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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촌, 그리고 떠나간 어머니

언제고 다시 만날 때까지 그곳에서 안녕히 계세요.

by 벼꽃농부




잠깐, 먼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몇 마디 첨언합니다. 글을 쓰는 저는 개방적인 성격 탓에 친구라고 소개할 지인 중에는 나이가 70세를 넘긴 할아버지도 있고, 다섯 살이나 적은 봉사단체 동생도 다른 지인에게 친구로 소개합니다. 이 글 중에 나오는 친구는 저의 여사친인 거죠. 여사친과 나의 아내는 저 보다 더욱 친한 친구사이이고, 여사친의 배우자와 저는 또 다른 관계의 친구입니다. 되레 이해를 망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오늘 아침 하늘은 비와 눈이 뒤섞여 잔뜩 흐렸다. 새벽녘엔 비가 내리더니 이내 눈으로 바뀌어 온 세상을 하얗게 덮고 있다. 변덕스러운 날씨만큼 마음도 무겁다.


어제 오후, 십 년 넘게 함께해 온 친구의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다는 부고를 받았다. 세 살 연상이지만 늘 한 동네에서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며 이웃사촌처럼 지내온 친구이고, 나와는 달리 미적 감각이 풍부해 전문가 수준의 그림을 나누어 주기도 하며, 성품도 매우 온화해 그와 같이 있을 때면 나의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낀다. 그런 그가 좋아 기쁜 일이 있을 때도, 슬픈 일이 있을 때도, 혹은 아무 일 없을 때도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소주잔을 자주 나누던 사이였다.


친구의 어머니께서는 향년 86세로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운동 겸 소일 삼아 경제생활을 하실 정도로 건강하셨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몇 해 전부터 점차 기력이 쇠해지셨고 그 후로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오가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셨다고 한다. 친구의 외동오빠는 변변한 직장도 없이 살아왔고, 결혼도 하지 않아 어머니의 마음을 늘 무겁게 했고, 그런 상황 속에서 친구는 어머니를 돌보며 자신 또한 많은 고난과 희생을 감내해야 했다. 게다가 힘들 때 힘을 덜어 주어야 할 남편은 가끔 남의 편이 되어, 친구는 없는 눈치를 보며 어머니를 뒷바라지해야 했던 현실이 마음을 더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친구가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이유도, 어쩌면 그런 상황의 연장선에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친구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건 남편의 태도였다. 친구의 남편은 모든 걸 너그럽게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설날을 며칠 앞둔 때라지만 친구의 힘겨운 이 시기에도 본가와 처가를 저울질하며 이기적인 성향을 보여 친구를 더없이 외롭게 만들었고, 친구는 위로받기는커녕 스스로 견뎌야 하는 상황이었다.


여하간 죽음이란 생명의 순리다. 우리는 부모의 몸을 빌어 태어나 희로애락으로 살아가고, 마침내 늙고 병들어 결국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정작 이 순리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그 죽음이 나의 소중한 사람에게 찾아왔을 때다. 이별이란 말로는 턱없이 설명할 수 없는 세상 가장 큰 무게로 우리를 짓누르는 것이다.



나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 “힘들겠지만, 용기를 잃지 않길 바라요. 지금은 눈물이 멈추지 않겠지만, 언젠가 그 눈물이 당신을 치유해 줄 거예요. 당신 어머니께서 사랑으로 남긴 추억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그러니 너무 오래 아파하지 말고, 천천히 기운을 차려봐요.”


삶은 끝이 있지만, 그 끝은 우리에게 사랑과 추억이라는 흔적을 남긴다. 친구의 어머니께서 남긴 흔적 역시 친구의 삶 속에 오래도록 빛날 것이다.


그림 출처: 친구가 그려 준 성당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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