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아닌 눈으로 본 K-pop

2025. 7.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봤다.

by 김산

많은 대중적 애니메이션은 주류의 문화적 코드를 상징화한다. 특히 만드는 데에 고자본이 들어가는 3D 애니메이션의 경우, 대중적 코드를 반영해야 수지타산이 맞는다.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은 모든 요소를 창작자가 만들어야 한다는 데에도 그 이유가 있다. 짧은 시간 안에 이야기를 납득시켜야 한다면, 너무 복잡하지 않은 캐릭터와 우리의 납득의 범주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납득의 범주란 우리가 사고하는 상징 세계의 구조를 반영한다. A가 B가 되고 C가 된다와 같이 납득 가능한 범주여야 하지, A에서 갑자기 Z로 뛰는 비약은 설명하기에 복잡하기에 비경제적이다. 수백 명의 애니메이터들이 붙어 모델링과 모션을 한 땀 한 땀 만드는 애니메이션의 세계에서 그건 사치다. 어떨 때는 이것이 과도한 문화적 일반화다, 스테레오타입이다라고 지적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덕분에 애니메이션을 보면 대중이 어떤 상징체계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역으로 추적이 가능하다.


한국인들에게 K-pop은 그냥 대중가요다. 말 그대로 코리아의 팝 뮤직, 즉 대중음악이라는 것이다. 지금 현재 K-pop과 아이돌 문화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기 전에도 K-pop은 언제나 있었고, 언제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공기를 의식하거나 굳이 그 의미를 해석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K-pop은 우리가 그냥 살아가는 문화 그 자체다. 그렇기에 어쩌면 우리는 K-pop이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 그러다 K-pop을 이름 전면에 내세운 애니메이션이 등장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니. 그리고 이 작품은 일본 소니 픽쳐스에서 만들어져서, 넷플릭스에 공개되었다. 이게 대체 어떤 혼종인가! 공개된 첫날 바로 정주행 했다. 내용이 정말 신박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애니메이션이라는 공식 안에서 잘 만들어졌고 디자인도 모델링도 훌륭했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음악이었다. 노래가 다 들어본 듯한 느낌이 드는데, 그렇다면 식상한데 -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놀랍게도 노래가 다 좋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현재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사람들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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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첫 번째로, 왜 음악이 식상하다고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좋다고 느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충실한 재현에 있었다. 실제로 초 고음을 뽑아내는 가창이 미쳤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시원시원하고 잘 부른다. 동시에 이 노래들이 케이팝에서 많이 들어본 구성과 멜로디라는 점에서 좋다고 느낀 것 같다. 실제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은 얼마나 충실하게 현실의 것들을 가상의 3D 공간으로 재현하느냐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케이팝이라고 하고선 전혀 케이팝 같지 않은 곡들이 나왔다면 문화 차용이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헌트릭스도, 사자보이스의 곡도 전부 다 케이팝에서 보여주는 상징과 코드를 충실히 재현했고, 음악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오! 노래가 매우 좋은데?라고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귀에 꽂히는 사비라던가, 높은 음역대라던가, 한 번씩 컨셉돌로 독특한 코드를 보여준다던가 하는 모든 것들이 '케이팝 아이돌'스러웠다.


두 번째로는 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케이팝에 대해 톺아보고자 한다. 세계에서 바라보는 케이팝이란 대체 무엇일까? 왜 갑자기 세계가 케이팝에 열광하는가? 그 지점들을 객관화해서 보기에 이 작품은 내게 의미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정의감'이다. 악귀로부터 사람들을 노래로 구하는 헌터스는 의로운 뜻을 가진 그룹이다. 이게 세계적으로 케이팝을 생각하는 한 가지 코드인 것 같다. 할리우드나 팝송에서는 자주 등장하지 않던 변방의 나라에서 어린 가수들이 그룹으로 활동하며 협동하고, 멋진 무대를 꾸미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을 케이팝은 전면에 드러낸다. 게다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아이돌은 '아이돌'이라는 말 자체와 같이 어떤 좋은 가치를 표상하기 위해 부정적인 부분들은 극단적으로 표백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것의 문제점 또한 잘 알지만, 어쨌든 이 현상이 생소한 이들에게는 이들이 내가 누구든 나를 받아들이는 자기 긍정,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이에 기인한 정의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상징은 이 작품의 프로타고니스트, 헌트릭스가 잘 보여준다. 심지어 안타고니스트인 사자보이스도 악의를 가지고 아이돌이 되었지만 속내를 차치하고 겉으로 보여주는 모습은 꽤나 착해 보인다. 물론 컨셉 활동으로 퇴폐미를 보여주는 무대는 컨셉에 충실하게 치명적이고 나쁜 남자를 표방하지만 그건 무대 위의 모습일 뿐이다. 도덕성에 대해서 계속 되물을 수밖에 없는 현재 상황에서 어쩌면 케이팝은 사람들이 믿고 싶은 도덕적인 인간관을 상징하고 이에 몰입해 의미를 덧붙이는 것이다. 이것이 좋다/나쁘다를 떠나서 현상적으로 그러하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으로서는 이게 엥? 스러울 때도 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아이돌을 봤고, 그들도 인간이라 무조건적으로 다 도덕적이거나 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한국 대중가요가 너무 익숙하다. 그래서 갑자기 어떤 아이돌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을 때 '자랑스럽다'라고 생각하기는 했어도 오히려 너무 익숙하기에 그 이유에 명확하게 짚어내기 더 어려웠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애니메이션으로 나왔을 때,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케이팝이 어떻게 비치는지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스테레오타입들은 어떻게 보면 우리 사고의 분류 체계이고, 그 분류 체계에서 케이팝이 어떤 카테고리에 있는지 보게 되는 것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최애 곡은 마지막 곡 "How it sounds like"이다. 이야기의 정점에서 가장 '케이팝스러운' 가사를 노래한다. 나답게, 내가 어떤 모습이라도 긍정한다는, 세계가 열광하는 케이팝이 상징하는 바를 가장 잘 보여준다. 어쩌면 이런 클리셰가 가장 와닿았다. 게다가 노래를 넘치게 잘한다. 기대도 없이 봤다가 음악에 홀딱 반하게 될 애니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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