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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친구란 있을까?

혹시 나는 누군가에게 나쁜 친구일까?

by 벼꽃농부

어릴 적 우리는 친구를 단순하게 정의했다. 함께 놀고, 웃고, 울었던 존재.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친구의 의미는 점점 복잡해졌다. 특히 회사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친구’라는 단어는 때때로 관계를 포장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인사철이 되면 회사는 술렁인다. 평가가 이루어지고, 승진과 이동이 결정된다. 이 시기가 되면 유독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학연, 지연, 종교연, 취미 모임 등 온갖 인맥을 동원해 자신의 사람을 챙기려는 이들. 이들은 종종 ‘친구’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우린 친구잖아’라는 말이 은근한 압박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운함을 가장한 협박이 되기도 한다.


A는 대학 동기인 B와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평소 친분이 있던 B는 인사철이 되자 A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번에 팀 이동이 있는데, 네가 팀장한테 말 한마디만 해주면 좋겠어.” A는 난처했다. 평소 B와 친하게 지냈지만, 그의 업무 능력을 신뢰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하지만 거절하는 순간 B와의 관계가 어색해질 것이 분명했다. 고민 끝에 A는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이후 B는 점점 A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결국 A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B는 정말 내 친구였을까?’


‘나쁜 친구’란 무엇일까? 단순히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일까? 아니면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일까? 어쩌면 ‘나쁜 친구’의 정의는 우리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지도 모른다.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친구, 관계를 이익으로만 계산하는 친구, 그리고 친분을 명목으로 도덕적 딜레마를 강요하는 친구. 이들은 과연 친구일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 인간관계는 늘 이익과 감정이 얽혀 있고,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친구를 필요에 따라 정의할 때가 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관계의 이름이 아니라 그 본질일 것이다. 진정한 친구는 이익이 아닌 신뢰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나쁜 친구’를 정의하는 것보다, 좋은 친구가 되려 노력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친구란, 결국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다. 내가 좋은 친구가 될 때, 나 역시 좋은 친구를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쁜 친구’가 있는가를 고민하기보다는, 어떤 친구가 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 아침, 나는 왜 ‘나쁜 친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을까? 최근 한 지인을 통해 친구 관계에 대한 깊은 고민이 생겼다. 친구란 서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존재여야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친구라는 이름 아래에서 실망을 경험한다.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친구, 이해관계에 따라 변하는 관계, 그리고 우정을 가장한 요구들. 이런 모습 속에서 진정한 친구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되짚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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