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밑 웅덩이의 깊이를 아느냐
인용구
어둠 속에서 그들은 자라고 있었다
시나브로, 흐르고 맺히며
단단하고 투명하게
키가 커질수록 스스로를 낮춘 까닭은
하늘에서 내리던 꽃 닮은 당신 따라
언 땅에, 낮은 곳에 닿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뜨거움은 속으로 삼키면서
하염없이 찬바람에 담금질한
그들의 펜과 창은 날카로웠다
아침이 밝는다
기다렸던 태양이 어둠을 찢는 순간
쏟아지는 햇살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 숙인 채 뚝뚝 쏟아내던 눈물
순수했던 겨울의 마지막 눈
하늘을 보며 무심히 걷다가
그들 있던 흔적에 발이 젖었다
처마 밑 웅덩이의 깊이를 아느냐
2016년 2월 29일. 대학생의 신분으로 처음으로 시를 썼던 날을 기억한다. 3월부터 봄이라고 따진다면 "스무 살의 봄"을 하루 앞둔 2월의 마지막 날, 그 날이 하필 윤날이었기에 날짜를 잊는 게 거의 어려울 정도였다. (덕분에 "시 쓰는 용구"의 생일은 4년마다 돌아온다.)
나는 남몰래 대학 생활에 대한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물론 이전까지의 내 삶도 전부 청춘이었겠으나, 청소년에서 청년으로 접어드는 스무 살의 봄은 말 그대로 "청春" 아닌가. 나는 나의 청춘을 낭만으로 채워가고 싶었다. 낭만은 무엇인가. 세상의 기준을 따라 판단하지 않고, 직접 경험하고 느끼면서 나만의 가치관을 찾는 것! 그에 따라 행동하고 세상에 목소리를 냄으로써 나의 신념을 관철해내는 것!!
낭만적인 대학 생활을 실현하는 데에 가장 좋은 수단은 대학 생활의 꽃, '동아리'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두 개의 동아리를 들어가고자 마음먹었다. 문예창작 동아리, 그리고 민주사회운동 동아리. 그 둘이 내가 갖는 "낭만"의 이미지와 가장 유사했기 때문이다. 80년대 학생 운동을 하던 이들의 모습을 보며 많은 동경을 품고 있었다. (그들의 지금 모습을 보면 차갑게 식기는 한다.) 뚜렷한 이상을 품고 사는 사람들, 나아가 그것을 글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작은 동방에서 밤새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생각을 알아가는 꿈을 꾸었다. 으레 공대생 하면 떠올리는 숫자만 잘 다루는 기계적인 바보가 되기 싫었다. 단단한 철학을 가진 어른이 되어, 주변을 따뜻하게 살피면서도 단련한 냉철함으로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담아, 시를 써보았다. 고등학교에서 시를 쓸 기회는 없었던 지라 정말 오랜만에, 대학 와서 처음 지은 시여서 많이 애착이 간다. "순수했던 겨울의 마지막 눈"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2월 29일 그날의 눈이 마치 10대로서 보낸 마지막 겨울의, 마지막 눈이라는 생각에 애틋해서 사적인 이유로 기록하고 싶었다. 그리고 아마 눈치 빠른 분들은 '눈물 = 눈이 녹은 물'로 중의적으로도 해석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챘을 텐데, 1연에서 고드름이 "흐르고 맺히며" 눈물로 이뤄졌다는 것을 암시하려 했던 의도까지 파악했면 당신은 고수...
후일담이지만 민주사회운동 동아리는 들어가지 않았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민주사회운동 느낌이 강했고, 오히려 문예창작 동아리 문학의 뜨락의 선배들이 들려주는 학생 사회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었다. 대신 영화제작동아리 은막과 그냥 운동 동아리 KAIST 해동검도회 활동을 했다. 그리고 나는 문학의 뜨락에서 현재까지 (이제 6년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