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6. 넷플릭스. <지니 & 조지아> 시즌 3을 봤다.
<지니 & 조지아>의 첫 시즌이 공개되었을 때부터 나는 조지아라는 캐릭터에 푹 빠졌다. 어린 나이 지니를 낳고 어떤 사정으로 인해 미혼모로 여기 저기를 떠돌며 결혼도 몇번 하고 두 자녀를 키우는 싱글맘이 된 조지아. 이 과정만 봐도 쉽지 않았을 조지아의 삶이 눈에 선하다. 하지만 언제나 당당하고 유머러스하며 예쁘고 웃긴 엄마 조지아. 예쁜 금발의 백인에게 세상이 투영하는 이미지와 동일하게 어떨 때는 조지아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실은 행동력이 빠른 사람으로 트로피 와이프를 때로는 겨냥해서 기꺼이 그 자리를 노리는 사냥꾼 같다. 그런 조지아의 간계함의 근간은 그녀의 다사다난했던 인생과 그리고 그녀가 숨기고 있는 무시무시한 비밀에 있다. 그녀는 미소와 남부 억양에 그녀의 강한 어금니를 숨긴다. 하지만 언제나 그녀는 필요하다면 다시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 있다. 왜냐면 그녀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자식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기꺼이 무엇이든 해 낼 자신이 있는 억척같은 엄마다. 그러면서도 자식들에게는 힘듦을 내비치지 않기 위해 타고난 유머감각으로 수많은 순간들을 넘긴다.
제목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조지아의 딸 지니. 너무 예쁘고 젊고 인기 만점의 매력적인 싱글맘과 사는 일은 질풍노도의 청소년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지니의 친구들은 모두 엄마 조지아를 멋진 엄마라고 생각하지만 어쩐지 그것이 지니는 좋지만은 않다. 지니가 새로 전학간 학교에서 자신의 청소년기를 지나 가며, 동시에 엄마 조지아가 안정된 삶을 지니와 아들 오스틴에게 제공하기 위해 권모술수(?)를 쓰는 과정에서 조지아의 비밀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위기가 함께 엮이는 플롯을 가지고 있다. 이 시리즈의 최대 장점은 캐릭터들이 입체적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천진난만해 보였던 조지아가 자신과 나이차이가 아주 크지 않은 자신의 딸 지니와 함께할 때, 외모와 다르게 그녀가 얼마나 상대적으로 어른인지 보는 것 또한 흥미롭다. (문제는 지니는 그걸 보지 못한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이란!) 시리즈를 보다 보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조금 이해하기 시작한 때는 학원 알바를 할 때였다. 나는 대학원생이었고, 아이들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생까지 폭이 넓었다. 학원에서 일하며 느낀 것은 어른이라는 것은 오직 상대적으로만 존재하는 개념이라는 것이었다. 상당한 나이차이가 나는 어린 누군가와 있을 때 비로소 어른-아이의 관계성이 성립한다. 학원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대부분 나는 또래 집단에서 지냈고, 아무리 교수님들과 나이차가 많이 난다고 해도 이미 일정 나이 이상 이후 어른의 평행선으로 수렴하는 시점 이후에 만났기에 어른-아이의 느낌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학원에서 초등학생 아이들을 보니 내 역할과 무게가 느껴졌다. 아이들은 천진하고 시야폭이 좁다. 그래서 어른 눈에는 생각보다 그들의 마음이 잘 보인다. 어른은 단 한 마디로 그걸 깨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깨지 않는 것, 그것이 어른의 책임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느끼도록 해 주는 것이 선생님으로서의 나의 의무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예쁠 수는 없다. 간혹 정말 놀랍도록 어떤 아이가 미울 때도 있다. 하지만 그걸 한 켠에 집어 넣고 보이지 않는 것이 바로 어른의 의무인 것이다.
그러다 조카가 생기고 나서 어른이 된다를 넘어 부모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동생이 없는 나는 신생아를 직접 보거나 만날 일이 없었다. 직계 가족이 아니라면 그런 갓난아이를 볼 기회는 더더욱 희박하다. 그리고 유전자는 놀랍다. 특히 신생아때 조카는 나를 많이 닮았었는데, 나랑 너무나도 닮은 존재가 세상에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동시에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분유를 먹이는 것을 도와 주며 아이를 어깨에 걸치고 트름을 시켜 주기 위해 손이 아프도록 반복적으로 등을 쓸어내 주며, 내 어깨에 온 삶을 맡긴 이 아이가 느껴진다. 조카가 태어난 이후 길거리에 아이와 부모들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이 안아달라고 하면 엄마 아빠가 번쩍 번쩍 아이를 들어 안는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아이를 떨어뜨리지 않고 안아올릴 수 있음을 장담하고 지켜낼 수 있는 것. 아이가 부모가 자신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생각 조차 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 아이 앞에서 어른은 한없이 복잡해진다. 어른이 대신 복잡해야 아이의 삶이 단순해질 수 있다. 그저 잘 먹고 잘 웃고 잘 자는 것이 세상의 전부여도 되는 것이다.
<지니 & 조지아>는 이런 부모됨을 위해 어른의 삶이 얼마만큼 꼬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심지어는 범죄까지도 불사하는 것이 부모됨이다.) 하지만 아이를 지키려 시작한 꼬인 타래는 도리어 아이들을 망치기도 한다. 아이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게 정말 어려운 점이다. 지니도 알았고 오스틴도 알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사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기에 그저 묻고 지나가는 것이다. 자신의 전부이자 온 세계였던 부모가 나름 잘 숨겼다고 생각해도 아이들은 차마 감추지 못한 어른들의 비밀을 본다. 그리고 아이들 또한 부모를 지키기 위해 부모가 한 일을 똑같이 따라한다. 그것이 정말 무서운 점이다. 부모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더럽고 힘든 것은 나만 하려 했건만, 어느새 그 진흙탕에 자신의 아이도 뛰어들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조지아의 마음에 이입한 나는 지니가 잘못 엇나가지 않길 바라며 조마조마하다. 지니가 아니더라도 수습해야 할 문제들이 산더미인데, 그걸 봉합하는 틈사이로 사춘기 지니가 빠져나간다.
점점 시즌이 갈수록 비밀은 너무 많아지고 점점 아이들도 비뚤어진다. 하이틴을 좋아하지 않는 나라 그런지 엇나가는 10대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고통스럽다. 시즌 3는 가장 그 비뚤어짐이 극대화된다. 이제는 조금 무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