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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꽃농부 Nov 24. 2024

그 형부에 그 처제

DNA는 개나 줘 버려

  얼마 전 원 서방이 급하게 증명사진을 찾다 결국엔 여권사진을 도려내 뒷 목 잡게 한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으로 인해 잊을 뻔했던 오래전 사건 하나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오여사에게는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고등학교까지는 있는 듯 없는 듯, 엊그제 입학했는지 내일 졸업하는지 조차 관심이 좀체 가지 않는 은둔형이었다. 소소히 관심을 끌려는 사춘기 소녀의 일탈은 귀엽게 봐주기에 충분한 별일 만들지 않는 소녀였다. 그래도 굳이 가장 컸던 사건이라 할라치면...


  언젠가 동생이 고2 여름방학 때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큼지막한 알이 비싸 보이는 갈색 선글라스를 쓰지 않은 채 머리에 올리고 나름 윤기 나게 긴 생머리를 말아 올려 하얀 뒷덜미가 가늘게 보인채 큼지막한 갈색 집게핀으로 옭아 잡고 또래보다 큰 키를 더욱 크게 해 보이는 집시치마와 아이보리 단화로 읍내를 거닐면 조그만 시골 도시 남학생들과 청년들의 눈에는 하늘에 날개 떼어 두고 내려온 천사인 듯 순간착각을 유발케 하는 외모와 조숙함을 넘어 발육이 잘 된 완숙함이 있었다.  

  서울에서 막 내려온 그로시한 느낌의 아가씨를 보고서 마음 흔들린 동네 청년들은 다짜고짜 차 한 잔 어떻냐?  시간 좀 있냐?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디 사냐? 등 드라마에서나 봄직하게 치근덕대었으나, 동생은 흥미 없다는 듯 더욱 도도히 앞만 보고 지나갔고, 한참을 걸어가다 시외버스정류장이 보이는 길가에 멈춰 서서는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길 건너엔 흔히 해장국을 파는 식당 두어 군데와 30년은 더 되어 보이는 다방이 있었고, 조금 더 먼 곳에는 커피자판기 앞에서 택시기사 서넛이 오지 않을 승객을 기다리며 담배를 태우며 어제 태운 손님들 험담에 즐거워 하고 있었다. 길 반대편의 반대편 그러니까 이쪽 편에는 어디서 왔는지 모를 뜨내기가 하룻밤을 싸게 자거나 타지에서 온 인근 공사장 인부들이 며칠 지낼 것 같은 허름한 3층짜리 여관이 있고, 어느 읍내 시외버스정류장 근처에는 꼭 있는 약국이 하나 보였다.


붉은색인지 노란색인지 알 수 없을 색 바랜 '진료는 의료에게 약은 약사에게' 표어가 흐릿한 미닫이 출입창에 붙어 있는 걸로 보아 꽤나 경륜 있는 약사가 있는 약국으로 보였다.


쇠 긁는 끼익 소리를 더욱 세게 밀고 들어간 동생은 가끔 마시는 원기획복제 '박카스'를 한 병 달라했고, 그 사이 오른손 아래 유리진열대 속에 보이는 '2+1 대형 소형'이라는 문구가 눈에 쏙 들어왔고 그 아래의 '미성년자에게는 팔지 않습니다.' 글귀도 잘 읽혔다. 그 나이 그때 소녀에게는 호기심이 부족하지 않을 터, 동생은 짐짓 아무렇지 않게 "이거 하나 주세요. 큰 걸로"하며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쉰 살은 넘어 보이는 여약사에게 젊은 여자가 아무 표정 없이 성인용품을 달라고 하니 의심의 여지없이 건네주려는데... 동생의 지갑은 멋쟁이 아가씨가 가지고 있기엔 너무나 앙증맞은 알록달록 키티지갑이었고, 지폐 몇 없이 동전 가득한 열린 지갑 속에서 보인 노란색 학생증은 단박에 미성년자로 보였으니...


조그만 읍내에서 수 십 년간 약국을 하다 보니 뉘 집 개가 누구와 붙어서 새끼를 몇 마리 낳았고, 그 새끼가 커서 뉘 집으로 팔려가 얼마 전 멧돼지를 잡았다는 등 동네 소식이 오가는 통로이니 중계방인 것을 동생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여약사는 동생의 지갑을 매가 수직낙하하여 쥐를 단번에 채 가듯 순식간에 낚아챈 후 보랏빛 가느다란 붉은 입술 한쪽 꼬리를 실룩였다. "아가씨, 아가씨 아니죠? 학생이지? 고등학생이지? 몇 학년이야? 어디 다녀?" 여약사의 아들이 군 휴가 나와 훈련 때 보았다는 다련장로켓처럼 쉴 새 없이 질문을 퍼부었고, 동생은 뭐 하나 딱히 대답할 수 없었고 우물쭈물하다 이미 늦어버린 걸 알고 그냥 우는척 아니 울어버렸다고 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집시풍의 그로시한 서울 아가씨는 옆 동네 누구네 집 둘째 딸이고, 어디 다니는 고등학교 2학년인 게 드러났고, 동생에게 부모님 전화번호를 대라는 여약사는 '오늘 너 잘 걸렸다'며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심보로 재미가 한껏 올랐는데, 부모님에게 알렸다가는 긴머리가 다 잘려 비구니가 될 거고 허연 종아리는 싸리빗자루에 터져나갈 게 뻔하니 급한대로 언니에게 전화해서 빨리 오라고 하였고, 오여사는 동생이 엉뚱한 데가 있고 호기심에 그런 거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고 나쁜 애 아니니 괜찮다며 입 발린 말로 대신해 데리고 나왔다.


연신 머리를 쥐어박으며 "대체 왜 그랬냐? 네가 콘돔을 왜 사냐? 큰 거는 또 뭐냐?" 물었으나, 동생은 그냥 그랬단다. 눈에 보였고 두 개 사면 하나 더 준다는 2+1이라는 말이 괜히 사면 돈 번 것 같은 느낌이 생길 것 같아 그랬단다.


그랬던 동생은 다음 해에 졸업했고 공부실력 없는 제 탓은 하지 않고 집안사정 핑계를 대며 대학진학은 하지 않고 돈 벌어서 대학가겠다고 했다. 


 공부머리는 없지만 셈이 빨랐던 동생은 가고 싶은 회사가 있다고 했고, 어른티가 나는 옷 몇 벌을 사고 이력서에 붙일 증명사진을 찍겠다며 읍내를 다녀왔다. 하지만 동네 사진관은 며칠 뒤에 찾으러 오라 했고 이력서를 빨리 내고 싶어 안달이나 한시가 급한 동생은 번뜩이는 생각에 '언니야 좋은 생각이 있다'며 제 방으로 들어간 지 얼마 후 준비한 이력서에 떡 하니 사진을 붙여 왔더란다.

그런데 뭔가 사진 속 얼굴과 배경이 낯이 익어 고개를 갸우뚱하며 궁금해하니 "앨범, 앨범에서 땄지 히히히"


  하나뿐인 고등학교 졸업앨범에서 동그란 사진 속 얼굴을 그렇게 다시 동그랗게 오려내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이력서에 잘도 붙여 낸 것이다. 어이가 없어 한 동안 말을 잊고 동생을 바라보았으나 이미 벌어진 걸 뭐라고 한들 어쩌겠나.


동생은 그렇게 들어간 회사에 몇 달 다닌 후 얼마지 않아 회사를 옮겼고 이직할 때 이력서엔 사진관에서 찍은 증명사진을 붙였다며 웃는다.


오여사는 명절날이나 또는 가끔 가족이 모이는 날엔 옛날 추억을 찾으려 이런저런 앨범을 들추어 보는데 동생의 졸업앨범 속에 동그랗게 구멍 뚫린 사진 아래 이름 석자를 보면 조금 으스스한 느낌이라고 한다. 왜일까?


사진 빌려 온 곳: 구글 속 매일경제




글머리에 잠시 보인 원서방의 이야기는 아래에...

[갑자기 증명사진 한 장이 필요합니다만.  https://brunch.co.kr/@qurhcshdqn/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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