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바다
매주 목요일은 아파트 재활용하는 날이다. 이날은 꽤나 재미가 쏠쏠한데 이유는 여지없이 보물찾기 하는 기분이 들어서이다. 어린 날에 소풍 가면 항상 빠지지 않고 있던 재미가 보물 찾기였다. 그때 난 다른 친구들이 한두 개씩 찾던 쪽지를 한 번도 찾은 적이 없다. 지금 생각하면 신기할 정도이다. 언젠가는 이번에도 못 찾겠지 하며 아예 찾기를 포기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회사 야유회나 체육행사에서도 끝머리에 이름 뽑기 추첨을 해도 내가 걸려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쯤 되니 처음부터 기대를 가지지 않는 것이 속 편한 일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소풍날의 지독히 운수 없던 때와는 달리 요즘 매주 목요일은 다르다. 정확히 얘기하면 금요일 새벽이다. 재활용시간은 목요일 오후부터 시작되어 금요일 낮쯤 대형 집게발 트럭이 올 때까지인데, 재활용 쓰레기 무덤 속에서 진주를 찾는데 최적의 시간은 금요일 새벽 5시 경이다. 새벽형 인간인 나는 눈곱을 뗄 시간도 없이 신속하고 소리 없이 어슬렁어슬렁 뒷짐을 지고 한 손엔 랜턴을 쥐고 일주일 사이 집집에서 내다 놓은 쓰레기 아니 재활용더미 이곳저곳을 뒤져본다. 제일 처음 들여다보는 곳은 책이 모여 있는 곳인데, 소설책이며 영어책 그리고 가끔은 뜻하지 않게 의학전문서적을 집어오기도 한다. 아주 운이 좋은 날엔 대하소설 전집이나 손바닥 크기만 한 얇은 영어소설책 수십 권을 뭉텅이로 만나기도 한다. 귀하게 획득한 책들은 한 두어 달간 내 눈을 즐겁게 해 준 뒤 당근에서 커피값 정도에 새로운 주인에게 넘기기도 하고 그대로 내 책장 한 귀퉁이에 자리 잡기도 한다.
그다음 시선을 옮기는 곳은 전자제품을 쌓아 두는 곳인데 제철음식처럼 여름엔 선풍이가 주류이고 겨울엔 전기히터가 많고 계절과 상관없이 컴퓨터, 모니터, TV 등이 나온다. 대개는 고장이 나서 고치는 비용보다 새로 사는 것이 경제적이고 현명하다는 생각에 내다 버린 것인데, 전원을 연결하고 이리저리 살펴보면 고장은 아니나 구형이라 버려진 것도 종종 만난다. 이런 것은 즉시 당근에서 중고시세를 확인하고 최저가로 판매 가능여부를 판단하여 집으로 데려올지 말지 빠르게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 판단착오로 팔지 못했을 때는 다음 주 목요일에 다시 이곳으로 내보내야 하는 수고쯤은 감수해야 한다.
이런 고상하지 못한 취미가 생기게 된 이유는 몇 해 전 LG 로봇청소기를 만나게 된 후부터이다. 청소기를 보자마자 혹 하는 마음에 얼른 가져와 이리저리 만져보니 고장이 없어 보였다. 아내는 로봇청소기가 방안청소를 알아서 잘하는 것을 보더니 ‘아니 고장도 안 난 것을 왜 버렸데?’하며 주워온 나를 칭찬해 줬고, 신이 난 나는 그 후로 재활용하는 날이면 호시탐탐 뭐 재미난 것 나왔나 두리번거리게 된 것이다.
과거 한 때 유행어처럼 회자되는 말이 있었으니 ‘아나바다’
-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 -
우리 모두 아나바다합시다.
사진 빌려 온 곳: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