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용구 Nov 18. 2022

나는, 당신에게.

관계로 정의되는 사람

저는 비현실적인 꿈을 꾸는 사람입니다.


    한 친구의 자기소개는 이렇게 시작했다. 전율이 흘렀다. 한겨울에 찬물로 머리를 감은 것처럼 목덜미가 뻐근해지면서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문장만 떼어놓고 보면 제법 낯 뜨거운 문장임은 분명하다. 약간, "나는 해적왕이 될 사내입니다." 같은 느낌이 살짝 있다. 그러나 저 한 문장에서 감동한 이유는, 그것이 자기소개의 '첫' 문장이었던 것에 있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 저렇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통은 이름이나 나이, 소속 따위를 먼저 밝히기 마련이다. 예컨대 이렇게 - 카이스트 대학원 다니고 있는 26살 구인용입니다. "비현실적인 꿈"을 꾸는 사람이라니. 자신의 목표를 "비현실적"이라고 표현하는, 그러나 그것을 당당하게 "꿈"이라고 부르는 친구의 말에서 나는 어떤 자부심을 느꼈다. 어떤 꿈을 꾸는지, 그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는 그 순간에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누군가에게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부분이라는 것이 감명 깊게 다가왔다. 그러니까 이 친구한테는 꿈꾸는 사람, Dreamer의 자아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을 꿈꾸는 사람. 꿈으로 정의되는 사람이 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신중하게 고민한 뒤 등장하는 첫 문장은 마치 해리포터에 나오는 기숙사 분류 모자처럼 그 사람의 본질(essence)을 말해준다. 용기에서 출발하는 그리핀도르나 야망을 좇는 슬리데린처럼. 앞선 친구가 자신의 꿈을 가장 먼저 드러냈듯이, 다른 친구는 '정의롭게,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며 살고 싶은' 자신을 소개하며 그의 신념을 먼저 밝혔다. 지식과 능력을 갖추는 데에서 가장 큰 가치를 두는 녀석 (래번클로 100%)이 있는가 하면, 부(富)의 축적이 최우선 목표인 친구도 있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나의 첫 대답은 항상 달라진다. 그것이 나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모르기 때문은 아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관계에 의해 정의되는 사람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보다는 '당신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더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질문을 하는 주체와 나의 관계에 따라 대답이 바뀌는 것이다. 부모님이 묻는다면, "나는 당신의 아들입니다." 후배가 묻는다면 "나는 당신의 선배입니다." 등등….

    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대답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진짜 내 결론이다. 당신이 나를 관측함으로써 비로소 나는 당신에게 존재하고, 나의 역할은 함께 있는 당신에 의해 결정된다. 어차피 가장 중요한 것은 너와 나 사이라고 믿는다. 세상이 당신을 악인이라고 불러도 당신이 나에게 좋은 친구라면 당신은 나에게만큼은 좋은 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한 사람이라고 어필해도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되지 못한다면 나는 당신에게 남에 불과하다. 나의 강점이 당신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무의미하고, 약점도 당신에게 매력으로 다가갈 수 있다면 장점이 된다.

    생각해보면 '나'라는 개체는 어떤 집단에 언제나 소속되어 있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브런치 작가이고, 구(丘) 씨 일가의 일원이고… 이 모든 집단의 교집합에 내가 있다. 나는 집단에 의해 정의되고, 관계에 의해 형성되는 존재이다. 나는 내가 사랑할 관계를 찾고, 그 대상으로부터 사랑받고자 산다. 묘비에 한 줄 문장을 새긴다면 어디선가 본 문구처럼 Beloved father, son, and friend - 내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노라고 새기고 싶다. 그것이 나의 업적이기를 바란다.

    이런 내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인가, 남을 배제했을 때의 나는 도대체 뭐지. 홀로 존재하는 나는 얼마나 hollow 한가. 그런 고민도 한참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자존감의 존(尊)을 존(存)으로 해석한다면, '내가 존재하는 감각'을 나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느낀다. 그들과 있다 보면 내가 뭘 해야 하는지, 해줄 수 있는지가 보인다. 나는 그 일들을 잘하고 싶다. 그러니까 나는 주변인들의 기대와 행복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온 나는 나에게도 꽤 나쁘지 않은 사람이었다. 요즘은 '나'랑 친해지기 연습도 많이 한다. 나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욕구는 무엇이 있지, 생각하며 그것에 충실한 나도 응원하려 한다. 결국 나의 사람들 그 중심에는 내가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나와 단둘이 존재하는 시간의 내가, 자신에게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나를 사랑하는 법도 배우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비현실적인 꿈을 꾸는 사람은 아니다. 사실 꿈이라는 것을 절실한 것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남들이 물어볼 때 대답하기 위해서만 꿈이라는 것을 설정해 두고 산 사람이었다. 개그맨, 대통령, 교사… 다양한 장래 희망을 적어 보았지만, 그중 어떤 것이 되어도, 아무것도 못 되어도 상관이 없었다. 그냥 바라는 것은 지금 소중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멀어지지 않는 것. 내 사람들과 계속 삶을 겹쳐 살 수만 있다면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가 중요할까 싶다.

    한편으로는 꿈으로 자신을 정의하는 친구와 내가 완전히 다른 것만도 아니다. 나도 나름대로 미래를 그려본 것이 있고, 더욱이  친구가 관계를 소홀히 생각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니까. 물론 내가 함께 있는 상대방과의 관계를 중요한다고 해서,  사람의 가치관에 모든 것을 맞춰주는 사람도 아니다. 나에게도 호불호와 신념이 있고, 모두가 그러하듯 그로 인해 대화도 하고 갈등도 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가치의 우선순위와 정도가 다를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다르고  비슷하다. 사람을  문장으로 요약할 수는 없다. (그런 노력은 MBTI 맹신론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러나  번쯤 이런 것을 생각해보는 것은  유의미한  같다. '나는 누구인가' 표현하는 수많은 문장 중에서 가장 앞에 위치시킬   문장. 자기소개의  줄은  많은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렇게 서로 다른 사람의 삶을 공유할  있다면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가치들을 발견하고,  사람들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조금 넓힐  있지 않을까.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답할  있게 되지 않을까.



    중학교 교과서에 비슷한 주제의 시가 한 편 실려있다.

<나> - 김광규

살펴보면 나는
나의 아버지의 아들이고 / 나의 아들의 아버지고 / 나의 형의 동생이고
나의 동생의 형이고 / 나의 아내의 남편이고 / 나의 누이의 오빠고
나의 아저씨의 조카고 / 나의 조카의 아저씨고 / 나의 선생의 제자고
나의 제자의 선생이고 / 나의 나라의 납세자고 / 나의 마을의 예비군이고
나의 친구의 친구고 / 나의 적의 적이고 / 나의 의사의 환자이고 /
나의 단골 술집의 손님이고 / 나의 개의 주인이고 / 나의 집의 가장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들이고 / 아버지고 / 동생이고 / 형이고 / 남편이고 / 오빠고
조카고 / 아저씨고 / 제자고 / 선생이고 / 납세자고 예비군이고
친구고 / 적이고 / 환자이고 / 손님이고 / 주인이고 / 가장이지
오직 하나뿐인 / 나는 아니다

과연 / 아무도 모르고 있는 / 나는 / 무엇인가
그리고 / 지금 여기 있는 / 나는 / 누구인가

    시인은 그런 '남'과의 관계 속에서의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본질(essence)을 고민하고 있다. 나는 위의 모든 답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의미가 있는 대상에게, 어떤 의미로 존재한다는 것 - 그것은 이미 "오직 하나뿐"이지 않은가? 세상에 '아들'은 많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의 아들은 내가 유일하다. 형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아들로서의 나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이다. 결국 관계 속에서 형성하는 모든 '나'의 역할은, 나의 존재는, '나'의 일부이다. 그 역할이 나의 얼마큼을 차지하는가-는 결국 내가 그 대상을 얼마큼 사랑하는가와 같다. 다시 말해 '관계로 정의되는 나'는, 그만큼 내 주위를 사랑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얼마나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관측되지 않는, "아무도 모르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고민을 나도 한참 했던 적이 있다. 로 쓴 적도 있고. 혼자인 나는 여러 상태의 중첩이다, 암전 속의 배우이다. 당신이 모르는 나의 모습-은 당신에게는 비밀로 두고 싶다. (근데 님들이 생각하는 내가 그냥 내 모습의 전부가 맞을 듯.)


    만일 우주에 나 이외의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나를 위해 무엇도 하고 싶지 않다. 그저 식음과 수음만을 반복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기약 없는 언젠가 나타나 준다면, 나는 만날 당신을 위해 매일 편지를 쓸 것이다.


- 커버로 쓴 글귀는 예반의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라는 책의 일부이다. 짧은 책인데, 너무 내용이 좋아서 영어로 한 번, 한글로 한 번 필사도 했던 책이다. 지금은 더 이상 유통되지 않는 책이라고 하는데, 중고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발견하거든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작가의 이전글 선행 자랑 좀 하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