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는 없다." 이민하 시인의 시와 함께
첫 키스
-이민하
한 개의 입으로는 태어날 수 없나니
우린 뱃속에서 옹알이 대신 입 맞추는 연습을 했네
지퍼처럼. 복화술처럼
서로 다른 얼굴로는 태어날 수 없나니
우린 뱃속에서 걸음마 대신 변장술을 익혔네.
처음 거울을 마주하고 덥수룩한 입술을 면도하던 날
차가운 혀를 몰래 나누고 우린 스쳐갔네.
시얼샤 로넌 - "플로렌스"
빌리 하울 - "에드워드"
에밀리 왓슨 - "바이올렛"
사뮤엘 웨스트 - "제프리"
앤 마리 더프 - "마저리"
결혼은 사랑의 끝인가. 혹은 또 다른 시작인가. 우선 축하의 박수로 시작하자. 오늘은 "플로렌스"와 "에드워드"의 결혼식 첫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객들의 박수가 끝날 무렵부터 그들은 헤어짐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체실 비치에서'가 러닝타임 동안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주요 내용은 이들이 어떻게 결혼식 6시간 만에 헤어지는 가다. 영화는 환상적인 경치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플로렌스"와 "에드워드"도 여타 신혼부부처럼 결혼식 후 신혼여행을 떠나 이곳에 왔다.
그러나 둘의 대화는 신혼부부가 맞나 의문이 들 정도로 어색하다. 남자는 계속해서 다리를 떨며 불안해하고 여자 또한 그에 못지않게 불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를 계속해서 외부적인 요인들이 방해를 한다. 키스를 하자마자 들어오는 호텔의 룸서비스 직원들에서부터 관계를 시작하려 할 때 잘 내려가지 않는 여자의 지퍼나 잘 벗겨지지 않는 남자의 구두까지. 이쯤 되면 살면서 가장 뭔가 안 되는 날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여자와 남자의 불안은 언어를 통해 구체화된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절박하게 "사랑해"와 "나도 사랑해"라는 말을 던진다. 그러나 그 대화는 사랑이 갖는 온기가 없어 상대에게 날아가지 못하고 공허하게 울릴 뿐이다. 실상 자기의 불안한 심정을 떨쳐내려는 독백일 뿐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이 대화는 실상 아무것도 해결해 주는 바가 없으며 오히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괜찮아?"라고 물을 때 "안 괜찮아"라고 말을 던져야 할 순간에 그 둘은 모두 "괜찮아"라고 말하며 회피한다. 회피는 자아의 보존 욕구다. 자기 분석이 시작된 뒤 그들이 자기 삶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고 싶다고 말할 때 그들의 무의식을 점유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그것을 '알고 싶지 않다'라는 욕망이기 때문이다. (브루스 핑크, 『라캉과 정신의학』)그들은 영화 속에서 대화를 이어나가지만 그 형식은 침묵이다. 이런 문법은 관계에까지 이어진다.
그 둘은 명확하게 괜찮지 않다. 그들의 불안이 단순히 신혼 첫날의 긴장이나 불안으로부터만 기인하지 않는 까닭이다. 감독은 대화 중간중간에 그들의 과거를 보여준다. 그들이 어떻게 '우연'하게 만나서 결혼에 이르렀는지에서부터 그들의 유년시절의 트라우마까지. 이 불안을 살펴보기 위해 그들의 첫 만남으로 돌아가 보자. 그들은 정말 우연하게 만났다. 그들이 처음 만난 날 남자는 우편으로 그가 학과에서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어머니는 그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정신이 이상했고 여동생들은 "수석이 좋은 거"냐고 묻는다. 그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지만 아무도 그의 성취를 알아주진 않는다. 여기서 결핍이 발생한다.
슬라보에 지젝은 「성적 차이의 실제」에서 "오직 불완전하고 결여되어 있는 존재만이 사랑을 한다. 즉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 않기 때문에 사랑한다."라고 말한다. 흔히 우리는 사랑의 시작에 관해 "외로울 때 사랑을 시작해서는 안된다."라고 말은 한다. 하지만 실상 우리는 언제나 외로울 때 사랑을 시작한다. 존재적으로 우리는 어딘가 결여되어 있고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둘의 사랑도 결핍으로 시작한다. 남자와 여자 모두 집안에서 각각 자신의 수석에 대해 인정받지 못했고 자신의 "핵무기 반대운동"에 대해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그 둘은 첫눈에 반했다고 생각하지만 이 표현은 절반은 맞고 나머지 절반은 틀린 표현이다. 남자와 여자 둘 다 그들이 무언가를 결핍했음에 반했으며 그 모습을 상대로부터 보았기 때문에 사랑에 빠진 것이다.
여기에 남자와 여자의 유년시절 트라우마가 더 해진다. 여자는 유년 시절 남녀 관계에 대한 씻을 수 없는 기억이 있지만 이를 묻고 있었다. 남자는 매일 같은 어머니의 광기를 보지만 익숙해져 버렸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이들은 서로 결혼을 한다. 이제 사랑은 충동의 차원에서 욕망의 차원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아직도 그들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재한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순간은 그 당시와 유사한 인생의 위기 상황이다. 그래서 이 둘은 우여곡절 끝에 관계를 나누는 데 성공하지만 그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 욕구의 해소는 슬라보에 지젝이 말했던 바와 같이 " 완전한 욕망의 능력을 갖춘 비병리적인 상태를 낳기는커녕 총체적인 정신적 파국, 즉 주체의 전체 세계의 해소로 귀결된다. 그저 우연적이고 일시적인, 그리고 허약한 안정의 지점"일뿐이다. (인용 부분은 슬라보에 지젝, 『성적 차이의 실재』)
에드워드의 이 성적 향유는 한 가지 이상으로 타자의 향유다. 말 안에서의 향유였을 뿐만 아니라 완전한 소외로서의 향유이기 때문이다. 그의 향유는 전적으로 그의 타자로서의 "플로렌스"안에서 소외(externalized)되어 있다. 이는 플로렌스도 동일하다. 그녀의 향유 역시 오로지 대화 속에서만 가능했었다. 또한 향유의 그 순간마저도 오로지 타자가 즐길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직면하는 데서 비롯된다. "난 이것을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지금 이 행위를 하고 있다."라는 고통과 역설의 몸짓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결론은 결국 성관계를 하긴 했지만 "성관계는 없다"로 점철된다. 여자가 먼저 참지 못하고 뛰쳐나간다. 결핍으로 시작한 사랑은 결코 충족되지 못한다.
남자는 굴욕감을 느끼며 여자를 쫓아간다. 관계 이전과 이후 그들은 부부라는 관계는 동일하다. 하지만 그 외에 모든 것이 변했다. 남자가 굴욕감을 느끼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부부라는 관계는 남자의 관점에서는 지금까지 금지되었던("에드워드"와 "플로렌스"는 관계가 처음이다) 무한한 향유를 약속한다. 그러나 동시에 여자는 "도저히 할 수 없다"며그 향유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심지어 "다른 여자와 자도 된다"라고 언지를 슬며시 건넨다. 남자가 분노가 폭발한다. 그 남자는 환상의 틀에서 작동하는 질서에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향유를 하며 구속하는 존재는 그만큼 자신도 동일한 구속을 받길 은연중 원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놓아준다. "오직 사랑만이 충동의 향유를 욕망의 수준으로 낮출 수 있"(슬라보예 지젝,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지만 여자는 이제 더 이상 충동의 대상도 욕망의 대상도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식 후 6시간이 지났고 사랑은 끝났다. 남자는 여자에게 "당신은 사기꾼이야" "돌덩이야"와 같은 말을 쏟아낸다. 심지어 그들이 함께 걷던 Beach가 그가 던지는 bitch가 되어버린다. 둘은 돌아서고 다른 방향으로 걸어간다.
그들은 헤어졌다. 남자는 레코드 가게를 차렸고 여자는 자신이 활동하던 사중주단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린다. 어느 날 레코드 가게에 그녀의 딸이 찾아온다. 남자는 그녀의 딸인 걸 알자 레코드 판을 무료로 선물해준다. 그들은 이렇게 한 번 더 재회한다. 일방적으로 서로를 지각하는 형식으로. 남자가 여자와 연애를 하며 약속했던 그 공연의 고별공연에 찾아온다.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 짓고 눈물짓는다.
새의 깃발처럼 머리가 하얗게 센 다음에 옛 애인을 만나고 싶다던 중년의 직장 상사를 그녀는 기억한다. 완전히 늙어서 한 올도 남김없이 머리털이 하얗게 세었을 때, 그때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데.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면 꼭 그때.
젊으므도 육체도 없이.
열망할 시간이 더 남지 않았을 때
만남 다음으로는 단 하나, 몸을 잃음으로써 완전해질 결별만 남아있을 때
한강, 『흰』, p.91
30년의 세월이 흘러 백발처럼 욕망의 원인과 결핍마저 결핍한 채 그들은 만났다. 그들은 처음으로 서로를 쳐다본 것이다. 영화는 끝나며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었던 백사장을 보여준다. 여자는 그 장면에서 묻는다. "같이 가자." 그렇지만 그러지 못했다. '어쩌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 순간의 선택은 달랐어도 영화의 엔딩이 달라졌을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들의 결론이 우리의 사랑의 서론이다.
관계의 고집
- 이민하
그들의 죽음이 태어난 날
재 주머니에서 폭죽을 털어 산파들은 떠나고
아랫배를 울리는 자명종 소리에
가위를 꺼내 나 혼자 배꼽을 지지는 텅 빈 거리
대가 탄 케이크에 수십 개의 내 열굴이 꽂히고
나프탈렌 같은 촛불이 켜졌다.
둘이서 촛불을 끄는 그들은 누가 뭐래도 연인.
목을 조르지 않고는 멈출 수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