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아요, 끝에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요.

2025.6.왓챠. <애프터 양>을 보았다.

by 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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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어버이날에 부모님께 로봇 청소기를 사 드렸다. 직업이 안정화되어 할 수 있는 효도였다. 하지만 정작 4월 내내 아파버린 탓에 부모님의 속을 썩이지 않는 딸은 아니게 되었다. 여러 일을 겸하여 부모님 댁에 일주일간 머무르며 지냈다. 나이를 먹는다는게 무슨 이야기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점점 작아지는 부모님을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다. 차라리 모른척 하는것이 더 쉽다. 다 늙어버린 자식과 그 자식보다 더 늙어버린 부모님과 지내며 편히 쉬었다. 생색 겸 로봇 청소기를 켠다. 뽈뽈뽈 돌아다니며 쓸고 닦는 동그란 기계는 무당벌레같기도 하고 꽤 귀엽다. 조금만 뭐가 잘못되어도 처박혀서 못 돌아다니고 용을 쓰고 있는 모양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청소 신경을 덜려 산 로봇 청소기가 잘 하고 있나 돌보는 일이 추가되었다. 가사 노동 돌봄을 위한 기계를 인간이 또 돌보는 희한한 광경이다.


<애프터 양>은 근미래에 '테크노사피언스'와 인간이 함께 사는 시대를 그린다. 이야기는 가사와 돌봄 노동을 위해 들여온 '양'이 갑자기 고장나 버리는 사건에서 시작한다. 중국계 딸을 입양한 후, 딸이 자신의 뿌리를 찾는 데에 도움을 받고자 양을 데려온 가족. '양'을 고치려 수소문 하지만 처음부터 중고로 데려온 '양'인지라 비공식적 어둠의 경로로 양을 고칠 방법을 수소문한다. 그러다 양에게서 칩을 발견하게 되고, 이것이 양이 기록한 메모리 뱅크 칩임을 알게 된다. 테크노 휴먼은 무엇을 기억하려 했을까. 제이크는 양의 기억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양이 한번도 말하지 않은 순간들을 목격하게 된다. 제이크 가족과의 이야기를 넘어 그 전, 그 전의 이야기까지도. 자신의 가족으로서의 테크노 휴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별할것인가를 넘어서 테크노의 사고와 관점에 대해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된다. 제이크의 가족 제이크, 카이라, 미카는 각자의 방식으로 양과의 이별을 맺는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잔잔하고 아름다운 풍경, 사무치는 음악, 미지의 테크노 휴먼에 대한 그리움이 남는다.


<애프터 양>의 촬영 방식이 많이 눈에 남는데, 양의 기억을 들여다 볼 때, 두가지 다른 관점을 하나의 시간선으로 이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접합된 시간을 다시 반복하며 이어 나간다. 인간이 기억하고 있었던 기억과 테크노가 기억하고 있는 기억의 뉘앙스가 너무나도 다르다. 카이라가 양과의 대화를 나눈 장면에서 더욱 도드라지는데, 카이라가 나비 박제 컬렉션을 보는 양을 보며 무언가의 끝,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카이라는 죽음 후에도 무언가가 있기를 믿는다고 말하자, 여기서 양은 대답한다.


"I'm fine if there's nothing in the end."(난 괜찮아요, 그 끝에 아무것도 없다 해도.)


그러자 카이라는 되묻는다. 그게 너를 슬프게 만들지는 않냐고. 양은 잠깐 머뭇거리다 대답한다.


"Well, there's no 'something' without 'nothing.'"

(음. 그러니까, '없음'이 없으면서 '있음'이 있을 수는 없는 거니까요.)


양의 머뭇거림, 그 작은 쉼표를 카이라는 슬픔, 안타까움, 아쉬움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양의 기억으로 다시 바라봤을 때, 그 쉼표는 그저 쉼표일 뿐이다. 말 그대로를 양은 표현한 것이다. 이는 이후 제이크와 에이다의 대화에서 더 분명히 드러난다. 에이다에게 양이 혹시 생전에 테크노인 것에 안타까워 한 적은 없냐고 묻는다. 그러자 에이다는 살짝 콧웃음을 낸다. 왜 그러냐는 제이크의 질문에 에이다는 대답한다.


"It's just... that's just a human thing to ask, isn't it? You always assume that other beings wanna be humans. What's so great being humans?"

(그냥.. 질문 자체가 너무 '인간'스러운거 아닌가요?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고 항상 가정하죠. 인간이 뭐가 그렇게 대단해서요?)


그러고는 양이 한번도 테크노라는 정체성에 의구심을 가진 적 없다고 대답한다.

그럼에도 양이 미카를 사랑했다는 것은 절대 부정할 수 없다. 그 사랑의 모양이 인간의 것이 아니었을지 몰라도. 입양되었다는 사실에 놀림을 당한 미카를 위해 사과나무 밭으로 미카를 데려간 양은 이렇게 말한다.


"Something wonderful is happening here.(What?)You see, this branch is from a different tree. (It is?) Yes, but now it is becoming an actual part of this tree.(Not really though. It's just pretend)Why do you say that? (Because it's just taped to the tree) Oh. Right. It looks like that, doesn't it? Here, let's find one that's already attached. Mei-mei? see this branch? This branch is also from another tree. But look, you are connected to mom and dad just like this branch. You are part of the family tree, for real. (Then so are you.)"

("멋진 일이 일어나고 있어.-뭔데? - 여기 봐봐, 이 가지는 다른 나무의 가지야. - 그래? - 응, 근데 이제 이 나무의 진짜 일부가 될거야. - 사실 진짜 일부는 아니지. 그냥 그런 척하는 거지. - 왜 그렇게 생각해? - 그냥 나무에 테이프로 붙여져 있잖아. - 오, 그래. 그렇게 보이지, 그치? 이미 잘 이어진 나무로 다시 찾아보자. 동생! 이 가지 보여? 이 가지도 다른 나무에서 왔어. 근데 지금 봐보. 이 나뭇가지처럼 너는 엄마와 아빠와 연결되어 있지. 너는 가족 나무의 일부야. 진짜야. - 그렇다면 너도 그래.")


어쩌면 이 가족중에 양을 테크노 휴먼인 채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테크노와 함께 자란 미카일 것이다. 미카는 밤에 양의 방에 들어가 마지막 인사를 한다. 너가 밉다고 한건 진심이 아니었다고, 네가 보고 싶다고.


인간인 우리가 비인간 존재를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오만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해하기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공존하는 방법으로 우리는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형태의 가족도, 새로운 형태의 존재도.


음악이 진짜 좋다. 릴리 슈슈 티셔츠가 괜히 등장한게 아니다.

"I wanna be-----"하는 음악이 계속 귀에 남는다. 무엇으로 규정할 수 없는 존재의 가능성을 말하는 이 노래가 이 영화를 잘 응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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