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어깨가 나에게 기대 오는 밤이면 나는 모든 세상을 속일 수 있었다
허수경 시인님의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중에서
레몬은 시다. 얼마 전 돌아가신 허수경 시인의 시다. 현재 시를 적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허수경 시인의 시를 읽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가슴 아파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에게 당신이라는 여름은 너무 짧았던 것 같다. 올해 유독 더 많이 느끼지만, 좋은 분들이 다들 너무 일찍 떠나시는 것 같아 무섭다.
레몬은 시다.
좋은 시를 보면 '끝났다'라는 표현을 즐겨 쓰며 감탄한다. 이 시 속에서 나오는 '당신'을 만나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첫 문장을 오래 간직하게 될 것 같다. "당신의 눈 속에 가끔 달이 뜰 때도 있었다." 이것은 이미지다. 여백이 넓고 깊은 문장이다. 그래서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면 독자들은 이미 어떤 대상을 떠올리며 시 안으로 들어간다. 이제 우리는 이 시를 "사랑니 나던 청춘처럼 앓"게 될 것이다.
다음과 같은 장면이 있다. 허수경 시인의 특징적인 장면이다. 바로, 당신과 "파랑 같은 점심 식사를"하던 곳에서 누군가가 "그 점심에 우리의 불아한 미래를 예언"한 장면이다. 그 연에서의 이어지는 "우린 그냥 우리의 가슴이에요"와 같은 문장도 일품이지만 "예언은 개나 물어가라지"같은 문장은 그녀의 발화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시 곳곳에 이런 문장들은 "영영 돌아오지 않은 것처럼 그리고 곧 사라질 만큼 아름다웠다."
8연을 하루 종일 들여봤다. 비가 오는 날, 정말 하루 내내 벗어날 수 없었다. "저 여름이 손바닥처럼 구겨지며 몰락해갈 때"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 독자들은 깨닫는다. 누군가가 위에서 예언했듯 이들의 사랑은 행복보다 불우할 것이라고. 그러나 시가 형성되고 아찔해지는 지점은 바로 여기서다.
시인은 그런 장면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아리더라도 "이제 의심은 아무 소용이 없다"라고. 그리고 말을 잇는다. "당신의 어깨가 나에게 기대오는 밤이면 당신을 위해서라면 나는 모든 세상을 속일 수 있었다" 감상을 길게 늘여놓을 것 같아서 짧게 줄인다. 이 한 문장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우리는 사랑의 정의를 너무 멀리서 찾아왔다.
시인은 그 감정을 끝까지 이어간다. 이제 시점은 "새로 온 여름"이다. 생강을 해보니 "그 어깨를 안아준 적이 없었다." 얼마나 후회가 깊었던 걸까. 시인은 "후회한다"라는 감정에 한 행을 내어준다. 습작을 하다가 보통 이런 감정에 한 행을 다 내주면 작위적이거나 시인 혼자만 감정을 끌고 나간 느낌을 주게 된다.
그러나 이 시는 그런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 이미지로서 독자에게 이미 충분히 시에 들어올 여지를 남겨주었으며, 저마다의 사연 속에서 장면을 그리면서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세 번 읽을 때까지는 앞선 "나는 모든 세상을 속일 수 있었다"가 독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면, 이후에는 "후회한다"라는 짧은 한 문장이 놓아주지 않는다.
레몬은 시다.
신맛이 사랑과 잘 어울리는 맛인지 이 시를 보고 깨달았다. 레몬을 먹었을 때를 떠올린다. 처음 먹었을 때가 기억나면 더 좋겠다. 더 아리고 강렬했던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한 입 베어 문 그 순간 입 안에서는 신맛 이외에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처음의 단맛은 짧게 묻히고 신맛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눈물이 핑 돌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걸 알면서도 다시 레몬을 본 순간 입 안에서는 침이 고인다. 볼이 떨린다. 그래서 "당신의 눈, 그 깊은 모서리에서 자란 달에"서 레몬 냄새가 났을 때 볼은 무의식 적으로 떨렸다.
시인은 이제 시를 닫는다. 1연과 비슷한 구조의 마지막 연에서 "달이 뜬 당신의 눈 속을 걸어가고 싶을 때마다" 올빼미들이 사랑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당신 보고 싶다, "라는 편지를 띄우고 싶다고 이야기하며 시가 끝났다. 끝나지 않는다. 끝까지 읽어 내려간 후에, 다시 1연으로 돌아가서 읽어 내려오면 방금 읽었지만 낯선 구절들이 눈에 들어와 눈이 아리다.
한 달 정도 정도 글을 적지 못했다. 물론, 이곳에서다. 바깥에서는 열심히 시를 창작하고 있었다. 요즘은 더 이상 이미지도 문장도 오지 않는다. 그때 이 시를 다시 만났다. 조금은 무례하고 무리한 독법일 수도 있겠지만, 이 시를 시에게 쓴 시인의 편지처럼 읽어 보았다. 그때의 느낌을 슬펐다,라고 짧게 쓰고 오래 간직하려고 한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