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세상을 적셨던 봄비가 드디어 그쳤다. 젖은 대지 위로 연분홍빛 벚꽃 잎이 흩날리고, 서쪽 하늘에는 붉은 석양이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마치 하늘이 하루를 조용히 정리하며 "잘했어"라고 말해주는 듯한 풍경이었다.
여섯 도형들은 마을 언덕에 모였다. 네모, 세모, 오각형, 마름모, 별, 그리고 동그라미. 그들은 각자 자신만의 굴곡진 선과 날카로운 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서로를 의지하고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참… 조용하다.” 네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각의 프레임 안에서 항상 규칙과 책임감을 중시하던 그는 이런 감성적인 풍경 앞에선 유난히 말이 적어졌다.
“비가 며칠이나 왔으니까. 오늘처럼 맑게 개인 날은 오랜만이네. 내일은 남동풍의 따뜻한 바람과 햇빛이 좋을 것 같다고 하더군.” 세모가 고개를 들어 석양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언제나 예리하고 정보에 민감했다. 사소한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꼭꼭 짚고 넘어가는 성격.
그때 오각형이 툭 던지듯 말했다. “근데 우리 중에 진짜 부러운 도형은 누구인지 알아?”
“응?” 별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반짝이는 다섯 갈래의 끝을 가진 그는 언제나 스포트라이트 속에 서고 싶어 했다.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오각형은 지그시 웃었다. “난 솔직히… 동그라미가 부러워. 우리 모두 그렇잖아?”
순간, 다섯 개의 시선이 조용히 동그라미를 향했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석양을 바라보던 동그라미는 고개를 돌려 친구들의 시선을 마주했다.
“나?” 동그라미는 살짝 웃었다. 그 미소는 둥글고 부드러웠다. 모서리 없는 표정이랄까. “왜 내가 부러워?”
마름모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넌 누구와도 잘 어울리잖아. 각도 없고 튀지도 않아서 어디에 놓여도 자연스럽고, 거슬리지 않아. 협력도 잘하고, 남들보다 감정 기복도 적고… 그게 정말 대단한 거야.”
세모가 끄덕이며 덧붙였다. “맞아. 난 가끔 내 뾰족한 성격 때문에 다른 도형들이 불편해하는 걸 느끼거든. 그럴 때마다 ‘아, 동그라미처럼 부드럽게 굴면 좋을 텐데…’ 싶어.”
네모도 낮은 목소리로 거들었다. “나도 규칙과 원칙을 강조하다 보면 지치게 되지. 그런데 넌 항상 유연해. 그런 성격 덕분에 우리 사이를 중재할 때도 많았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그라미를 바라봤다. 하지만 동그라미의 눈동자는 어쩐지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석양의 붉은빛이 그의 동그란 얼굴에 번져들며, 조용한 울림처럼 말을 꺼냈다.
“고마워, 얘들아. 그런데 있지… 나, 요즘 그런 생각을 자주 해.”
“어떤 생각?” 별이 물었다.
동그라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난 개성이 없는 것 같아. 모두와 잘 어울린다는 건, 어쩌면 나만의 색이 없는 걸지도 몰라. 네모는 단단함, 세모는 날카로움, 별은 빛남, 마름모는 유연한 논리, 오각형은 균형... 근데 나는? 그냥 ‘좋은 사람’ 같은 느낌. 특별함이 없잖아.”
순간, 공기가 조금 무거워졌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고백이었다.
오각형이 먼저 말했다. “그게 바로 너만의 개성이야, 동그라미야. 우리는 다 모서리가 있잖아. 각이 있다는 건 다루기 어렵고, 충돌도 많다는 뜻이야. 근데 너는 그런 우리 사이에서 늘 중심을 잡아줘. 그건 아무나 못하는 거야.”
별도 조용히 덧붙였다. “내가 반짝이는 별이라 해도, 어두운 밤하늘이 없으면 의미가 없어. 너는 그런 밤하늘 같은 존재야. 우리를 감싸주고, 빛나게 해주는 존재.”
동그라미는 고개를 숙였다. 뺨이 살짝 붉어졌다. 그제야 그는 알았다. 자기 안에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어서 그 속에 자신이 보이지 않았던 것임을.
석양은 점점 짙어지고, 여섯 도형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졌다. 그들은 각기 다른 모양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하나의 풍경 속에 어우러진 커다란 작품 같았다.
“오늘도 잘 살아냈다, 우리.” 네모가 마지막으로 중얼였다.
그리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어둠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동그라미는 가장 가운데에서, 조용히 빛나는 마음을 품고 걸었다.
자신은 텅 빈 원이 아니라, 모두의 감정을 품는 가장 넓은 그릇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