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설 잇기]
난 엄마가 늘 베푼 사랑이 어색해

한강의「작별」 & 혁오의 「Tomboy」

by 변민욱

난처한 일이 그녀에게 생겼다. 벤치에 앉아 깜박 잠들었다가 깨어나는데, 그녀의 몸이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 (p.13)




난 엄마가 늘 베푼 사랑에 어색해
그래서 그런 건가 늘 어렵다니까
잃기 두려웠던 욕심 속에도
작은 예쁨이 있지

난 지금 행복해 그래서 불안해
폭풍 전 바다는 늘 고요하니까
불이 붙어 빨리 타면 안 되잖아
나는 사랑을 응원해

젊은 우리,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
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 꺼져가는데

슬픈 어른은 늘 뒷걸음만 치고
미운 스물을 넘긴 넌 지루해 보여
불이 붙어 빨리 타면 안 되니까
우리 사랑을 응원해

젊은 우리,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
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 꺼져가는데

그래 그때 나는 잘 몰랐었어
우린 다른 점만 닮았고
철이 들어 먼저 떨어져 버린
너와 이젠 나도 닮았네

젊은 우리,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
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 꺼져가는데




1. 난 엄마가 늘 베푼 사랑에 어색해

-어긋남에 대해


눈사람이 되어버린 그녀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다. "그녀는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세 살에 결혼해 이듬해 아이를 낳았고, 올해 중학교를 졸업하는 그 아들을 그녀는 십 년째 혼자 키워"오고 있다. 혼자 아이를 키우려다 보니 그녀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일을 해야 했으며,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턱 없이 모자랐다. 그녀 마음 깊숙이 "그건 그녀의 삶에서 가장 무겁게 지속된 결핍과 죄책감이었다." 하지만 또 막상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늘리자 아이는 불편해한다. 삶의 순간은 이렇게 늘 빗겨나가고 사랑의 순간은 늘 어긋나고야 만다. 어느새 자란 아이는 어느 날 엄마에게 어른처럼 말을 꺼낸다.


"엄마가 집에 오래 있으니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데, 사실 엄마는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잖아. 아무래도 나는 혼자 있어야 강해지는 성격인 것 같아"(p.56) 엄마의 사랑 속에서 자란 아들은 자라며 엄마에게서 벗어나려 한다. 아이는 서서히 깨닫는다. 엄마는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다. 나에게 엄마는 강한 사람일지도 모르나 사회 속에서 아이를 홀로 키우는 엄마는 강한 존재가 아니다. 또한 그 세상 속에서 결국 언젠가 나도 혼자 살아 나가야 한다. 결국 나를 키운 어머니의 사랑이 아이에게 무한하다고 하더라도 시간 앞에서는 유한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사랑은 시간 속에서 '무한과 유한' 그리고 '삶과 죽음'이라는 양면적인 모습을 동시에 지니며 그 속에서 자꾸만 어긋난다.


엄마에게 아들은 어느덧 성인처럼 보이는 고등학생이 되었어도 아이일 뿐이다. 아이가 자란 것을 부인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아이가 사랑스러웠던 어느 한순간을 절대로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침 빛에 저절로 떠진 그녀의 눈이, 미리 깨어 있던 아기의 검은 눈과 마주쳤었다. 왜 그랬는지 그날따라 아이는 보채지 않은 채 그녀가 눈을 뜨길 기다리며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둘의 눈이 마주친 순간 아기가 소리 없이 웃었다. 그렇게 절대적인 믿음이 담긴 웃음을 그녀는 그날 처음 보았다. 흔히 말하는 절대적인 사랑은 모성애가 아니라 아기가 엄마에게 품은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신의 사랑이 있다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p.41)


니체가 했던"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그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와 같은 말을 모성애에 대입하면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다음과 같이 바꿔보면 어떨까.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랑 속에서 스스로 아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그 마음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마음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오랫동안 우리의 '모성애'를 위주로 생각을 해왔다. (물론, 그릇된 프레임 속에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작가는 그 사랑을 역으로 바라본다. 역설적으로 어머니가 아이에게 느끼는 절대적인 사랑은 사실 상대적이며, 아이가 부모를 바라보며 주었던 절대적인 사랑을 오래 들여다본 결과가 아닐까. 비극적이게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안다. 아이를 버리는 부모는 있을 수 있어도 부모를 버리는 아이는 없다. 소설 속 그녀는 아이에게서 절대적인 사랑을 배운다. 그리고 엄마는 이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하지만 아이는 결코 이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2. 잃기 두려웠던 욕심 속에도 작은 예쁨이 있지

-교점


어긋남이 잠깐 동안 일치하는 순간은 소멸과 생성의 교점에서다. 눈사람이 되어버린 후 아이와 엄마가 끝말잇기를 한다. 왼쪽 늑골 바로 아래가 "바깥에서 다시 얼어붙어준다면, 어쩌면 이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면서. 이 장면은 크게 두 가지 함의를 담고 있다.


첫째로는 엄마와 아들 사이 사랑의 속성에 관해서다. 끝말잇기는 한 사람이 던진 말의 끝을 뒤에 사람이 이어서 말을 한다. 주고받는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이어받는 사람(아들)의 단어는 앞사람(엄마)의 끝(소멸)에 기인하며 또한 이어받는 사람(아들)의 끝은 앞선 사람(엄마)에게 다시 영향을 미친다. 이런 영향은 중첩되며, 맞물리며 이어진다. 또한 이 게임의 끝은 앞사람의 끝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다.


둘째는 회상의 효과다. 엄마가 끝말잇기에서 말했던 단어들에도 주목해보자. "복덩이" "심장" "울보" "달걀"이다. 아이는 "행복" "이야기꾼" "장사꾼""겨울""보름달"이다. 엄마에게 아들은 당연히 "복덩이"였으며 지금 녹아내리고 있는 왼쪽 늑골에 있는 "심장"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낳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신기하고 또 나만큼이나 위태로운 "달걀"같았을 것이며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 아이와 나는 관계 속에서 영원히 "울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우는 가운데서도 아이는 줄곧 엄마와 "행복"하기를 원했다. 어렸을 적 일을 마치고 돌아와 하루의 일과를 이야기해주고 응석을 부리는 아이를 재우기 위해 해준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에게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이야기꾼"이 되었다가도 아침이 되면 돈을 벌러 나가는 "장사꾼"이 될 수밖에 없었으며 이번 "겨울" 그녀의 사랑은 결국 "보름달"이 되어 이후에는 이제 익어갈수록 점점 그 자신을 잃어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소멸할 것이다.


끝말잇기가 끝나고 "그녀의 눈시울 아래 파인 자국을 아이가 집게손가락으로 문질러 지웠다." 이어서 엄마가 유언장 이야기를 하자마자 아이는 그녀의 말을 끊으며 "그런 이야기 나한테 하지 마"라고 한다. 미처 이야기를 하지 못한 유언장의 끝에서 "언제나 어둠보다 빛을 택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해." 엄마는 아이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다.* 조금 이전으로 돌아가자. 아이는 아직 헤어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이 아직은 영원이다. 그래서 아이는 엄마에게 "경찰에 신고할까" "병원에 가면 어때" "냉동고 같은 곳에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와 같은 이야기를 한다. (p.34-35)


엄마는 "아이가 다섯 살 무렵 처음으로 만들었던 눈사람"을 떠올린다. 아이가 바란대로 그녀는 냉동실에 눈사람을 놓아두고 "아이가 만든 첫 눈사람과 다음 겨울까지 함께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눈사람은 점차 소멸해간다. "하루가 지나자 크기가 3분의 2로 줄었으며, 마침내는 푸석푸석 주저앉아 원래의 형상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p.35) 공기가 서서히 빠지기 때문에 아무리 차갑게 하더라도 눈사람을, 아이가 처음으로 만든 눈사람을 영원히 보존하지는 못한다. 생성이 자연의 원리에 따른 것이었다면 소멸도 역시 자연의 순리를 따른다. 인간과 기술은 이에 불가항적이다. 특히 생성과 소멸에 관해서는 말이다.


아이가 말했던 것처럼 아이는 엄마가 소멸해야만 오롯이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사실은 때때로 받아들이기 힘들고 잔혹하다. 이 잔혹함이 너무도 커서 사랑하는 사람이 소멸해갈 때 우리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처럼 절박해진다. 그러나 절박함을 통해서 두 사랑은 잠시 만날 수 있다. 이것은 또 다른 비극일까. 아니면 잠시 순간의 희극일까. 엄마를 늘 불편해하던 아이는 "언제 다시 올 건데"라고 물어보고 엄마는 "이제 들어가"라고 말하면서도 "무심결에 아이의 손을 쥐고 있었다." 그들은 소멸의 순간에서야 잠시 서로의 사랑을 마주 볼 수 있게 된다. 이제 그녀는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을 '현수'를 만나러 간다.






색다르게 비평을 적어보고 싶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있습니다. 이번 주는 소설 작품은 한강 작가님의 『작별』(「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중에서)과 혁오 밴드의 노래『TOMBOY』를 이어보려고 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