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어디쯤이야?
> 나 이제 을지로 2번 출구
> 아까 마로니에 사장님 봤다?
- 오 진짜? 인사했어?
> 응응
- 연락 드려봐야겠네
- 나도 그쪽으로 갈게~
> 아 나는 이제 부스 보는 중
- 아하 그래
- 사람이 정말 많네 좀 걸릴 듯!
> 천천히 와~
사람이 정말 많다. 영호의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체감상으로는 영호를 처음 만났던 날만큼이나 사람이 많았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그날 생각이 많이 났다.
올해 퀴어문화축제는 을지로입구부터 종각역 사이의 500m 거리에 걸쳐 진행되었다. 빼곡히 늘어선 부스마다 사람이 없는 곳이 없었다. 마치 대한민국 퀴어는 다 여기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럴 리 없다는 것도 잘 알았다. 나도 며칠 전 그 일이 없었다면 오늘도 이곳에 있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너는 올해도 갈 거야?”
“으응?”
“퀴퍼. 갈 거냐고.”
대답이 없자 나는 고개를 들어 영호를 올려다보았다. 영호의 체온, 고른 숨소리와 보송한 살 냄새. 어깨를 토닥여주는 규칙적인 손길에 하마터면 잠들 뻔했다.
“나랑 그냥 같이 있으면 안 돼?”
“나도 너랑 같이 있고 싶어.”
“그니까. 가지 말자. 나랑 놀자, 응? 응?”
나는 일부러 자극하듯 영호의 다리 사이로 왼쪽 다리를 집어넣었다. 살짝 무릎을 들자, 내 허벅지가 그의 성기에 닿았다. 영호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그는 곤란하다는 듯이 토닥이던 손길을 멈추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걸 어떡하면 좋지, 하며 흔들리는 눈빛. 늘 내게 지는 것을 선택하는 영호가 나는 미치도록 사랑스러웠다. 당장이라도 그래 알았어, 하고 나를 부서지듯 안아줄 것 같았다. 귓불을 깨물고 달아오른 몸을 내게 밀착시키며 격정적인 주말 오후를 시작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영호는 내 머리칼을 쓸어 만지며 깊은 숨을 내쉴 뿐이었다. 한숨을 입으로 내뱉지 않으려, 천천히 코로 내쉬는 숨이었다.
“나느은, 너랑 퀴퍼에서 같이 있고 싶은데.”
고집을 부리는 영호의 모습에 짜증이 났다. 이렇게까지 퀴퍼를 가려 하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
“같이 가자. 가면 즐거워 정말로.”
“뭐가 즐겁다는 거야, 나 사람 많은 데 싫어하는 거 알잖아.”
생각한 것보다 말이 더 날카롭게 나왔다. 영호가 주춤,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것을, 쐐기를 박을 타이밍으로 착각하고 말았다.
“솔직히 그리고, 그런 데서 징그러운 짓 하는 게이들 때문에 세상 인식만 나빠지잖아.”
순간 베고 있던 영호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너,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
종각 방향으로 걸으며 좌우로 늘어선 부스를 하나씩 찬찬히 살펴보았다. 여러 나라의 주한대사관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부스들이 연달아 늘어서 있었다. 그 모습이 신기했다. 이를테면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이렇게 북유럽 국가들이 모여있는 부스는 외모만으로 사람들 국적을 구분하기가 불가능했다. 이웃이란 뭘까. 반대로 호주, 뉴질랜드, 영국이 모여있는 건 의아함을 주었다. 도대체 영연방이란 뭘까. 그냥 영어 쓰시는 분들끼리 편하게 하시려고 그런 건가, 그런 것 치고는 모두 한국말을 너무 잘하셨다. 그 와중에 아일랜드는 또 독립해서 벨기에, 프랑스랑 함께하는 것이 꼭 아일랜드 같아서 재밌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올해 공식 참여를 하지 않는다고 하더니, 인권위 앨라이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직원들이 따로 참여를 신청해서 부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가톨릭, 불교, 크리스천 성소수자 단체들도 재미있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부스를 꾸며놓았다. 녹색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정의당 같은 진보 계열 정당에서도 얼굴을 비쳤다.
성소수자 부모 모임 부스에서는 물을 나눠주고 있었고, 비온뒤무지개 재단에서는 부채를 나눠주었다. 이 외에도 핀 버튼 배지, 텀블러와 스카프. 심지어 콘돔과 윤활젤까지 다양한 굿즈들을 판매하며 전시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무지개 패턴이 들어가 있는 것이 나에게는 흠이라면 흠이었다.
개인적으로 성소수자의 무지개 심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쨍한 원색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도, 지나치게 눈에 띄는 것도 싫었다. 왜들 이리 티를 못 내서 안달인 건지. 솔직히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일반적인 게이의 스테레오타입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었다. 아이돌 노래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화장을 하거나 화려한 패션의 옷을 즐겨 입지도 않았다. 서로를 언니, 언니 부르며 끼 부리는 것도 극혐. 그냥 성적 지향만 같은 남성을 향해 있을 뿐, 다른 부분은 보통의 남성과 다를 부분이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은 지운 데이팅 앱 프로필도 단 열 글자였다.
일틱 은둔 바텀. 번개 DM.
밖에서는 굳이 게이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이성애자도 여자를 너무 밝히면 여미새 소리를 듣는 것처럼, 굳이 성소수자들이 본인의 성적 지향을 떠벌리고 다닐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무슨 자랑이라고.
무슨 자랑이라고, 그래도 그 말은 하지 말 걸 그랬다.
“그렇잖아. 솔직히 난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라는 말도 이해가 안 돼. 퀴어가 무슨 자랑이라고.”
어느새 우리는 몸을 일으켜 마주 앉아 있었다. 몇 마디 말이 오갔지만, 언쟁이라고 하기엔 내 쪽이 훨씬 말이 많았다. 영호의 입이 만두의 봉오리 끝처럼 오므려졌다. 하고 싶은 말을 참을 때의 표정이었다. 위험. 여기서 더 말을 쏟아내면 안 된다는 것을 나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프라이드? 무슨 자부심. 누가 성소수자 하고 싶대? 남들은 막 게이들 보면 부러워 죽겠대? 부모한테 의절당하고 사회에서 차별당하는 인간들끼리 모여서 뭐가 즐거워. 뭐가 그렇게 ‘gay’하냐고.”
결국 하려던 말을 모두 쏟아낸 나는 얼굴을 한 번 닦았다. 바보같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영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의 큰 눈에도 슬픔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었더라. 씻는다며 내가 먼저 자리를 피했던가.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영호는 외출한다는 문자를 남기고 없었고. 밤늦게 조금 취해서 돌아왔던 것 같고. 그 후로 퀴퍼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출근을 하고, 밥을 먹고, 같이 누워 잤지만, 섹스는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건 화해의 제스처. 다녀올게, 짧은 인사를 하고 아침에 집을 나선 영호를 생각하다가. 결국 나를 혼자 남겨둔 영호를 잠시 괘씸하게 생각하다가. 사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영호를, 미워하는 나를. 화창한 유월 주말, 더운 옥탑방에 혼자 남겨진 나를 생각하다가. 집을 나섰다. 근처 갈 일이 있었는데, 일정이 빨리 끝나서 들를 것 같다는 구차한 명분을 준비해서 카톡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톡 옆 숫자가 지워지고 답장이 왔다.
- 정말?
- 와준다니 기뻐
- 근처 도착하면 연락 줘~
영호다웠다. ‘왜?’ 같은 질문 없이, ‘안 와도 되는데’ 같은 수동 공격 없이. 마지막 물결표에 내 마음에 남아있던 앙금도 사르르 녹아버렸다. 빨리 영호가 보고 싶다, 그런 생각으로 지하철을 탔다. 나는 퀴어문화축제를 온 것이 아니라, 영호를 보러 온 것이다.
그리고 당장까지는, 아직은 영호가 매년 퀴퍼를 가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노골적인 혐오를 마주하는 일도, 부담스러운 복장의 퀴어들을 계속 마주치는 일도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조금 강하게 말하자면, 아까 반대 시위 사이에 섞여 있을 때보다 지금 더 소속감을 느낀다거나, 편안하고 그렇진 않았다.
물론 그 시위대 속에서 내가 게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어떤 일을 당했을까 생각하면 두려웠다. 부스들이 늘어선 지금의 도로는 그래도 사람들의 표정이 한층 밝았다. 어느 부스를 가도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조금 기억에 남았던 것은, 굉장히 자주, 나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첫 마디가 “혼자 오셨어요?” 였다는 것이다. 마로니에 사장님도 내게 같은 질문을 했던 것이 기억났다. 생각해보니 거리에서 마주한 사람들 대부분이 둘씩 짝지어 다녔던 것 같다. 꼭 신발처럼 닮아 있지는 않았지만, 나란히, 함께 걷는 그들은 누가 보아도 한 짝처럼 보였다. 나는 영호를 생각했다. 그동안 홀로 왔던 퀴퍼에서 같은 질문을 받았을 영호를.
그때 누군가가 나를 불러 세웠다.
“안녕하세요. 잠깐 시간 괜찮으실까요?”
초록색 나시에 파란 청바지를 입은 여자였다. LGBT 심볼 깃발들을 소개하는 판넬을 들고 있었다. 나는 조금 난처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땅히 바쁜 척할 명분이 없었다.
“설명 들으시고, 솜사탕 하나 받아 가세요.”
과연 부스 한구석에 솜사탕 기계 하나가 설치되어 있었다. 하늘색과 분홍색, 흰색 솜사탕이 풍선처럼 그것에 매달려 있었다. 그 모습이 어떤 향수를 자극했다. 나들이 갈 때 엄마 손 잡고 먹어본 솜사탕. 나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초록 나시의 여자가 판넬의 깃발들을 하나씩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앨라이도 심볼이 있는 거 아세요? 에이섹슈얼(asexual)은 들어 보셨죠. 사실 엄청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마치 보험사 직원처럼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는 모습에 부응하려 경청하는 척을 했다.
사실 처음에는 스타일을 보고 솔직히 좀 무서운 분인 줄 알았다. 메로나처럼 밝은 형광 녹색으로 염색한 스포츠머리. 두리안 같은 헤어스타일에, 드러난 어깨에는 나비 문신까지 그려져 있었다. 일본 가부키초에서 비슷한 차림의 사람을 만났다면 눈을 깔고 지나갔겠지. 아무래도 사회 통념에는 반한다고밖에 볼 수 없는 그를, 차마 마주보긴 어려워서 눈은 판넬에 고정하고 있었다.
그분께는 미안하지만, 사실 말씀에 집중하고 있지는 못했다. 덥기도 하고, 시끄럽기도 하고. 일단 사람이 너무 많았다. 어느 정도냐면 뒤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가 그대로 들릴 정도였다.
“야, 이번에는 질병관리청에서도 부스 왔던데? 대 재 명.”
“아무리 그래도 범죄자 대통령은 레알 개씹에반데.”
며칠 전 있었던 대선 이야기에 나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 둘이 각자 굿즈가 담긴 에코백을 뒤적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커플보다는 친구 사이로 보였다.
“그렇다고 씨발 이번에도 김문수를 찍을 수는 없잖아. 계엄이 있었는데.”
“그래서 나는 걍 사표 던짐.”
“누구, 영국이 형?”
“아니, 준스톤.”
어린 친구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엿듣는 것이 조금 미안했지만, 영호 생각이 났다. 영호는 이번 선거에서도 정의당 후보를 찍었다.
“이준석? 그 새끼가 제일 악질 아니냐? 걔 맨날 약자 패는 걸로 정치하잖아.”
“그렇긴 해도, 이대남한테는 제일 괜찮은 후보긴 했음. 너 여자야? 장애인이야? 아니잖아. 그럼 알빠노.”
“걔 별로 퀴어에 대해서도 우호적이진 않을걸?”
“그래? 그건 못 들어봤는데. 근데 보추 년들은 좀 맞아야 되긴 함.”
그들이 옆으로 이동하면서 목소리가 멀어지는데,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입에 걸레를 물었나, 왜 말을 저렇게 한담. 그들이 멀어진 방향을 한 번 흘겨보고 다시 판넬로 눈을 돌렸을 때, 그제야 나는 설명해 주시던 분이 말을 멈춘 것을 알았다.
말만 멈춘 것이 아니라 몸 전체가 굳어 있었다. 마치 마비라도 온 것처럼 바이섹슈얼 플래그에 손가락을 올려놓은 상태 그대로였다. 잘 보니 손끝부터 어깨의 나비까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조금 시선을 올려 그분의 얼굴을 보고,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목을 끄는 머리스타일과 패션 때문에 눈치채지 못했는데, 그의 볼에는 페이스 페인팅으로 LGBT 플래그 중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솜사탕들의 색으로 이루어진 그것을 판넬에서도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아래에는 트랜스젠더라고 적혀 있었다.
“저기, 괜찮으세요?”
“네..? 네, 네. 괜찮아요. 어머, 죄송해요. 잠깐 정신이 어디 다녀왔네.”
내 말에 그가 마치 얼음에서 풀려난 것처럼 현실로 돌아왔다. 민망한 듯 한 번 호호 웃더니 다시 친절한 미소를 장착했지만, 눈에는 영혼이 없었다.
“자아, 설명은 여기까지. 그럼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그러면 저는 어떤 퀴어에 속할까요?”
자신의 볼에 그려진 플래그를 가리키며 나를 보는 그의 눈이 흔들렸다. 아마 마지막 퀴즈까지가 준비한 프로그램이었으리라. 나는 주저하다 답을 말했다.
“와아. 네, 맞습니다. 저는 MTF 트랜스젠더에요.”
과장해서 밝은 척하는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저는 여성의 성 정체성을 갖고 있는데, 남자의 몸으로 태어났어요. 그런데 대한민국은 아직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으면 법적으로 성별 정정을 허가해주지 않아요. 지난해 4월, 성별 정정 인정을 위한 성전환 수술 강요는 위헌이라는 지방법원 판결이 나왔음에도 트랜스젠더는 여전히 많은 차별을 받고 있답니다.”
준비한 멘트를 또박또박 말하는 걸 듣는 동안,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떤 위로를 건네기도 조심스러워서. 다만 내가 열심히 듣고 있다고, 잘 하고 계시다고 눈빛으로 응원을 보내는 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한편으로는 조금은 부끄러워지는 것도 있었다. 사실 나도 별로 트랜스젠더 이슈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같은 퀴어로 묶인다지만 게이와 레즈비언은 정말 딱 남자와 여자만큼 다르다는데, 트랜스젠더는 한 층위 더 이해가 안 되는 개념이었다. 그러니까 남자인데, 남자가 좋아서, 여자가 되고 싶다는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그러나 연민은 이해를 앞선다. 그것을 방금 배웠다. 몇 분 전 반대 집회 한가운데 놓였을 때의 기분이 생각났다. 가슴이 벌렁거렸던 기억. 두려움. 그냥 누군가가 비슷한 일을 당한다는 게 화가 났다.
별꼴이야, 그쵸? 같은 퀴어끼리. 같이 욕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그 정도로 넉살이 좋은 성격은 내가 못 됐고. 조금, 조금 더 생각해보니 나도 그냥 별다를 것 없는 호모포비아였구나, 싶었다. 끼순이는 극혐, 이런 말을 입밖으로 낸 적이 정말로 없었던가. 목에 무언가 턱 걸려서, 헛기침을 하고 목을 가다듬은 뒤 입을 열었다.
“그, 혹시 실례일 수도 있는데,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그럼요, 그럼요.”
“그…….”
그를 부를 적당한 호칭을 찾지 못해 답답함에 손을 휘젓자, 그가 눈치 빠르게 끼어들었다.
“아, 저요? 저는 주연이라고 해요.”
“네, 감사해요. 주연 님은, 그럼. 혹시 아직 성전환 수술을 하시진 않은 건가요?”
“네, 맞아요. 하지만 호르몬 주사는 맞고 있어요. 수술비가 많이 비싸서, 돈도 계속 모으고 있구요.”
“고생 많으시네요. 실례지만 나이가?”
“저 스물 둘이요.”
“아이고, 많이 어리시구나….”
분명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내용이었는데, 주연 씨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대답했다. 조금 전보다는 훨씬 안정된 표정과 목소리였다. 1분이 넘는 대화 동안 우리는 내내 눈 맞춤을 유지하고 있었다. 상처를 받아본 사람은 악의에 예민하다. 어쩌면 우리는 말로 한 것보다 더 많은 대화를 눈빛으로 나누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성주.”
“네?”
“제 이름은 조성주예요. 서른한 살. 저는, 이거예요.”
판넬 좌상단 끝에 있는 무지개 게이 플래그를 가리켰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손끝을 따라간 주연 씨가 의미를 이해하고는 활짝 웃었다. 그 모습이, 그녀,의 모습이 여자치고는 꽤 예쁘다고 생각했다.
“반가워요 성주 님.”
주연 씨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손뼉을 짝 쳤다.
“아, 성주 님. 시간 괜찮으시면 저희 국민 청원 한 번만 도와주고 가실래요?”
“그럼요. 어떻게 하면 되나요?”
주연 씨가 또 다른 판넬을 들고 와 QR 코드를 보여주었다. 주연 씨가 알려주는 대로 조금은 번거로운 일련의 과정을 마치고, 뿌듯하게 인사를 나누는데 뒤에서 누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영호였다.
일틱: 게이 은어, 일반틱.
MTF 트랜스젠더: Male-To-Female 성전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