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는 날에는, 꽃이 지는 날에는 차마 아무도 시를 쓰지 못하는
이곳은 처음인데 꼭 돌아온 것 같습니다.
한동안 글을 안 쓰고 못 썼다. 한 시인이 이국에서 돌아가셔서 그랬다. 좋은 사람들은 왜 일찍 떠나는지 모르겠다. 위 글은 요즘 계속해서 포스팅하고 있는 육호수 시인의 『나는 혼자 바다에 갈 수 있어요』에서 1부를 마치는 시다. 처음에는 편안하게 넘겼던 시인데 다시 읽을수록 눈에 밟힌다. 그 편안함을 끌어내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글을 계속 쓰고 있었다. 말하긴 민망하지만 시를 어딘가에 냈다. 마감 시간까지 계속 고치고 고치고 고쳤다. 그 날만 시를 5개 정도 버렸던 것 같다. 그래서 첫 응모 소감이 어때?라고 물으니. 나는 지금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대답했다. 내 안에 있는 언어를 모조리 쏟아부었던 하루였다. 한 문단, 한 문장보다 한 글자 고치기가 더 힘들다. 만, 뿐, 고, 데와 같은 글자와 빼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붙잡으려 욕심을 내는 단어들.
그래서 이 시가 좋았다. 물어보니 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모티프로 쓴 시라고 답하셨다. 영혼의 무게를 재는 실험을 가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쓰면서 이미지 전개나 대화가 물 흐르듯이 이어지는 것도 좋지만 가장 좋은 점은 기교나 욕심이 무겁게 느껴지는 문장이 없다는 것이다. 부러워서 오래 바라 볼뿐이다. 냈던 시 하나를 포기하면서 올린다.
빨래는 빨래라고 부르는 바람에 날아가지 못하지
날아가지 못해서 매달려 있겠지
[불림]
엄마, 오늘도 엎어진 밥상 앞에서 깨진 밥그릇을 줍고 있어요? 나는 이제서야 그런 잊지 못할 명장면 후에는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꼭 닫아야 했던 걸 알아요. 많이 먹어야 키가 큰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엎어졌던 반찬이라도 먹어야 했어요. 그래도 숨을 죽이고 밥을 먹으면 자꾸 편식을 하는 것 같아 키가 자라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고요. 밤이 되고 나서야 인형에게 다시 눈을 붙일 수 있었어요. 동생들과 함께 누워서 야광별로 별자리를 그렸답니다. 그거 알아? 별자리 설화 중에 해피엔딩은 없대. 우린 별이 되겠다. 그런 말로도 위로가 되던 나날이었으니까요.
[세탁]
엄마 제발 나랑 손잡고 천국에 가자고 기도하지 말아요. 방파제를 볼 때마다 어린 시절 침대가 떠올라요. 구겨진 옷을 입은 아이가 방파제 끝에 위태롭게 서 있답니다. 어제 사실 오래전 일기를 펼쳐 봤어요. 2002년 12월 20일 맑음 재미있었습니다. 즐거웠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너무 일찍 배워버린 존댓말로 이렇게 일기를 채우고 나서는 주사위를 던졌어요. 일 밖에 없었던 주사위인 줄도 모르고 매일 밤 새로운 태몽을 꾸곤 했어요.
[탈수]
집을 나서기 전 아버지에게 인형을 보여드렸어요. 어느새 솜 대신에 유리조각이 가득해져 버린, 문 밖에선 나만 구겨진 옷을 입는다고 생각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금씩 구겨진 옷을 입고 있었어요. 오늘은 봉사활동을 다녀왔는데 집 밖이 집 안이 되어버린 다섯 천사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어요. 우리 보물 찾기를 하면서 잃어버린 집을 찾아보자. 약속을 해버렸어요. 새끼손가락을 마주 걸었어요. 상처가 상처를 알아보고 반갑게 껴안아 주었어요. 드디어 허공에 뛰어내리는 꿈을 꾸면 왜 튀어 오르며 잠에서 깨는지 알게 됐어요. 아직은 아니라는 메아리,
얼룩이 지워지며 번져가더라도
오늘은 빨래를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