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덤비는 꼴

by 벼꽃농부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대개 '목구멍이 포도청'이어서 어쩔 수 없는 처지라고 합니다. 인사철이면 원치 않는 먼 곳으로 발령이 나곤 하는데, 진급 후 한두 해는 그러려니 했습니다.


우리 직장인들은 일과 가족, 나의 목표와 삶의 안정을 저울질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저 역시도 그러했습니다.


조직이라는 것이 대개 피라미드 구조이라 상위직급으로 올라갈수록 이동할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고, 전국에 조직이 있는 이 회사에서는 원치않아도 발령에 따라 갈 수 밖에 없는 서글픔을 매년 느낍니다.


부장으로 진급한 지 어느덧 6년째. 그동안 저의 발자취는 대한민국을 동서남북으로 거의 매년 다녔습니다.

강원도 치악산의 푸른 숲이 반겨주던 원주를 시작으로, 경남의 바람을 머금은 사천과 김해, 전라도의 넉넉한 품이 느껴지던 군산, 그리고 따뜻한 남쪽나라인 경산까지. 이 모든 곳에서 만난 사람들, 쌓아온 경험은 제 삶을 더욱 깊고 풍성하게 만들어주었지만, 그럴수록 한 가지 바람은 더욱 절실해졌습니다.


‘집 가까운 곳으로 갈 수는 없을까?’



주말부부로 지낸 시간 동안 제 삶은 늘 여행 가방과 함께였습니다. 금요일 저녁이면 공항이나 고속버스 터미널, KTX 역으로 향하던 제 모습이 지금도 어색합니다. 비행기와 버스 창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들은 매번 비슷했지만, 그 안에서 제가 느꼈던 감정은 늘 달랐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설렘도 잠시, 일요일 저녁에는 서둘러 이른 저녁을 먹고 다시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는 깊은 아쉬움과 피곤함이 밀려오곤 했습니다.


간혹 터미널이나 기차역에서 저와 비슷한 처지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들을 마주할 때가 있었습니다. 서류 가방을 맨 채, 부인이 싸준 반찬거리를 한 손에 쥐고서... 가족에게 돌아가려는 길일지 아니면 또다시 떠나는 길일지 모를 그들의 모습은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하면서도 안쓰럽게 다가왔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저와 같은 바람을 품고 있지 않았을까요? 가족과 함께하는 소박한 일상, 집에서 맞는 평범한 아침이 그들에게도 간절하지 않았을까요?


고단한 몸을 이끌고 먼 길을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여행 같지 않은 나날들이 있습니다. 새로운 도시와 환경이 주는 설렘은 어느덧 익숙함으로 바뀌고, 익숙함은 곧 그리움으로 이내 다시 낮설음으로 바뀝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주말이면 아이들과 산책하며 느끼는 소소한 행복. 멀리 있는 이들에게는 평범하게 다가올 이런 순간들이 저에게는 꿈같은 풍경이 되어버렸습니다.


다가오는 이번 인사철, 저에게는 간절한 바람 하나가 있습니다. 오랜 시간 염원해 온 것처럼, 이제는 집과 가까운 곳에서 삶의 중심을 조금 더 가족에게 옮길 수 있기를. 제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가운데서도, 사랑하는 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나눌 수 있기를.


물론 그 바람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뤄지지 않는다면 또다시 가방을 싸며 낯선 도시의 아침을 마주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희망을 놓지 않으려 합니다. 제가 걸어온 길이 그렇듯, 앞으로의 길도 언제나 저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테니까요.


오늘도 저는 저 자신에게 다짐합니다.

어느 곳에 있든, 제가 걸어가는 모든 길이 결국 저의 집으로 가는 길이 될 수 있도록.


얼마 남지 않았다. Good l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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