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필사] 허수경 - 빙하기의 역

"언제 다시 만나?""꽃다발을 든 네 입술이 어떤 사랑에 정직해질 때면"

by 변민욱

"오랜 시간이 지나"서 우리는 만났다. 눈을 떠보니 이곳은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이다. 당신은 고개를 돌려 본다. 이곳에는 누가 있을까. 역 이름을 떠올린다. 맞다 여기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이지. 그래서 여기는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있을 뿐이다. 눈을 뜬 당신 앞에, 여러 사람이면서도 하나의 사람인 당신이 다가온다. 이내 당신과 당신이 대화를 한다.


처음 눈 앞에 보이는 사람은 할머니다. 처음 보는 할머니이지만 낯이 익다. 당신에게 묻는다. "어디에 있었어?" 대답을 하려는 순간 그녀가 사라진다. 대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떠나간다.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를 시선이 따라 걷다가 뒤에서 당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무심하게 살지 그랬니?" 당신은 무참해진다.


이 아주머니 역시 대답을 기대한 질문이 아니었다는 듯 등을 돌려 사라진다. 할머니가 떠나간 방향에서 아가씨가 나타난다. "연애를 세기말처럼 하기도 했어?" 당신은 누군가를 떠올린다. 후회한다. 당신은 그를 위해선 모든 세상을 속일 수 있었지만 정작 한 번도 안아주지 못했다. 역시 사라진다.


점점 지쳐가는 당신 뒤에서 익숙한 여자 아이가 묻는다. "파꽃처럼 아린 나비를 보러 시베리아로 간 적도 있었니?" 당신은 깨닫는다. 이 질문들이 가리키는 시간과 공간은 모두 불가능한 시간과 공간이다. 화자들 또한 모두 내 안에 있었던 사람들이자 "빙하기" 속에서 함께 얼어붙었던 사람들이다. 그 이전부터 함께 하던 사람들이다.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더니 귓가에 한 고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디 슬펐어?"


외면할 수가 없는 질문이어서, 당신은 다시 얼어붙는다. 당신은 답을 한다. "노래하던 것들이 떠났어." "그것들, 철새였거든 그 노래가 철새였거든" 그렇다. 노래하던 것들은 모두 일찍 떠났다. 누군가 부르는 걸까. 아니면 이맘때쯤 떠나야 했던 걸까. 당신의 질문을 뿌치치며 그들은 떠나기 위해 왔던 것처럼 떠났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당신은 심장이 아팠다. 쓰러진 것은 한밤 중이이었다. 엠뷸런스 한 대가 당신에게 다가온다.


실려간 병원에서는"낡은 뼈를 핥는"개의 눈과 마주치고 "병원이 있던 자리에는 죽은 사람보다 죽어가는 사람의 손을 붙들고 있던 손들이 더 많다"라고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당신은 아직 '어딘가 슬프지'않다. 정작 당신을 아프게 했던 질문은 스스로 떠올린 다음과 같은 생각이다. "왜 나는 너에게 아무 기별을 넣지 못했을까?"


인간은 언제나 기별의 기척일 뿐이라서, 누구에게든 누구를 위해서든. 당신은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말했듯이 현재에 살고 있는 당신이다. 과거로부터 만들어지고,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 당신은 현재라는 시간성 안에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당신은 알고 있다. "누구도 오지 않는 역"에서 너에게 기별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이곳은 "무언가, 언젠가, 있던 자리"다. 당신의 닿지도 못할 중얼거림을 다 들어준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만남의 순간은 있었다. "무언가, 언젠가 있었던 자리의" 얼음 위에서 당신은 "우리"라고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불렀던 사람을 떠올린다. 그렇다. 우리는 "언젠가, 있었던" 이 자리에서 한 때 오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처럼. 그러나 우리가 딛고 있던 얼음은 유빙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그러니까 얼어붙기 전에 떠내려 가고 없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어린 낙과처럼" "눈보라 속에서 믿을 수 없는" 악수를 나누었다.


우리는 "헤어지기 전"에 이미 "헤어졌다." 이 역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당신은 다시 무참해졌다. 고개를 숙일 때 당신 속의 신생아가 묻는다. "언제 다시 만나?" 한 노인이 대답을 한다. "꽃다발을 든 네 입술이 어떤 사랑에 정직해질 때면" 태아가 질문에 답을 한다. "잘 가" 그들이 떠났던 것은 당신이 숙인 고개를 들기도 전이었다.


깊게 들어가면, 너무나 설명적으로 쓸 것 같아서 이야기 형식을 차용해봤습니다. 부족한 걸 알지만 흥미로운 시도군요! 정도로 읽히고 싶습니다. 시를 전체적으로 보자면, 첫째로 무의식 속의 무수한 "내 속의 누군가"가 계속해서 등장을 합니다. 그들이 묻는 시간대는 나에게는 불가능한 시간과 장면들입니다. 시의 후반부로 갈수록 후자의 경향성은 짙어집니다.


이 시집의 해설의 제목 "저 오래된 시간을 무엇이라 부를까"에 불가능을 더하고 싶습니다. 시인이 노래하는 시간적 배경은 당신과 함께 했던 오래된 시간입니다. 즉, 대부분 불가능한 시간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남아있다면 우리는 우리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바로 '무의식' 속에서 입니다. 그 속에는 다양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살지 못한 시간 속의 할머니와 아주머니. 살았던 시간 속의 아가씨와 여자 아이. 그러나 고아에서 "나"는 확장됩니다. 즉 단순히 내 속의 다른 나뿐 만이 아니라 마주했던 혹은 만나야 했던 타자들로 "나"의 범위가 넓어집니다.

그래서 이후에 "눈보라 속에서 믿을 수 없는 악수를"한 행위도 이해가 갑니다. 표현에 주목해봤습니다. 시인은 여태껏 상황에 대해서도 "믿을 수 없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다가 이곳에서 사용합니다. 그것이 누군가와의 악수라면 굳이 "믿을 수 없는"이라고 표현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행위는 마치 윤동주 시인이 썼던 것처럼 "나와 마주 잡는 최초읭 악수"와 같은 행위입니다.

그러나 타자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모두를 껴안을 수 있게 되더라도 껴안을 수 없는 사람은 당신입니다. 마주하고 있는 당신입니다. 당신은 매정하면서도 아름다운 재회의 조건을 제시합니다. "꽃다발을 든 네 입술이 어떤 사랑에 정직해질 때면" 아름다우면서도 참혹한 문장입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설령, 내가 가장 진실한 존재였던 태아까지 이르더라도요. 애초에라는 표현을 시인은 그려내고자 했을까요. 그래서 태아는 대답을 합니다. "잘 가" 그렇게 다시 만나지 못할 사람과 헤어짐을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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