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혼자 바다에 갈 수 있어요』중에서
육호수
살점 없는 십자가를 왜 바다에 던지나
먹다 만 빵을 바다에 던지면 새들이 뛰어들어 헤엄쳤다
부끄럼도 없이
아름답게
파도는 내가 버린 얼굴들이었으므로
나의 해변은 항상 모래성보다 먼저 폐허였다
알아들을 수 없는 농담처럼
내게 맞지 않는 신발들만 밀려왔다
썰물, 모래 위엔 두 마리의 물고기
젖은 이불을 덮어주면 끝없이 불어나며 파닥였다
집에 돌아와도 파닥파닥, 끝나지 않는 커튼콜
짠바람 먹은 베개 밑에 칼을 물고
어떤 아이도 배지 않는 이불을 덮었다
잠을 깨지 않는 얼굴들 일흔 명을 일곱 번씩
집에서 몰아냈다
일흔 번째, 일흔의 일흔 번째에도 파도가 왔다
그러다 내가 먼저 잠이 드는 날이면
모르는 사람 잠에서 깨어 해변에 나무를 심었다
잠든 내 머리를 벗기면
조용히 나무가 자라고
나무에 새긴 이름들
산무의 튼 살처럼 갈라질 때까지도
짝짝짝 끝나지 않는
커튼콜; 신이 떠날 때 우리에게 그림자라는 뿔이 돋아났다
나를 집어 바다에 던지면 검은 개들이 따라 뛰어들었다
용서도 없이
아름답게
바다 위 부표를 볼 때면 젖니가 흔들렸다
구름은 바다의 끝자리에서 뛰어내려 선분이 되었다
멀어지는 뒤통수처럼 하늘이 돌아눕고 있었다
커튼콜; 내가 살아난 이유를 오래 설명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글을 올린다.
그사이 쓰는 자의 행복보다는 읽는 사람의 즐거움 속에 살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글을 보면 언제나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 복잡함을 설명하는 일은 언제나 내 능력 밖이다. 그 사람이 가본 깊이까지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함부로 적지 않으려 한다. 평소 감사한 마음이 조심스러움 만큼이나 크기 때문이다. 문우라는 표현을 썼을 때 정말 감사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당신이 말했던 시인으로서 최초의 선언인 "내가 살아난 이유를 오래 설명하기로 했다"를 오래 들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