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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용구 Apr 17. 2023

야경

높은 곳을 오르는 당신께

    높은 곳에서 별이 잘 보이는 이유는 그곳이 별과 가깝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고지(高地)일수록 주위에 아무것도 없고, 조용하고, 외롭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서 별이 밝은 것은 그곳의 어둠이 가장 깊기 때문이다.

별의 아름다움을 직시(直視)하려 산을 올랐으나, 내가 발견(發見)한 것은 나의 어둠이었다. 고독(孤獨)에 다다라서 바라본 별은 아득히 멀었고, 또 야속하게 밝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높은 곳을 오른다. 전망대의 오르는 사람은 아래를 내려다보고, 천문대에 오르는 사람은 위를 올려다본다. 시선이 땅을 향하든 하늘을 향하든 반짝이는 야경 앞에 사람이 작아지는 것은 매한가지라, 그럴 때면 우리는 곁에 있는 서로를 확인하며 애써 웃음 짓기도 했다.


혹자는 상아탑이라 부르는 지금의 오르막에서 나는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보았다.

언젠가 알게 된 친구 A는 그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싶어서 길을 오른다고 했다. 모두가 자신을 우러러보기를, 누구에게도 깔봄 당하지 않기를 그는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빠른 걸음으로 나를 앞서갔다. 나는 내심 A가 걱정되었으나, 그것이 질투로 비칠까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A는 멀어지는 동안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으므로, 나는 A가 어느 봉우리에 무사히 도착하기를 속으로만 응원하기로 했다.


또 하나의 친구 B는 별에 닿고 싶어서 걷고 있다고 답했다. B의 다리에는 멍이 가득했고, 그의 가쁜 숨은 금방이라도 멎을 것처럼 얕았다. 나는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그의 지친 눈에서 울음의 흔적을 발견하고는 그만두었다. 다만 그에 대한 걱정이 내심 동정으로 비칠까 조심하였다. B의 근황을 자주 살펴지는 못했지만, 그가 어느 골짜기에 무참히 쓰러져있지 않기를 가끔 기도하고는 했다.


나를 가장 신경 쓰이게 한 사람은 C였다. C는 이 모든 과정이 너무 괴롭다고 했다. 한참을 걸어왔는데 이제는 멈추고 싶다고. 어느 절벽에 걸터앉아 그는 찰나와 여생의 고통을 비교한 적이 있다고 했다. C가 과거에 A였는지, B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역시도 밝은 눈으로 길에 올랐던 사람이었으므로, 그는 언젠가의 나였으므로. 나는 그를 진심으로 걱정하였다. C는 이제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가 내리막을 걷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A나 B, C보다 나은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나와 완벽하게 분리할 수 없는 까닭이다. 불빛이 반짝이는 도시를 내려다볼 때의 행복도, 별빛이 반짝이는 우주를 올려다볼 때의 행복도 이해한다. 그 빛에서 눈을 돌리면 느껴지는 어둠의 무게도 이해한다. 행복하기 참 어렵다, 삶이 왜 이렇게 가파를까. 그런 생각을 나도 자주 한다.


그래서 이 글은 어떤 섣부른 조언이나 충고도 남기지 않으려 한다. 많은 생각은 들지만, 글로 남기기에는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대신 가끔 야경을 보며 대화를 하고 싶다. 나는 때때로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어서, 곁에 있는 사람들과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웃고 싶다.




여전히 첩첩한 어둠 속을 헤매면서, 가끔 나는 등정의 의미를 생각한다.

언젠가 멈추게 되는 위치에서 보게 될 풍경이 사실 이제는 가늠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길을 후회하지 않는다. 올라온 만큼 깊은 곳의 나를 발견하였으므로,

그것만으로도 좋은 구경 아닐까 하여.





우주의 별빛과 도시의 불빛을 함께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서... 불가능한 야경을 AI한테 그려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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