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요. 사람마다 듣는 수업마다 다르지만 내게는 "Absolutely not"이다. 이곳에서는 과제가 거의 매주 있다. 그리고 시험보다 과제에 성적 가중치를 더 많이 두는 교수님들도 많다. 특히 그 과제 중 대다수가 한국에서 악명 높은 '팀플'이지만 교환학생인 나로서는 신기하고 재밌는 체험들이다. (뒤돌아보자면) 그중 기억에 남는 과제는 영문학 수업 과제 중 하나인 햄릿 촬영이다. 교수님께서 과제를 발표하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이 남는다.
햄릿을 촬영하되 "Not just follow the orignal one..." 문제는 햄릿의 극본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게 아니라 플롯은 유지하면서 현대판으로 각색하는 것이 과제였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인 만큼 조별로 창의적으로 찍어서 제출하라고 하셨다. 이곳 수업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학생들이 교수님의 말에 즉시 자연스럽게 반응을 하는 것인데 강의실에서 "Wow~"와 한숨 소리가 번갈아 울렸다. 교수님은 이에 더해 "Around 45 minutes"이라고 결정타를 날리셨다. 그리고 대강의 플롯을 오늘 수업 내로 제출하면 피드백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우리 조는 물론 다른 조들도 회의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수업은 이렇게 보통 학생들에 의해서 이뤄진다. 3학점인 수업도 3+1(예를 들면 화요일에 3시간을 듣고 목요일에 1시간을 더!!)로 되어 있어 세 시간 중 두 시간 정도는 교수님이 수업을 하신다. 그러다 마지막 시간이 되면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조별로 과제를 주면 수업 시간에 대강의 논의와 틀을 구성해서 교수님에게 확인을 받는다. 이후에 조별로 만나서 교수님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좀 더 발전시키고 발표자료를 만들어서 다른 요일의 한 시간을 이용해 발표하는 방식이다.
한국에서 온 나로서는 위의 사진과 같은 교실 전경(?)을 바라보자면 공항에 온 기분이다. 또한 조별로 at least one international student(적어도 한 명의 교환학생)를(을) 포함해야 하므로 재밌고 많은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다. 한국의 친구들이 물어봤는데 소통은 다 영어로 하지 않나고? 아니다. 정말 다양한 언어가 들린다. 적당히 시간만 보내지 않나고? 그러기에는 교수님의 피드백을 받은 것과 받지 못한 것의 편차가 커서 그럴 수 없다.
2. 한국 드라마가 쏘아 올린 작은 공
파이라는 친구가 내게 물어봤다. 이거 한국 막장 드라마 내부에 재벌 승계 이야기로 각색해서 찍으면 재밌겠다. 약간 막장 드라마처럼. 그가 '아내의 유혹'을 말하자 다른 친구들도 "어 나도 그거 봤어" 그렇게 또다시 내가 모르는 드라마 제목이 오가고 나는 어느새 각본 감독이 되어 있었다. "민욱, 네가 좀 더 Creativity를 추가해 줘. 한국에서 왔으니까 잘 알 거 아니야" 한국이 언제부터 드라마의 나라가 되었는지 그리고 언제부터 한국인에서 왔으면 다 각본을 잘 짤 거라고 생각하게 됐는지...
무거운 책임감을 떠안고서 대강의 플롯을 교수님께 말씀드리고(교수님도 한국 드라마 애청자셨다) 나는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각본을 썼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래도 예전에 문학회에서 희극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영어로 써야 했다. 그래도 친구들이 구글 닥스를 통해 바로바로 고치고 의견을 내줘서 별 탈 없이 해낼 수 있었다. 교수님의 반응도 기시감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괜찮다고 했다. 이제 영문학계의 거의 바이블인 햄릿을 45분의 한국 드라마화시키는 일만 남았다.
우리는 햄릿 부친의 장례식 장면부터 시작했는데 시작부터 어려웠고 재미있었다. 일단 나를 제외하고는 다 무슬림 친구들이다. 제사 방식을 기독교 방식으로 해야 하나 이슬람 방식으로 해야 하나부터 장소 섭외까지. 순탄치 않은 시작이었다. 그래도 차근차근 컷을 나눠서 촬영을 진행해나갔다.
어렵게 고른 첫 촬영 장소. 다들 우는 연기를 해야 하는 데 웃고 있었다.
왼쪽: 구속되는 클로디어스와 이를 찍는 촬영 감독님 // 오른쪽: 오필리아의 극단적 선택과 후회하는 햄릿
촬영은 사흘 정도 걸렸다. 모두 각자 촬영 감독, 각본 감독, 연출 감독 등 역할이면서 동시에 극 중 인물도 맡아서 촬영을 진행했다. 끝나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다르게 풍부했다. 친구들이 말하길 이곳의 드라마도 한국의 영향을 받았는지 굉장히 자극적인 게 많다고 한다. 우리가 찍은 햄릿은 약한 편이라고. 아니야. 한국 드라마 다 그렇지 않아. 몇 번이고 나는 거듭해서 이야기해야 했다. 다르게 같게 같지만 또 다르게. 그렇게 친구들과 나는 어느새 그렇게 우리(Kami)가 되어 있었고 그래서 우리(Kita)가 되어 있었다*. 한국에서의 늘 무겁고 가끔 포근한 우리라는 단어가 파도를 머금은 밤공기와 함께 정답게 들려왔다. 그리고 한국에서 글을 나누며 포근했던 우리를 떠올리며 잠시 향수에 잠겼다.
*(마인어에서 Kami와 Kita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우리(we)'이지만 뉘양스가 조금 다르다. 전자는 청자나 제 3자를 포함하지 않는 단어라면 후자는 포함하는 개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