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쿠팡플레이. <유포리아 스페셜 파트 1>을 다시 봤다.
<유포리아>를 본 건 몇 년 전이다. 아직 유포리아 시즌 2가 방영 중일 때였다. 마지막 화는 시리즈의 좋은 온점으로 끝났다. 시리즈의 주변부에 있었던 렉시가 전체 시리즈를 자신을 화자로 되돌아보는 연극을 올리는 메타적 연출은 너무나도 훌륭했다. 이후 <유포리아>의 첫 화 대본을 읽어 보았다. 각본은 익숙하지 않은 내게 있어 "파일럿 Pilot"이라는 말 그대로 파일럿용 대본은 충격적이었다. 이 대본은 쉽게 구글링으로 찾을 수 있는데, 대본의 형식과 용어를 모르는 나에게도 눈앞에 현현하게 장면들이 지나갔다. 글만으로도 충분히 이미지를 그릴 수 있는 그런 대본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시 <유포리아>를 다시 보았다. 영화나 시리즈를 다시 볼 때의 가장 큰 장점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미 안다는 지점이다. 그렇기에 그전에 내용을 따라가느라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번에 다시 보면서는 루와 줄스가 어떻게 이어지고 갈라지는지의 양상보다는 주변부의 인물들에 눈길이 더 갔다.
태어날 때부터 정신과 진단을 받아 태어난 루. 처음부터 잘못 태어난 뇌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약의 굴레에 더 깊게 빠진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에서 온 상실감은 중독의 진창에 너무 깊숙이 루를 집어넣어 그 누구의 손길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약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만큼 얼마나 처참하게 루라는 인물이 망가져 대부분 주변인들은 모두 도망치고 남은 한 줌의 사람들(특히 가족)이 고통을 견디는 모습이 보였다. 모든 과정이 비극적이다. 순간순간 밝아 보이는 부분이 있지만, 그건 그저 한밤중에 쌩하니 지나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와 같은 것이고, 중독은 처참하게 어둡다. 시리즈에서도 언급되다시피 마약은 특정 인종 집단에게 정치적으로 제공되었고 그 사람들을 송두리째 망가뜨려 버렸다. 그 사람의 과거의 다정함을 기억하며 함께 시련을 견디려 하는 사람들에게 더 매몰차고 추악한 악의 얼굴을 드러내고 배반한다. 중독자의 다정한 순간들을 기억하기에 그 배반은 더 쓰라리다.
루의 삶이 망가지는 과정을 보면서 처음에는 그저 마약에 손을 대면 안 된다는 3자 입장의 경각심이 바짝 섰다면, 이번에는 루가 얼마나 속상할지 느끼게 되었다. 자신도 다시 누군가를 속이고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자신의 몸이 자신의 통제가 아닌 악마의 그림자가 언제든 자신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절망적 일지. 그렇게 자신이 상처를 줘 왔기에, 나의 결말은 처참해야 한다고, 나는 이미 망가졌으니 나는 망가진 결말로 죽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벌할 그 마음이 보였다.
물론 방영 당시에 유포리아 메이크업이 유행했을 만큼 사춘기 아이들의 집요한 꾸미기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특히 루가 눈물 자국과 같이 반짝이를 얼굴에 한가득 붙이고 나와 푸른 조명 아래 어두운 피부와 눈동자와 함께 빛날 때 정말 아름답다. 그렇기에 중독자 루의 인생이 더 처참하다.
이번에 내가 추천하고 싶은 에피소드는 바로 특별 편이다. <유포리아 스페셜 파트 1>.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같은 다이너(diner)에 밤늦게 알리와 루가 앉아 이어나가는 긴 대화. 모든 것을 잃고 마약을 끊은 알리와 아직도 마약에 절어 있고 사실 마약을 그만할 생각이 없다는 루가 오래도록 이야기한다. 알리가 마약을 했던 경험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 루의 솔직한 마음. 알리는 묻는다. 내가 좋은 사람 같냐고. 루가 그렇다 하자 알리는 말한다. 내가 좋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믿음이 나를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게 만든다고. 이 긴 대화는 그 어떤 부분도 거를 타선이 없다. 이런 대사와 이런 이야기는 대체 어떻게 쓰는 걸까. 어떤 뼈저린 깨달음이 이런 각본을 쓰게 만드는 걸까. 그걸 연기한 두 사람의 호흡도 정말 좋았다.
대화의 일부를 받아 적어 보자면 이러하다.
... A real revolution is spiritual in its core. It is a complete decimation that one's priorities and beliefs and way of living. And the reconstruction in the spirit of a... You have to create your own god, or gods, or whatever you can. But it is imperative that you believe in something, something greater than yourself. Alright? And it can't be the ocean, or your favorite song, and it can't be the movement or the people or the words. You gotta believe in the poetry. Because everything in your life will fail you, including yourself. You hear me?
진정한 혁명을 잘 들여다보면 그 근간이 영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한 사람의 우선순위와 믿음과 삶의 방식을 완전히 축소시킨다고 해도 말이야. 그런 영혼의 재건은.... 넌 너만의 신, 혹은 신들, 아니면 그 문언가를 만들어야 해.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넌 무언가를 믿어야만 해. 너보다 더 대단한 무언가를 말이야. 알겠니? 바다나 네 최애 곡이나 사회운동이나 사람이나 허울뿐인 말은 네가 믿는 그 대상일 수 없어. 너는 시를 믿어야 해. 왜냐면 너의 인생의 모든 것은 너를 배신할 거거든. 너를 포함해서 말이야. 이해했니?
결국 루가 약을 하게 된 것도 사실은 외로워서 - 줄스를 만나고 잠시나마 약을 끊었던 것은 잠시나마 덜 외로워서 - 그리고 다시 중독으로 처박힐 때는 전보다 더 외로워서였던 것 같다. 인생은 결국 지독하게 혼자라는 사실이, 중독도 또한 결국 내가 나와 싸워야 하는 고독하고 평생에 걸친 싸움이라는 것이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알리가 말했듯 그렇기에 우리는 믿음이 필요하다. 나보다 더 큰 것, 내가 그것의 일부라는 것에 접지했을 때 조금이나마 우리는 외로움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