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필사] 가정 - 조혜은

나는 몸통을 잃는다. 너의 사랑은 기형적이었고

by 변민욱
조혜은,『신부수첩』, 「가정」



시인의 말로 글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그녀는 위 시에서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묻는가. "어째서 너는 나를 괴롭히는 것을 정당하게 인정받게 된 걸까"라고. 이것은 오래된 질문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유효한 질문이다. 위 시집에서 그녀는 끈질기게 답을 찾아간다. 읽다가 내려놓기를 몇 번 반복했다. 거기까지는 가지 마시길. 가지 마시길.이라고 나도 모르게 생각하다가 생각을 훌쩍 뛰어넘은 내용에 가슴이 아팠다. 찢어질 것 같았다고 써도 무방하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타인의 고통이기에 과도한 표현을 억제할 뿐이다.


"너의 사랑은 기형적이었고"로 시작하는 위 시는 이 시집의 마지막 시였다. 최근 읽어본 시집 중에 가장 슬픈 결말이었다. 그 이유는 사실 엔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끝이라도 났으면 그래도 다행이었겠지만 끝이 아니다. 삶이기 때문이다. 예전까지는 이런 시를 보면 이렇게까지 써야 했을까라고 생각하면서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쓰기 시작하면서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 극단적인 표현이 기교가 아닌 새어 나올 수밖에 없는 삶도 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아직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의 고통이다. 우리의 몰이해로 인해 생소하거나 난해하다고 쉽사리 치부해서는 안 된다. 정제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도 있는 법이다. 또한 그 고통이 우리의 고통일 수도 있다. 그러한 고통 속으로 한 번 더 다녀와야 했던 작가에게 단순히 난해하다고 평가를 내리는 것은 그 고통에 대한 야만이다.


그러한 마음으로 시집을 읽었다. 그녀는 '나'와 '너'의 관계에 대해서 어떤 것이 사랑을 기형적으로 만들었는지 찾아간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타자인 것은 슬픈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유물이나 "즐거운 놀잇감"으로 삼으려는 행위는 명백한 폭력이 된다. '너'의 나르시시즘이 사랑을 학대한 것이다. 조혜은은 그래서 다음과 같이 적는다. "그런 너에게 결혼이란 참 합리적인 제도였다." '참'이라는 단어를 오래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우리에게 끔찍한 이미지일 수도 있는 시어를 전개하다가 내뱉은 "나는 너라는 단어가 끔찍했다"에서는 어느 정도의 끔찍함일지 짐작하기조차 어려웠다.


다양한 관계들이 시인을 죽인다. 그것도 사랑의 이름으로. "너의 부모는 자기 자식의 즐거운 놀잇감을 보내주지 않으려고 내 자식들의 목덜미를 잡았다. 너의 가족은 누구일까." 그렇기 때문에 관계는 끝나지 않는다. 관계는 둘 이상이 맺어지며 시작되기 때문에 끝도 혼자서는 맺을 수 없다. 더욱이 시인에게 관계는 둘이 아니라 셋이다. 그래서 시인은 "둘이 되기 위해 우리가 버릴 게 있을까. 깨끗이 하나가 될 순 없을까"(「이마」)라고 말을 한다.


'당신'이 용서를 비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시에서 끝은 "슬픔과 또 진심 어린 슬픔이 진지하게 뒤섞인 당신과 나라는 세계에는 이마라는 무늬가 있다. 용서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이다. 그래서 끝나지 않을뿐더러 끝내지도 못한다. 이마와 같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비극은 끝이 있지만 삶은 끝이 없다. 오래 기억하고자 시집의 마지막 구절로 글을 마친다.


그곳에서 너는 어떤 처벌도 사랑이란 말로 무마하며 결코 나와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리고나서 동아리방을 나서는데 여성학회 분들이 데이트 폭력에 대해 생각을 적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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