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쿠팡플레이 <Girls> 전 시즌을 감상하다.
나의 20대를 빚은 가장 큰 기억은 아마도 미국에서, 특히 뉴욕에서 살 때의 기억일 것이다. 뾰족한 경력이나 내세울 것도 없었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에 부풀어 있었던 시절이었다. 증명한 것보다 막연한 가능성과 잠재력, 그리고 젊음이 더 반짝여 보였던 시절 뉴욕에서 내 공간이라고는 내 벙커 침대 하나뿐인 시절이 있었다. 비좁은 방에 세명이 살고, 집 천체에는 거의 스무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는 그런 곳에서 지내면서도 한없이 모든 것이 낭만적이었다. 인턴쉽을 하며 거의 없다시피한 월급을 받으며 월 정액 지하철 카드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자유롭다고 느끼던 시절, 걷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진 적 없이 젊었던 때이다. 당시 내 직장이 그린포인트였고, 여전히 그 동네에서 가던 레스토랑과 일하던 직장, 친구들과의 기억들이 나의 20대의 자아를 형성했다. 그리고 이후에 대학원으로 미국을 다시 갔을 때 뉴욕 주의 이타카 시에서 지내면서 친구들과 보냈던 기억은 내 인생에서 최고의 기억이다. 다시 하라고 하면 감히 다시 하겠다고 선뜻 이야기 할 수 없는 가난하고도 자유로웠던 시기였다. 30대가 되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마침내 한 직장에 정착하고, 싫어도 해야할 것들을 참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대학원에서 교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된다. 인생은 나이가 들수록 지겹고 지루하다며, 작업을 한다는 사실이 너희의 인생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 줄 것이니 너네는 행운이라고 하던 교수님. 그리고 그 말을 나는 이제 절감한다. 인생은 갈수록 녹록치 않고 몸도 전같지 않다.
HBO에서 방영되었던 Girls 시리즈는 이런 내 20대를 보내는 헌사 같은 작품이었다. 이 시리즈를 봐야겠다고 생각한건 한 릴스 때문이었다. 그 릴스는 갤러리에서 일하다 부조리에 열받아 스스로 갤러리를 차린 동양인 여성이 Girls의 캐릭터가 자신을 모티브로 한 것이 맞다고 인터뷰하는 장면이었다. 동양인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나 시리즈를 꼬박꼬박 챙겨보는 내가 이런 캐릭터가 나온 시리즈를 안봤다고? 하고 시작한 것이 동기였다. 근데 이 동양인 여성은 생각보다 늦게 나오고 비중도 별로 없었다는 것이 함정. 하지만 그 외의 이야기들이 많은 부분 이입이 되었다. 주인공이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점부터가 감정이입의 포인트였다. 그리고 모든 캐릭터들이 하자가 있는데, 어쩐지 그 캐릭터들의 하자 부분들만 전부 내것 같아서 공감성 수치가 느껴진다. 그래서 모든 캐릭터가 꼴뵈기 싫으면서도 애정을 놓지 못하게 되는 그런 시리즈이다.
시리즈의 시작은 주인공 해나의 부모님이 졸업을 앞둔 그녀에게 더 이상의 재정적 지원을 끊겠다고 독립하라고 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무급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해나는 자신이 홀로서기를 할 수 없다며 징징거리지만 부모님은 단칼 같다. 해나는 절친이자 룸메이트 마르니에게도 불평하며 위로를 받고, 잠자리 파트너인 애덤을 만나며 육체적인 위로 또한 받는다. 마르니는 오랜 연인과의 관계가 권태롭다. 남자친구는 뭐든 마르니한테 맞춰 주는 스타일. 애덤은 어딘가 뒤틀려 보이는 이상한 캐릭터로, 독특한 성적 지향이 있는듯 없는 듯, 비밀이 많은 듯 없는 듯 수상하다. 그리고 또다른 친구 쇼샤나의 집에 친척이자 친구 제사가 얹혀 살게 된다. 그리고 제사는 임신 중절 수술을 받으려 한다. 시작부터 와장창 소리가 들린다. 곧 이들은 구직난, 월세, 애인과의 관계, 성병, 전 애인과의 관계 등등 서툰 어른들이 겪을 모든 역경과 기회들을 한꺼번에 맞는다.
내가 이 시리즈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 것은 크게 두가지이다. 첫 번째는 대사에서의 표현의 풍부함이다. 각 캐릭터들이 정말 잘 디벨롭되어있다는 인상을 크게 받게 되는데, 이 시리즈는 특히 다양한 어휘를 구사한다. 시리즈를 보다가 어, 저 표현 재밌네, 저 단어 잘 못들어봤는데, 라고 계속 수집하게 된다. 결국은 시리즈 내내 수첩을 펴 두고 단어들을 적어가면서 보게 되었다. 주인공이 작가라서 더 그런 부분도 있고, 주인공 외의 인물들 또한 단어 구사 수준이 매우 높다. 게다가 인물들이 현실에서의 이야기 외의 개념적인 이야기들을 나누는 대목들이 많아서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표현들을 엿볼 수 있는 것 또한 즐거운 부분. 보는 내내 이 작품은 좋은 언어 교재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각 캐릭터들마다 쓰는 언어의 결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대사만 보더라도 어떤 캐릭터인지 잘 보인다는 지점이다. 이는 캐릭터 디벨롭이 잘 되어있음을 반증한다.
두 번째는 주인공이 작가라는 사실 그 자체이다. 나도 또한 글을 쓰는 작가로서 주인공 해나의 모습들이 마치 거울을 보는 듯 부끄러웠다. 뭐든 계속 머리로 생각하고 굴리는 것들이나, 과하게 생각하거나 해석하는 모습이나, TPO에 맞지 않게 너무 진지하다던가, TMI를 너무 많이 방출한다던가. 이런 모든 것들이 내 20대를 보는 것 같아서 부끄럽다. 나도 저랬을까? 나도 저랬던 것 같다. 라는 부분들이 너무 많아서 공감되면서도 해나가 꼴보기 싫다가도 애정이 간다. 그녀가 커머셜 직장에 다니다가 그만두는 부분도 보는 내내 '절.대. 그만두지마.'라고 생각하면서도 기어이 그녀가 직장을 때리쳤을 때 나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랬었으니까. 지긋이 엉덩이를 붙이고 회사에 있지 못하고 결국 여기 저기로 튀어나가는 경험을 나도 했다. 첫 출판 기회를 잡고도 강박증세와 불안증세 때문에 결국 마감을 지키지 못하는 부분은 나랑 좀 다르긴 하지만, 두번째 출판 기회가 왔을 때, 첫번째 출판 계약과 법적으로 엮인 문제때문에 포기해야했던 부분을 볼 때는 정말 안타까웠다. (그러니까 계약서를 읽어! 라고 생각하지만 나도 어릴때 계약서 잘 안읽고 사인했던지라...) 그 외에도 20대의 그녀들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많이 읽게 된다. 내 머릿속에 나로 가득찬 때였다. 여전히 그런 것 같지만, 그때는 더했다. 더없이 미숙하고 어찌할 바 모르는 그런 영글지 못한 어린 어른이었다. 영글지 못했기에 더 확신에 차 있었던 어린 날들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은 더 모르겠고, 내가 정말 아는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수록 섣부르지 않게 결정을 내리려고 속도를 늦춘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오해한다. 내 가치관과 타인의 가치관은 다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고 화가 나는 것이 있어도 이게 다름에서 오는 것이라면 그냥 받아들일 수도 있어야 한다. 그게 어른이 되는 것 같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괜찮다. 불편한 상황도 있다. 불편해도 참고 지나갈 수 있어야 한다. 왜냐면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니고, 상황에 맞게 조연은 조연답게 빠져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대는 전부 내가 주인공이어야 할 것 같은 시기이니까. 그렇게 행동했을 당시의 나를 기억해보며 아 내가 그랬구나, 싶다. 해나도 마침내 자신의 아기를 낳고 나서야 안다. 나의 삶에서 내가 주인공이 아닐 때가 있구나, 라는 것을. 그렇게 해나도 점차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부끄럽고 어렸던 20대를 위한 헌사같은 시리즈, <걸스>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