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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용구 Jun 16. 2023

"체크포인트"에 서있는 그대에게

결정장애인 당신, 선택이 어려운 이유

*이 글은 작년 잠시 활동했던 대전 글쓰기 소모임 "글밭"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발제 키워드: "선택"

저는 대입이라는 선택 이후부터는 큰 선택 없이 정해진대로 트랙을 밟으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졸업을 앞두고 저에게 다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네요. 여러분 인생에서의 “선택”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한 순간의 선택으로 인생이 바뀐 경험이라던가, 선택할 때 중요시하는 가치관이라던가, 앞으로의 선택이라던가 무엇이든 선택과 관련됐다면 상관없을 것 같아요!


선택은 어렵다.


이 짧은 문장을 쓰기까지 몇 시간이 걸렸다. 사실 쓰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다. 내 삶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들을 돌아보며, 당시의 치열한 고민과 각오가 담긴 글들을 오랜만에 꺼내 읽어보며. “선택”이라는 무거운 단어에 어울리는 글감과 메시지를 선택하기 위해 한참을 고민했다. 더욱이 “선택”이라는 발제를 선택한, 잘은 모르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있는 YJ님에게 보낼 응원의 말을 고른다고 생각하니 더욱 어렵게 다가왔다.


    진짜 어렵다, 선택은. 한참을 곱씹어봤는데, 이게 정말 무거운 단어였다. 칸트는 인간의 존엄성이 인간이 가진 자유 의지와 자율, 즉 스스로 선택하고 행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고 했다. 거창하게는 인생을 설계하고 결정하는 거대한 흐름 속의 선택부터, 가볍게는 저녁 메뉴를 고르는 것까지. 개인의 모든 선택은 숭고한 인간성의 발현이며 그렇기에 어떤 선택이든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나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일까, 선택이 사실 부담스럽다. ‘애초에 나한테 선택권이 존재한 적이 있었나, 한번만이라도 내 마음대로 살아보고 싶다’ 같은 무력한 생각을 종종 하는 사람이면서도, 막상 나에게 어떤 옵션들이 주어지면 괜히 불안해져서 추천을 따르거나 타의에 복종하고 싶다. 이런 결정장애가 물론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당장 우리 글밭 회원님들도 오늘 먹을 술을 고르는 데에도 실패하지 않았나.


결국은 소맥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선택이 어려운 이유는 굳이 <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 같은 난해한 철학서를 들먹이지 않아도 설명이 가능하다. 그것은 아마 우리가 최선을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선택지 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는 불안감. 기왕이면 주변 사람들도 모두 납득하고 만족할,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우리는 선택의 기로 앞에서 스스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미디어에서 자주 나오는 멀티버스라는 개념 때문에 선택이 더 골치 아프게 다가왔다. 하나의 선택지를 고름으로서 분기되는 새로운 우주, 하나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영영 알 수 없게 될 ‘가보지 못한 길’의 풍경. 나는 과연 다른 선택지를 택한 세계의 나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이럴 때는 게임의 체크포인트가 있었으면 좋겠다. 조금 더 진행해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시간을 돌려 선택의 순간을 다시 불러오는 거지. 그러나 나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아니다. 미래도 볼 수 없고,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나는 현재에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 비가역적인 행동의 결과를 오롯이 책임져야 한다. 나비의 작은 몸짓에도 지구 반대편에 폭풍이 발생한다는데, 나의 선택이 초래할 결과를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그냥 돌멩이로 살면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어떤 멀티버스에서는 행복한 돌멩이일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존엄한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렸을 때는 나를 대신해서 선택을 해주는 보호자들이 있었다. 내 선택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있었고. 사실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교육 과정 내에서, 힙합을 하는 게 아닌 이상(?) 큰 틀에서 또래의 모습과 크게 벗어날 일도 없었다. 어쩌면 대학교까지 그게 먹혔다. 성인으로서 부여되는 자유와 권리를 누리면서, 학생이라는 신분 덕에 경제적, 사회적으로 보호받는 것이 용인되는. 좋은 시절이었다. (고백하면 그 시간을 연장하고자 대학원을 선택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선택의 순간은 다가온다. 내 삶의 주체로서 진로를 결정하고, 이 악물고 그 선택의 대가를 치르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선택의 순간을 너무 괴롭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사실 선택은 사랑을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최선의 선택을, 정답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은 잘 하고 싶어서 아닌가. 행복하고 싶어서, 다시 말해 나의 삶을 사랑해서 우리는 선택의 순간에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글밭 술자리의 주종(酒種)을 고르지 못하는 이유도 나는 모두 좋으니까, 기왕이면 우리 회원님들도 모두 즐겁게 마실 수 있는 술을 골랐으면 하는 배려의 마음에서 기인한 것이다. 무책임한 사람에게 선택은 쉽다. 선택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다정한 사람들이기 때문이고, 우리의 선택과 삶에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선택의 순간의 신중함을, 오로지 스트레스로만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면 한다. 당신은 체크포인트에 도달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는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에서, 한번쯤은 뒤돌아보며 그리하여 끝난 것들을 돌아보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무엇을 사랑했는지 보이고,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알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정답일 것이다. 아니, 사실 정답은 없다. 선택은 순간이고 삶은 시간이기에. 언젠가 우리의 선택을 돌아보면서 그 이후에 펼쳐진 삶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결과로부터의 자유를. 행복하기를 선택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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