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빼고는 내 인생을 설명할 수 없다

2025. 9.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을 보다.

by 김산

OTT 연재 시리즈를 처음 시작할 때 20화를 쓰는 것을 목표로 했다. 중간중간 쓸만한 작품이 없어서 힘든 순간들도 있었고, 쓰기 싫어서 꾸물거리다 금요일 연재일에서야 비로소 억지로 글을 써 업로드한 적도 있었다. 마지막 20화는 무슨 작품으로 쓰게 될까 상상했었는데 때마침 <은중과 상연>이 공개되었다. 공개된 금요일부터 시작해 토요일까지 꼬박 15화를 보았고, 최대한 빨리 후기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마지막 연재는 금요일이 아닌 월요일에 업로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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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교'라는 단어가 생소한 이유는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굳이 드라마틱하게 절교하기보다는 적당히 거리를 두다 멀어지고, 마찬가지로 나와 멀어진 사람들을 보며 '시절인연이었겠거니' 생각하게 되는 나이게 되었다. 절교라는 단어는 우정이 정말 중요한 나이대의 단어이다. 어느 날, 절교한 친구 상연이 시상식에서 자신의 이름을 언급한 날, 은중은 마음이 심란해진다. 갑작스레 자신을 보고 싶다는 상연. 갑자기 성수의 건물을 증여했다며 변호사가 찾아오지 않나, 은중은 화가 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상연을 찾아간 은중. 꼴도 보기 싫었던 상연이 시한부라 한다. 그러면서 은중에게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에 같이 가 달라고 한다. 이게 무슨 기가 막힌 일인가. 은중은 폭력적인 것이라고 하며 뛰쳐나간다. 드라마 작가인 은중이 자신과 상연의 인연을 돌아보며 글을 쓰며 은중과 상연의 질긴 인연의 역사가 펼쳐진다.


학창 시절 가난했던 은중은 아버지가 없는 게 괜히 부끄럽다. 자신이 살던 마을에 재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서며 방학이 끝나고 난 후 친구들이 우르르 전학 가고 우르르 전학 온다. 애석하게도 그 당시 담임은 아이들의 배경에 따라 차별을 하는 치졸한 인간이었다. 그렇게 전학 온 아이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바로 상연이다. 할아버지가 장관이고 서울에서 왔으며 공부를 엄청 잘했다나 뭐라나. 은중은 상연이 막연히 부럽다. 게다가 우유 판촉을 위해 이사 전 아파트 청소를 하던 엄마를 따라 간 집은 마치 대궐 같다. 은중이 살던 곳은 반지하. 은중은 많은 게 부끄럽다. 상연을 보며 은중은 상연을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성적도, 집안도. 어느 날 학교에서 호구조사를 한 날,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많이 부끄러웠던 날, 우연히 그걸 들은 글쓰기 선생님이 은중을 따로 부른다. 아버지가 없다는 것이 슬픈 일이지 창피할 일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렇게 느낄 때가 있다고. 자기도 그랬다며. 다만 그 빈자리를 더 좋은 것으로 채우면 되는 거니 내가 부족하다고 느낄 필요가 없다고 위로한다. 그날부터 은중의 최애 선생님은 글쓰기 선생님이 되었고, 자신감도 한 뼘 자란다. 성적도 오르고 성격도 밝아진다. 친구도 많아진다. 은중은 투명하다. 좋은 건 좋고 부러운 건 부럽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과 함께 즐거워할 줄 알고, 누군가를 너무 미워하지도 않는다. 꼬인 부분이 없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는데도 그렇다. 후에 말한다. 자기는 어릴 때 자기가 가난한지도 잘 몰랐다고.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너무 올리버 트위스트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가도 은중의 엄마를 보면 이해가 안다. 은중의 엄마는 아이들의 세계에 넌지시 도움을 주는 조력자처럼 존재한다. 은중이 친구가 없었을 때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집에서 쫑알거리며 쏟아내는 것을 잘 '들어준다'. 이게 옳다/그르다를 이야기하거나 아이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대신 딸이 부당한 일을 당한 것 같을 때 넌지시 이를 풀어준다. 돈 때문에 사람이 꼬이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러다가 은중과 상연은 으레 그 나이 아이들이 그렇듯 친해지게 된다. 상연의 오빠 상학에게 과외를 받는 둘. 은중은 상학을 짝사랑하게 된다. 사진과를 가고 싶다고 했던 상학은 부모님의 반대로 경영학과에 간다. 여기서 은중이 너무너무 사랑스럽다. 첫사랑의 풋풋함, 상학이 알려준 '염세적'이라는 단어를 멋지다고 생각했던지 아무 때나 쓸 수 있을 때면 염세적이라는 단어를 달고 산다던가. 그 모든 부분들을 볼 때마다 육성으로 소리를 지르게 된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 감정들과 모습들이 '귀엽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내 10대와 20대 대학 시절의 나를 수치스러운 흑역사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제야 나는 다시 내 10대 20대를 다시 보면 그 부끄럽고 미숙했던 것들이 사실 귀여운 것이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디테일들을 참 잘 살렸다. 그러다 어떤 불상사로 인해 상연은 이사를 가게 되고 은중과 상연은 자연스레 멀어진다.


은중은 대학생이 되고, 상학(차상학)과의 기억에 사진동아리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만난 또 다른 상학 선배(김상학)와의 연애가 시작된다. 여기까지는 은중의 시선 중심으로 서술된다. 그러다가 은중이 2학년 때 상연이 다시 나타난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은중과 상연의 시점이 복잡하게 교차된다. 이는 어린 날에 시야가 좁아 보지 못했던 부분까지 어른이 되어 확장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상연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하고 그것을 은중에게 전달함으로써 은중이 퍼즐을 더 세밀하게 맞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잘 살았던 상연의 집안이 망하고 상연에게 큰 시련의 시간이 왔다. 화장실도 없는 단칸방에 살면서 알바를 미친 듯이 뛰는 상연. 상연의 삶은 너무 고단하다. 그래도 꿋꿋이 억척같이 살아가는 상연. 과거에 가난했다 점점 나아지는 삶을 사는 은중과 갑자기 추락한 상연의 삶은 크게 엇갈린다. 은중은 형형색색 알록달록한 청춘의 색을 입고 있지만 상연은 탁색의 숨 가쁜 20대를 보낸다. 이 둘다에게서 내 삶을 자꾸만 보게 된다. 나도 잠깐 사진동아리에 있었던 적이 있었던지라 그 부분도 공감되었다. 게다가 20대 때 연애를 시작하는 방식이라던가, 그 당시에 관심 있던 것들, 이런 부분들을 자꾸 돌아보게 된다. 나는 부모님의 지원 덕분에 학부 때에는 나 자신에게 몰두할 수 있었다. 이런 걸 보면 은중의 삶과 닮아 있는 것 같다가도 성격은 또 어떤 면에서 상연에게서 나의 모습을 찾게 된다. 특히 상연이 월드컵을 보면서 혼자 즐겁지 않은 표정으로 앉아있는 모습에서 내 모습을 많이 느꼈다. 어딘가 세상과 동떨어진 느낌. 나도 그랬다. 어쩌면 내 인생의 목표가 항상 그거였던 것 같다. 모두가 즐거워하는 것을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것. 하지만 나는 1대 1의 관계와 깊은 대화가 아닌 공동체에서는 유독 동떨어진 느낌이었고, 그럴 때마다 사무치게 외로웠다. 왜 나는 남들이 다 같이 즐거울 때 즐거울 수 없었던 걸까,라고 그 부분이 정말 힘들었다. 대학원 때에는 나는 죽어라 일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수많은 회사를 전전하며 돈을 벌었건만 학비를 한번 내는 순간 통장 잔고가 앵꼬가 날 때 내가 그렇게 고생해서 번 돈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울었다. 살던 집에서는 물이 새는 경우가 허다했고 나는 2년마다 이사를 했다. 옥탑방에서 수도가 동파되어 친구 집으로 피신을 가기도 하고 매대에서 일하다 대기업에 다니는 학교 동기를 보고 오는 길에 복잡한 마음과 열패감을 감출 수 없기도 했다. 삶이 고단하다고 느꼈다. 그러다 상연은 어떤 진실을 쫓는 동시에 자신이 숨기고 싶었지만 숨길 수 없을 만큼 부푼 감정을 애써 모른척하다, 연애감정을 압도하는 인생의 무게를 통과하게 된다. 은중은 줄곧 상연을 이길 수가 없다고 하지만, 사실 열등감을 느꼈던 것은 상연이다. 엄마의 사랑도, 오빠의 선물도, 사랑도 모두 다 은중과 같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마음. 은중처럼 투명할 수 없어 지저분해 보이는 자기 마음이 못내 비참하다. 그러면서도 은중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 상연의 감정은 복잡하게 뒤섞여 버린다. 이건 너의 마음, 이건 나의 마음. 이건 너의 관계, 이건 나의 관계. 이렇게 구별이 확실한 은중과 다르게 상연의 마음은 모든 것이 경계가 모호하고 다 버겁다. 넉넉하지 않으면서도 인심 좋고 따뜻한 은중이 자기 자신의 초라함을 더 크게 보이게 만들 때 상연은 떠난다. 은중은 상연에게 흔들린 승학 선배에게 이별을 고한다. 그 둘은 그렇게 절교한다.


이후 PD가 된 둘은 일을 하다가 또 만난다. 여기서 또다시 은중과 상연, 상학 선배의 인연은 또 반복된다. 여전히 상학에게 마음이 남은 상연. 일은 일대로 해야 하는 상황과, 계약의 복잡하고 부당함, 그 모든 것들이 버무려져 영화 촬영은 어찌 저찌 우당탕쿵탕 흘러간다. 그러다 상연의 마음에 가장 큰 트리거를 당긴 것은 바로 은중이 빚쟁이처럼 자신을 좀먹던 아버지에게 돈을 줬다는 것을 알았을 때다. 상연은 자존심의 큰 스크래치를 입고 자신이 기필코 성공하겠노라 결심한다. 그리고 그 결심으로 은중을 망가뜨리려 한다. 은중이 오랫동안 디벨롭한 작품과 감독을 데리고 나가 영화사를 차린 것. 개발 비용을 주겠다고 말하는 상연에게 은중은 큰돈을 거절하며 말한다. 그냥 도둑년으로 살라고.


그러고 40대. 상연은 시한부가 되어 은중을 찾는다. 불쑥 찾아와 뻔뻔하게 부탁한다.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사람이 엄마도 오빠도 상학선배도 아닌 은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리고 은중은 여전히 살아 있고, 그러니까 사과를 전할 수 있기 때문에. 은중은 조금씩 상연을 이해하게 되고, 스위스에 동행하게 된다.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누구일까. 우리는 때로는 그것이 부모라고 생각하기도, 사랑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은중과 상연에게 있어서는 그것은 서로였다. 서로가 서로를 보며 너 없이는 내 인생을 논할 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은중의 인생은 가파르지는 않지만 천천히 우상향 하는 그래프를 그린 반면에, 상연의 삶은 끊임없이 요동친다. 수없이 출렁이는 인생의 그래프에서 그 변곡점에는 항상 은중이 있었다. 상연은 은중의 그 단단한 직선이 부러웠을 것이다. 은중은 상연의 그래프에서 자신이 도달하지 않을 높은 지점들을 가진 상연을 동경했을 것이다. 인생이라는 파고를 거치며 그 결말이 어떻게 되었건 둘은 서로의 인생의 가장 큰 목격자이다. 한 번의 절교였다면 이렇게까지 서로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이나 절교했다가 다시 만났기에, 서로의 바닥과 고점을 모두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죽음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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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일부러 어떤 부분들은 뭉개서 썼다. 스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내 연재의 마지막이 <은중과 상연>이라 참 고맙다. 끝내 어떤 인생이 존재했음을 기억하는 증언자가 된 은중의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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