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5.왓챠. <Years & Years>를 보았다.
솔직히 요즘 나는 많이 혼란스럽다. 90년대에 태어나 30대로 접어들었으면 삶에 대해 조금은 알 줄 알았다.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카피라이터로 살아가던 내가 AI에 대체되며 실업자가 된 2023년이 그 혼란의 신호탄이었다. 그 이후 많은 것들이 빠르게 바뀌었고, 세 번의 이직과 함께 여러 사회의 부분들을 목격했다. 옳다고 배운 것들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상상해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더 복잡한 동물이었고 생각보다 더 단순하기도 했으며, 나도 마찬가지였다. 출렁이는 인생의 파고를 거치며 나는 점점 더 모르겠다. AI는 실직 이후로 더 빠르게 발전해 모두의 상담사가 되었다. 트럼프가 다시 당선되고 관세 전쟁을 선포했으며, 한국에서는 또 한차례의 탄핵이 있었으며 선거운동이 급하게 진행되고 있다.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숏폼의 세상에 발을 들이면 도파민이 뇌를 뜨겁게 달군다. 한번 보다 보면 새벽이다. 눈이 나빠지는 기분이 든다.
<Years & Years>는 이런 혼돈의 시대를 이야기한다. 브렉시트 이후의 근미래의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이 시리즈는 다양한 정치적 성향의 라이놀즈 가족이 혼돈을 맞이하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금융 전문가 스티븐, 주택 관리원으로 일하는 퀴어 대니얼은 진보 정당을 지지하며,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로지는 제4 정당을, 그리고 인권운동가 이디스. 이들이 할머니 뮤리얼의 집에 모일 때면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를 영국식 유머 스타일로 끊임없이 핑퐁을 주고받는다. 시리즈는 1화부터 변화의 포석을 깐다. 트럼프 재선 이후(이 시리즈는 2019년도에 릴리즈 되었다. 그리고 현재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인 상황이다.) 영국의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비비언 룩이라는 정치가가 제4 성이라는 정당으로 IQ 70 이하는 투표권을 빼앗겠다는 등 포퓰리즘적 발언을 미디어에서 쏟아 내며 공격적으로 지지층을 늘려 나간다. 스티븐과 아내 셀레스트는 자신의 딸 베서니가 '데이터'가 되기 위해 트랜스휴먼이 되고 싶다는 말을 듣는다. 대니얼은 우크라이나 난민 빅토르와 사랑에 빠져 자신의 배우자 랠프와 헤어진다. 그리고 이디스는 미국이 핵미사일로 훙샤오 섬을 날려버리는 순간을 생중계하고 자신 또한 방사능에 피폭된다. 여기까지만 봐도 어질어질하다. 모든 문제들이 복잡하고 다층적으로 엮여 있다. 이 도입부를 보며 너무 현재 상황과 비슷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문제는, 이건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시즌 1의 6개의 에피소드동안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화농성 여드름이 날 때의 성가시고 간지러운 느낌이 마침내 피부 표면으로 올라온다. 끝도 없이 커지는 여드름에 짜내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상태가 심각하다.
대혼돈을 맞이한 가족들에게 뮤리얼이 말한다. 이 모든 것은 너희 책임이라고. 너네가 모든 것을 망친 거라고. 이에 항변하는 가족들. 그때 뮤리얼이 말한다.
다 너희 잘못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어 (뭐가요?) 전부! (누구요?) 너희 다!
(무슨 말씀이세요?) 은행, 정부, 불경기, 미국, 비비언 룩 총리! 잘못된 일은 모두 다 너희 탓이야! (제가 뭘 어쨌는데요? 이 얘기가 왜 나와요?)
왜냐하면 여기 있는 우리는 모두 앉아서 종일 남 탓을 해! 경제 탓을 하고, 유럽 탓을 하고, 야당 탓을 하고, 날씨 탓을 하며, 광대한 역사의 흐름을 탓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핑계를 대지. 우린 너무 무기력하고 작고 보잘것없다고 말이야. 그래도 우리 잘못이지. 왜 그런 줄 아니? 1파운드 티셔츠 때문이야. 1파운드짜리 티셔츠는 거부할 수가 없지. 우리는 모두 1파운드 티셔츠를 보면 이렇게 생각해 '완전 거저네, 맘에 들어' 그러곤 사지. 좋은 품질은 아니지만 겨울에 받쳐 입을 티셔츠 하나 있으면 좋잖아? 가게 주인은 티셔츠 값으로 달랑 5펜스를 남겨, 밭에서 일하는 어떤 농부는 0.01펜스를 벌고... 그래도 우리는 그게 괜찮다고 생각해. 값을 치르고 평생 그 시스템을 믿지.
난 모든 게 잘못되는 걸 봤다. 시작은 슈퍼마켓이었어, 계산대 여자들을 자동 계산대로 바꾼 게 시작이었지
(그건 우리 잘못이 아니죠, 저도 늘 싫어했어요!) 그렇지만 아무것도 안 했잖아? 20년 전 처음 등장했을 때 거리 시위는 했니? 항의서는 썼어? 다른 곳에서 장을 봤나? 안 했지? 씨근덕거리만 하고 참고 살았어. 인제 계산대 여자들은 다 사라졌다. 사실 우린 그 계산대를 좋아하고 원해, 거닐다가 장 볼 물건을 고르기만 하면 되거든. 계산대 여자와 눈 마주칠 일이 없지. 우리보다 적게 버는 여자들 말이야. 인제 없어졌어. 우리가 없앴고 쫓아낸 거야. 참 잘했어, 그러니까 우리 탓이 맞아.
우리가 만든 세상이야. 축하한다... 다들 건배하자.
이 영국식 촌철살인 유머란. 언제나 피할 수 없는 깊은 직구로 꽂는다. 맞는 말이다. 너무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모를 것이다. 지나고 나서야 과거를 톺아보며 그제야 우리는 맥락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어즈 & 이어즈>는 말한다.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행동하면 이미 늦다고. 자신이 각자 믿는 가치를 위해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고. 이건 시리즈가 우리에게 묻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믿는 가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미뤄두고 있었던 것이 있을까? 내가 수동적으로 모른척해 온 것이 있을까?
곧 대선이다.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던, 투표를 하러 가기 전 이 시리즈를 보고 가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각자의 최선을 다한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