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아침달 낭독회 후기와 서윤후 시인의 『휴가저택』 20번

by 변민욱

어제, 위트앤시니컬에서 진행하는 낭독회에 다녀왔다. 생애 첫 낭독회였다. 잠시 애정을 담아 홍보를 해보자면, 위트앤시니컬은 『오늘 아침 단어』,『우리 곁에 잠시 신이었던』을 펴낸 유희경 시인이 운영하는 카페형 서점이다. 비문예창작과였던 나는 사실 시집으로만 시인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 곳에 가면 시인님이 안내부터 결제까지 친절하게 진행해주신다. 이곳에 가면 정말 시집과 시에 관련된 것들밖에 없어서 행복해진다. 또한 너무 예쁘게 전시가 되어 있어서 가끔 "여기서부터 여기까지요"라고 말하는 상상'만' 한다.


DhBel9EVAAAo0Uw.jpg 시집 아래 포스트잇에는 동료 시인들의 추천사가 적혀 있다.

어제를 꿈처럼 생각하는 오늘이다. 너무 행복했던 기억이라 글을 적으며 힘들 때마다 아껴서 꺼내보려고 한다. 눈 앞에서는 좋아하는 시인이 시를 읽어주고 옆자리에서는 숨소리도 조심히 하며 사람들이 시에 귀를 기울여주고 그 뒤에서는 존경하는 시인 분들이 한 명 한 명 청중으로 오셨다. 그래서 이런 노래 제목이 나왔나 보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같이 갔던 문우들에게도 말을 했지만 "여기 정말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시인이 다 모여있"었다. 한 분 한 분 찾아가서 염치없지만 사인을 부탁드렸다. 사실, 주변 사람들이 콘서트를 왜 가는지 잘 몰랐었는데 어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최근에 지인 분들이 요즘 어떤 시집이 좋냐고 물어보면 아침달 출판사에서 나온 시집들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아 한 단어가 빠졌다. 다 읽어보라고 권한다. 또한 등단작가와 미등단 작가의 구분을 없애려는 취지 역시 시집만큼이나 좋았다. 등단이라는 제도 자체를 나쁘게 보는 것은 아니다. 일정 부분 순기능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문단'이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통로는 더 많고 다양해져야 하지 않을까. 시 또한 여타 장르와 같이 깊어짐과 동시에 더 많은 독자를 끌어안아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KakaoTalk_20181019_112005090.jpg 화.. 화질이..


오늘 육호수 시인과 함께 낭독회를 진행했던 서윤후 시인의 『휴가 저택』에서 20번을 적어 보았다. 이 시집은 크게 장시 2편으로 이루어진 시집이다. 낭독회 중에 "왜 장시를 적으셨나요?"라는 질문이 나왔는데 서윤후 시인은 "이전 시집과 달리 화자가 죽음을 앞둔 노인이고, 그렇게 화자를 설정하고 적다 보니까 장시가 되었네요"라고 답을 했다. 나는 무언가 빼곡하게 채우려는 노력으로 보였다. 하나하나 말을 가다듬고 적당한 말이 아니라 꼭 맞아떨어지는 언어들로 삶은 거의 소진되어 가지만 역설적으로 언어는 충만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게 서윤후 시인은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각인되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빨리 끝나는 폭죽을 샀다"(「스무 살」 전문)는 문장이다. 한 문장으로 된 짧은 시이지만 여운은 길다. 이와 같은 여운을 이번 시집에서는 20번에서 찾았다.


나의 비문이 오랫동안 나의 다정함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장시가 쭉 이어지다가 한 페이지에 저 문장 하나밖에 없는 페이지가 나온다. 일부러 자르거나 편집을 거치지 않고 페이지 전체를 올려본다. 한 문장으로 인해서 오히려 여백이 시처럼 느껴진다. 문장은 짧았지만 아마 이 시집 중에서 가장 오래 거닐었던 페이지다. 아직 시인이 이 문장을 쓸 때까지의 깊이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해가 되면서 뇌리를 스칠 문장 같다는 예감이 든다.



한 자루의 펜과 한 가지의 비밀을 나누고 한 분의 진심 어린 응원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재치 있게 적어주신 육호수 시인의 서명을 난 아마 평생 무겁게 간직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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