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빠진 서해안 바닷가

by 벼꽃농부

물때표를 보고서 최고간조시간을 찾아 본다. 오래 전부터 들물보다 날물이 좋았다.

감추고픈 나의 민낯은 숨기고 되레 바다가 숨겨둔 민낯을 볼 수 있어서일까.


서해안 바닷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을 바꾼다. 밀려왔다가 밀려가고, 남겨졌다가 다시 채워지는 바다의 호흡. 물이 빠진 해안은 마치 무대 뒤편을 드러낸 극장처럼 숨겨진 속살을 보여준다.


갯벌은 평소에 보이지 않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살에 깎인 흔적, 작은 생물들이 남긴 흔적들, 그리고 사람들의 발길이 어지럽혀 놓은 흔적까지. 갯벌 위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바지락, 게, 그리고 작은 물고기들은 마치 이곳이 자신들의 세상임을 조용히 주장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곳은 언제든 물에 잠길 운명이다.


나는 물이 빠진 서해안 바닷가를 걸으며 그 묘한 풍경에 빠져들었다. 해질녘, 낮은 태양이 갯벌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순간은 하나의 그림 같았다. 이곳은 단순한 땅이 아니다. 흔들리면서도 멈추지 않는 시간의 흐름, 자연의 리듬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


물 빠진 바닷가에서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 역시 한때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듯한 공허함 속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 갯벌처럼 모든 것을 드러내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왔고, 그런 시간들은 때론 버겁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순간들 속에서 나는 작은 생명들이 남긴 흔적처럼 나만의 이야기를 남길 수 있었다. 그리고 물이 다시 차오를 때, 그 모든 흔적들이 새로운 물결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것을 경험했다.


바다는 모든 것을 휩쓸어 가지만, 다시 채우기도 한다. 물 빠진 서해안 바닷가는 나에게 그 사실을 잊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공허함은 곧 채워질 준비를 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그렇게, 바닷가는 오늘도 우리에게 조용한 가르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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