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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꽃농부 Nov 27. 2024

Wheel Worm(바퀴벌레)의 숙적은 여자

네 다리가 6개 이상이면 여자를 피해라.

  '꺄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공중부양한다 싶더니 순간이동으로 침대 위로 올라 선 그녀는 어느새 한 손에는 보랏빛 파리채를 머리 위까지 올려 금세라도 중력가속도를 더해 수직낙하하는 100톤의 핵탄두를 내리꽂을 기세이고 다른 한 손은 늘어난 고무줄에 반은 흘러내릴 것 같은 잠옷바지 허리춤을 움켜쥐고 있다.


"뭐야? 뭔데?"

"여기 여기 침대 밑 바퀴" 다급한 마음에도 목표물과 좌표를 정확히 짚어내는 정신이 훌륭해 보였다.


"바퀴? 진짜? 무슨 아파트 6층에서 바퀴가 나와?"

"아~ 빨리 잡어~" 하나뿐인 최강무기인 파리채를 쥐고 있으면서 나더러 잡으라고 하면 난 맨손으로 때려잡아야 하나? 순간 고민해 본다. 내 손에 피를 묻히는 건 전투에서 그다지 지혜롭지 못하다는 판단이지만 1 대 2의 우세한 형국에서


  침대 밑으로 들어간 녀석을 밖으로 나오게 해야 한다. 녀석이 나오지 않는다면 더듬이라서 움켜쥐어서 끌어내야 한다. 우선 녀석도 꽤나 놀랐을 게 분명하다. 만약 그녀의 비명이 정조준되어 녀석의 정수리나 엉덩이 쪽으로 쏘아댔다면 머리는 반쪽이 되고, 엉덩이는 장날 옥수수 뻥튀기처럼 터져버렸을 텐데 운이 좋았던 것이다. 몇 분간 조심스레 주변탐색을 해보았으나 녀석은 숨도 쉬지 않는 채 꼬옥 숨어서 움직이지 않기에 침대 모서리를 툭툭 쳐서 싸움을 걸어보았으나 적막하기 이를 데 없다.


  문득 침대 위에 올라선 그녀가 궁금해 올려 보니, 이미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원래 송아지 눈망울마냥 컷던 눈은 얼굴의 반을 덮을 모양으로 더욱 커져있고 이마에는 사우나 찜질 속에서 볼 듯한 식은땀이 맺혀있다. 그녀도 숨소리를 죽이며 앞으로 펼쳐질 한 바탕 전투를 대비하고 있으나 실상 전투병은 나 혼자일 테고 만약 내가 전사한다면 그녀는 나를 대신해 싸우지 않고, 지략 중 단연 최고인 36계 줄행랑을 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 내 직감이다.


 이겨야 한다. 임전불퇴!


  우선 모든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방문과 화장실, 베란다 통로 등을 굳게 닫아 잠근다.

그리고 돌돌 말아 쥔 신문지몽둥이를 다시 한번 힘 있게 움켜쥐고 침대 밑을 손전등으로 비춰보니 그간 옷이며 이불이며 세간살이가 빼곡히 들어차 놈의 은신처를 정확히 찾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여보 밑에 옷이며 이불이며 잔뜩 있는데... 이거 다 꺼내야 되겠는데..."

"뭐야? 바퀴가 이불에 들어가면 어떡해? 옷에 들어가면 어떡해?" 뭔가 라임이 느껴지는 반복이 랩인 듯 환청이 들린다.

"아니야 괜찮을 거야. 진공포장비닐로 해 두었으니까 놈이 들어가지 못했을 거야"안심시키려 했지만 내심 혹시나 비닐이 열려있다면 낭패다 싶었고 이런 다급한 마음은 전의를 더욱 끌어올렸다.


  가장 가까운 쪽 비닐포장을 천천히 조심스레 끌어내니 먼지가 소복이 앉아 있었고 다행히 열려 있지는 않았다. 두 번째 것을 끌어내려고 손을 밀어 넣는 사이 강아지 크기만한 바퀴녀석이 검푸른 투구를 쓰고 날카로운 더듬이를 바짝 세운채 나를 향해 돌진해 왔다. 

"우왁~" 너무 놀란 나는 뒤로 나동그라졌고, 그 충격으로 화장대 위에 있던 화장품들이 와르르 쏟아지고 거울이 흔들거렸다.

침대 위에서 지켜보던 그녀는 그 광경에 놀라 뒤로 벌렁 넘어졌지만 다행히 메모리폼 베개가 그녀의 머리를 안락하게 착지시켜 주었다. 지난달 월급 받고서 큰맘 먹고 십 년 만에 바꾼 것이 돈값을 제대로 한 것이다.


  정신 차린 나는 녀석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주변을 살폈는데 보이지 않는다. 자취를 감춘 것이다.

장수가 전투에서 지고 돌아오면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하는 게 인지상정아니던가!

그녀는 바퀴를 잡지 못한 나를 원망하기보다 나를 죽이려 들 것이다. 아니 잡아 올 때까지 이 방에서 나오지 못하지 할 것이다.


  분명 놈은 이 방안에 있다. 자세를 고쳐 잡고 매의 눈으로 주변을 샅샅이 흩어 보았으나 보이지가 않는다.

우선 방바닥에 나뒹굴어진 화장품을 정리해야 내게 유리할 것 같아 주섬주섬 주워 담다가 그 사이에서 벌렁 뒤집어진 녀석을 발견하고 흠찢 놀랐으나 회심의 미소가 입술 위에 그려진다. 녀석은 나에게 돌진하는 척하며 나를 놀라게 한 뒤 슬쩍 방향을 화장실 쪽으로 틀어 빛의 속도로 냅다 달렸겠으나, 그와 동시에 벼락같이 떨어진 싸구려 향수병 밑동에 깔려 찍소리 못하고 즉사한 것이었다.  


  내가 이긴 것이다. 녀석이 나를 놀라게 하려 돌진했을 때 한 걸음 물러섰지만 평소 안방의 지형지물을 익혀왔던 터라 등 뒤 화장대 선반의 다발성 포탄이 적재된 것을 알고 있던 나는 순간적으로 강한 진동을 유발시켜  동시다발폭격을 한 것이 깨끗한 한판 승리의 킥이었던 것이다. 대개의 전투는 초기 작전계획을 잘 세웠다고 하나 다양한 변수가 발생하는 법! 변수적 상황판단을 잘한 내가 이긴 것이다.




  고층 아파트 생활에서 바퀴를 만날 이유는 딱히 없어 보인다. 어디로 침입된 것인지... 한 동안 경로를 파악 후 봉쇄계획을 세워야겠다. 아참 바퀴벌레는 영어로 Wheel worm이 아닙니다. 하하하~


  다음에는 지난 여름날에 발이 6개나 달렸음에도 공중비행하는 웽웽이 녀석과 크게 전투를 벌여 대승을 거둔 기록을 나누어야겠다.


사진 빌려 온 곳: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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