의, 나이는 열 살은 더 많아 보이는 남자였다. 빨간 티셔츠, 빨간 해병대 모자에 검은 선글라스를 쓴 그 남성은 말 그대로 해병대 교관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적어도 상반신은 그랬다. 어깨너비로 벌린 다리는 쪼리 슬리퍼를 신은 발부터 허벅지까지 매끈한 구릿빛 맨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트렁크 속옷처럼 짧은, 민들레처럼 쨍한 색상의 노란 반바지가 큰 충격을 선사했다.
도대체 게이들과 반바지는 무슨 관계인 걸까, 잠시 깊은 생각에 빠질 뻔한 그 순간 그 남자가 나를 발견하더니 메가폰을 천천히 내렸다. 그 속도 그대로, 얼굴 만면에 미소가 번지더니 내 쪽을 향해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것이었다. 도망치기엔 너무 늦었겠지, 생각했을 때는 이미 그가 내 코 앞에 와있었다. 훅, 하고 더운 열기가 몰려와서 땀 냄새를 예상했는데, 의외로 불쾌하지 않은 향수 냄새가 스쳤다.
“자기야!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남자가 선글라스를 벗고 나서야 나는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사장님!”
영호와 해방촌에 살 때 자주 갔었던 이태원 술집 ‘마로니에’의 사장님이었다. 게이 전용 업소는 아니고, 커밍아웃한 사장님이 운영하는 퀴어 프렌들리한 주점. 영호는 그곳을 그렇게 설명했다.
사장님은 누구를 찾는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며 내게 물었다.
“혼자 온 거야?”
“네……. 사실 그건 아니고, 이따가 영호랑 종각 앞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사장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래, 영호. 영호는 잘 지내지?”
나는 잠시 멈칫했다가, 멋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보다는 영호가 사장님과 훨씬 가까운 사이였다. 학생 때 그곳에서 잠시 알바를 했다고 들었다. 이후로도 단골처럼 꾸준히 마로니에를 찾은 영호 때문에 나도 사장님을 알게 되었다. 은둔이었던 나는 게이바를 간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지만, ‘게이 전용 업소는 아니고, 커밍아웃한 사장님이 운영하는 퀴어 프렌들리한 주점’이라는 영호의 설명과 몇 차례의 조름에 못 이겨 한 번 방문했다.
그리고 그 후로 우리는 그곳을 종종 방문했다. 영호의 말대로 마로니에에는 여자 손님들도 제법 왔었고, 이성애자 커플로 보이는 사람들도 왕왕 들락거렸다. 낯가림이 심한 나는 처음엔 사장님이 ‘자기야’라고 부르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냥 그가 모두에게 살갑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나도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영호에게 그가 매우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방문 때마다 느낄 수 있었다. 영호는 그를 형이라 부르며 따랐는데, 그가 일하는 모습을 턱을 괸 채 행복하게 지켜보는 영호를 옆에서 보며 나는 한동안 질투를 느낄 정도였다. 언젠가 술김에 ‘너는 남친을 앞에 두고 대놓고 바람 핀다?’하고 삐진 척 떠본 적이 있었다. 영호는 혜성 같은 눈꼬리를 만들며 나를 놀리다가, 아예 사장님을 불러 지들끼리 속닥대고 킥킥대고 하는 것이었다.
걱정 마, 자기야. 나는 애기들 안 건드려, 하며 비싼 양주를 한 잔씩 서비스로 건네는 사장님을 뒤로 하고, 영호는 ‘근데 저 형은 내 식 아냐,’라고 답해주었다. 좀 취해서인지 나는 평소답지 않게 앙탈을 부렸다. 그럼 나는. 나는 어떤데. 영호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너는, 이따 집 가서 알려줄게. 그리고 그날 밤은 퍽 기억에 남는 밤이 되었더랬다. 땡큐, 사장님.
그러니까, 그는 영호를 제외하면 내가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동성애자 지인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사장님에게도 내 성적 지향에 대해 직접 말한 적이 없었다. 물론 사장님은 영호에 대해선 알고 있었고, 나는 영호와 늘 붙어 다녔으니 짐작하려면 충분히 하고도 남았겠지만. 밖에서는 관계를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아 하는 나를 위해 영호는 사장님께 나를 ‘일반 친구’로 소개했고, 사장님은 선을 잘 지킬 줄 아는 어른이었다.
그래서 영호의 안부를 묻는 말에 대답하는 것으로, 혹시나 나와 영호의 사이가, 내 성적 지향이 들킨 것은 아닌지 잠깐 고민했던 것이다. 그런데 뭐, 이미 퀴어 퍼레이드까지 온 마당에……. 물론 퀴퍼를 올 정도로 쾌활하고 외향적인, 아주 적극적인 앨라이(ally)도 있긴 하니까. 그렇게 봐주시진 않을까?
퍽이나.
그럼에도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쾌활하고 외향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사장님, 해병대 나오셨어요?”
“뭐야, 후임이냐? 몇 기야!!”
“아 저는 육군 나왔는데요. 그래서 오늘 패션 뭐예요. 짱구인 줄.”
사장님은 고개를 내려 본인의 옷차림을 보더니 산적처럼 와하하 웃었다.
“자기야, 나 옷 이거 빨간 거 아니고 자몽색. 둘은 엄연히 다르다고.”
과연 원색 빨강의 모자와 티셔츠의 색이 조금은 달랐다. 햇빛을 받아서인지 옷이 주황색에 가깝게 보였다.
“한동안 못 가서 죄송해요. 요즘 장사는 괜찮으세요?”
“코로나 때보단 나아졌지. 그때 기억나지? 이태원 살벌했던 거.”
물론 잊을 수 없었다. 코로나 발생 초기, 정말 확진자 한 명 한 명의 동선을 추적하던 시절, 한 감염자가 이태원 클럽을 다녀갔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한동안 ‘게이 클럽’이라는 단어가 뉴스에서 내려가질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국을 휩쓸었지만, 당시 공공연히 드러난 성소수자 혐오의 실태는 퀴어 커뮤니티에 깊은 상처로 남았다.
당시 마로니에에서도 확진자가 나온 건 아니었지만, 인스타그램에 올린 임시 휴업 공지 게시물에도 득달같이 찾아와 악플을 달던 사람들 때문에 사장님이 꽤 고생하셨다는 이야기를 모든 게 다 끝나고 나서야 들었다.
“좀 살 만해지려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기네.”
그런 일. 그 일을 말하는 사장님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2022년 10월 29일, 영호와 내가 마로니에를 마지막으로 찾았던 날도 바로 그날이었다. 영호가 입었던 오징어 게임 코스튬이 너무 섹시했던 탓에, 또 사람이 너무 많았어서. 조금 일찍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휴대폰으로 믿을 수 없는 뉴스를 지켜보았다. 사장님한테도 문자가 왔다. 무사히 돌아갔냐고, 그럼 다행이라고. 우리가 돌려드릴 수 있는 건 사장님은 괜찮으시냐는 말뿐이었다. 사장님의 답변은 오지 않았다.
“지금은 괜찮아. 정말 많이 괜찮아졌어.”
어느새 물기 어린 눈으로 애써 웃는 사장님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같이 웃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좋은 날이니까. 날이 좋아, 유월이잖니.”
유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가 행진 오세요?”
“에이, 자기야. 다 늙어서 무슨. 나는 그때는 이제 종로에 텔 잡고 쉬어야지. 이거 볼래? 나 지금 완전 인기쟁이야, 해병대 컨셉이 또 먹힌다니까?”
데이팅 앱을 켜서 자랑하는 사장님 때문에 못 이기는 척 화면을 구경했다.
(실시간, 거리 163m) 안녕하세요.
(2분 전, 거리 42m.) ㅎㅇ요. 번개 하시나요.
지금 앱을 동작 중인, 근처에 있는 게이들이 건네는 인사들을 본다. 키와 몸무게, 나이가 적힌 프로필을. 헬스장에서 찍은 몸 사진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얼굴들을 본다. 이들 모두가, 근처에 있다. 지금 있다.
나는 어쩐지 막연한 먹먹함을 느끼며 고개를 들어 사장님을 보았다. 오래된 해병대 모자를 쓴 사장님은 여전히 현역이다. 그 모든 풍파에도 죽지 않은 노병. 을지로의 사령관. 이태원의 터줏대감. 종로의 핫게이.
“사장님, 아니 형.”
신나서 떠들던 그가 말을 멈춘다.
“형, 오늘 진짜 완전 식 되세요.”
형이 와하하, 호방하게 웃는다.
“한 번 놀러 와, 이 년아. 영호 없이 와!”
네, 꼭 놀러 갈게요. 혼자는 좀 부담스럽고, 영호랑 같이 갈게요.
*드랙(drag): 사회에 주어진 성별의 정의에서 벗어나는 겉모습으로 꾸미는 행위.
*식: 게이 은어. 취향, 스타일, 이상형을 뜻함.
*앨라이(ally): 본인은 성소수자가 아니지만 성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