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홀로 당신을 불러 봅니다. "당신······" 한참을 주저하고 망설이다가 불러본 "당신"이라는 단어가 참 좋은 단어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당신. 킥킥거리면서 부른다.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를 지나왔다. 그때 나는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연"다는 이치를 깨달았다.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서 한번 더 불러 봅니다. 그만큼의 무게감을 더해서 불러 봅니다. "당신······"이라고요.
눈 앞에는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이 보입니다.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보니, 밟혔던 풀이 시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시 태어났던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런 자연의 풍경 속에 당신을 담아서 부릅니다. "당신······" 다시 한 번 킥킥거리면서 웃어봅니다. 당신이라는 단어를 견딜 수 있을 때까지 웃어봅니다.
지나온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자기 자신을 비빌 때 당신을 불러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당신이라는 사람은 나에게 매일의 달과 별 같았습니다. 그때마다 불렀을 것입니다.
"당신······"이라고요. 그런 저 앞에서 당신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이었으며, 그런 당신에게 나는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병"을 차고 병차처럼 기대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라는 병을 다스리(치병)는 것과 환상을 다스리는 것(환후)은 너무나 다른 일임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라는 병은 앓고 있으면서도 낫지 않고 싶았고 언제나 올 사람처럼 올 듯하다가 언제든 떠날 사람처럼 떠나버렸습니다. 그래요. 당신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당신에게 기댔습니다. 그런 당신은 이제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리지도 못하고 무르지도 못합니다. 그렇게 참혹하게도 "이쁜 당신······"그 시간을 담아서 불러봤습니다.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렇게 홀로 당신을 불렀습니다.
킥킥이라는 소리에 며칠 동안 집중을 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위의 시 속에서 킥킥은 세상 각기 다른 웃음을 모아 놓았다. 세월과 당신에 씁쓸하며 짓는 웃음과 그 시간 동안 머물었던 당신과 나에 대해 웃어버린다.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참혹"인 당신을 향해서도 웃어버리고 그런 당신에 대해서도 그냥 웃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웃음은 단순한 'ㅋㅋ'이나 킥킥과 같은 웃음이 아니다. 조소와 냉소를 초월한 사람의 웃음이다. 그래서 빈 공간이 생긴다. 시인의 웃음과 웃음 사이에, 당신과 당신을 부르는 사이에 공간이 생긴다. 독자의 공간이다. 시에 의해서 독자는 그곳으로 이끌려간다. 당신의 웃음을 약간 엿보고 나온다. 알 수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가장 정직한 사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