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처럼 과제에 치여 도서관에서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다 잠시 쉬러 카페에 앉아 있는데 어떤 친구가 말을 걸어왔다.
"Are you from Korea?"
돌이켜 생각해보자면 아마 내가 보고 있던 소설을 보고 이야기를 건넸던 것 같다. 책은 가끔 들고만 있어도 인연을 만들어준다. 나는 "Saya orang dari Korea"라고 바하사로 답을 하니 반가운 표정으로 "아 진짜?"라고 말을 하며 한국인이 이곳의 언어(바하사)를 공부하는 게 신기하다고 말을 한다. 수업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 한국어를 배웠냐고 하고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어를 공부했다고 '한국어'로 이야기했다. 비록 반은 반말 반은 존댓말이 섞인 말이었지만 우리는 블랙핑크를 필두로 케이팝과 한국의 드라마에 대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근데 한국에서는 노래방 갔을 때 케이팝보다 트로트를 더 많이 불러?"
"둘 다 많이 불러 근데 트로트는 어떻게 알아?"
"한국 드라마 보면 맨날 노래방 가서 트로트를 부르던데?"
"아니야 아니야. 그건 드라마라서 그런 거고 실제로 친구들 끼리가면 트로트도 분위기 살리기 위해서 부르기도 하지만 케이팝도 많이 불러"
그렇게 만난 친구 알리야는 인도네시아에서 자신이 전공하려고 하는 생물학이 더 유명한 이곳으로 유학을 왔다고 했다. 나도 모르는 한국의 드라마를 불쑥불쑥 아냐고 물어보며 경복궁을 거쳐서 다음에 한국에 올 계획까지 그렇게 서서히 한국에 대한 이야기 소재가 떨어지려는 찰나 자기가 바하사 공부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마침 수업 중에 발표를 해야 하는 스크립트가 있어서 부탁을 했다. 그녀는 빨간펜을 하나 들고 이것저것 고쳐가면서 "이게 더 어울리는 표현이야"라고 말해주며 이곳의 쉬운 소설까지 추천해주었다.
서서히 수업 시간이 되어 다음에 만나자는 인사를 건네는데 대뜸 들려온 말을 듣곤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 소주 마시러 갈래?"
"소주?"
"응. 소주 저기 안트라방사라는 곳에 소주를 팔거든"
"응응? 너 무슬림 아니야?"
"쉿. 나도 무슬림은 맞는데. 근데 그렇게 철저(strict)한 편은 아니야"
"어... 근데 내가 술을 못 해서 대신 카페에 가자"
"그래"
그렇게 순식간에 약속이 잡혔다. 알리야와 카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깜짝깜짝 놀랄 때마다 내가 생각보다 많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조심스럽게 이어간 이야기이지만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무슬림들도 다양하며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보수적인 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점도 있고 믿음의 방식도 다양하다는 것. 자신들도 그렇게 맹목적이지 않으며 극단주의적인 단체들에 대해서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 그렇게 무거운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알리야가 고민이 있다며 물어왔다.
"민욱, 근데 너 장거리 연애해본 적 있어?"
"군대에 있을 때 정도?"
"에이 그 정도는 롱디도 아니지!"
그녀는 손을 내저으며 지난 학기에 교환학생으로 왔던 독일 친구와 연애를 하고 있는데 요즘 자꾸 연락도 안 되고 신경 쓰인다고 했다. 독일 친구랑?이라고 깜짝 놀랄 새도 없이 그래도 아직 자기는 남자 친구를 많이 사랑하고 올해에 독일에 갈 비행기 표도 이미 끊어놨다는 것까지 인도네시아와 독일 '그래 이 정도는 돼야 장거리 연애지.' 스스로 생각하며 그 날은 나의 고민을 털어놓기보다는 혹은 섣부른 조언을 하기보다는 그녀의 사랑을 마음 다해 응원해주었다. 장거리 연애가 물론 멀어서 힘든 점도 있지만 또 가깝다고 그렇게 사랑이 쉽지는 않다는 말을 건네며. 그녀에게 한국 시집을 추천해주며 우리는 짧았던 우리의 연애사를 돌아보며 사랑은 국적, 종교, 인종을 모두 떠나서 어렵고 힘들지만 또 그만큼 행복하며 아름답다는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