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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쟁이 아버지

어느덧 여든여덟

by 벼꽃농부

아무래도 아버지를 찾아뵈어야 할 것 같아 오후 반차를 내고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거리에서는 불볕더위로 한증막처럼 가만히 숨만 쉬어도 땀이 줄줄 흐르네요.

집 근처 마트에 들러 아버지가 좋아하실만한 여러 가지 과일을 한 바구니에 가득 담아 양손에 쥐고 잰걸음으로 아파트에 들어서니 좀 살 것 같습니다.


남자 셋이서 국을 끓이고 반찬을 내고 후식으로 과일까지 먹었으니 이제 다 한 겁니다.

다들 말이 없습니다.

어색하면 더욱 불편해질 테니 기차시간을 핑계로 서둘러 일어났습니다.


돌아오는 길 버스, 지하철 그리고 기차간에서 멍하니 바깥만 보았네요. 아버지를 뵙고 오면 가끔 이럽니다.




기차 안에서


한평생 아등바등 힘겨이 살아오시고

장남으로 아버지로 남의 몫까지 짊어지고 살아오신 분


첫째 부인을 알 수 없는 불치병으로 보내고

둘째 부인도 십여 년 전 먼저 보내고 혼자되신 분


맞벌이하는 딸 년의 손주 두 놈을
품에 안고 키우며 힘겨워 서럽게 눈물을 보이신 분
그간의 세월이 이젠 저만치 흘렀습니다.


이제는 바둑판 앞에 홀로 앉아
얼굴도 모르는 대국 상대를 보며 웃고, 화내고, 때론 욕도 하시며
세월을 두고 계시네요.


강산이 변한 세월 탓인지

아마 4단이던 기력은
창피스레 12급으로 주저앉고,
그렇게 무심한 시간도 기다리지 않고 또 흘러갑니다.


그 모습을 보고 돌아오는
기차 안,
괜히 가슴 한편이 먹먹합니다.

아버지 고마웠다고...
아버지 죄송했다고...
그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또 멀어집니다.


창밖 풍경은 스쳐 지나가는데
제 마음은 아직도
아버지 곁에 머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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