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낭의 USM에는 정말 다양한 나라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친구들이 많다. 지금 핸드폰을 꺼내서 연락처에 저장된 친구 중에서 "나중에 우리나라에 꼭 와!"라고 인사를 나눴던 친구들만 떠올려 보더라도 약속을 지키려면 세계일주를 각오해야 할 정도. 그래서인지 학교에서는 교환학생과 로컬 친구들이 함께 진행할 수 있는 다양한 교류 활동이 진행된다. 그중 가장 좋았던 한 가지를 꼽자면 바로 '커피 아워(Coffee Hour)'였다
8주간의 수업이 끝나갈 무렵 저녁을 먹으며 우리를 도와주었던 버디에게 왜 이름이 '커피 아워'가 되었는지 물었다. 하지만 그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나도 잘 모르겠다"였다. 누군가 정한 수업의 이름이 뭐가 중요할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왜 그 이름이 붙게 되었는가 보다는 내가 스스로 내린 정의 아닐까. 수업을 들었던 친구들마다 이 수업 이름의 의미가 커피의 종류와 의미만큼이나 다양하겠지만 내게 커피 아워는 커피를 마시며 쉴 수 있는 짧은 시간(1시간 정도) 동안 세계 각지에서 온 친구들과 문화를 함께 향유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곳에 교환학생을 온 지 한 달 정도 됐을까. What app(카카오톡과 유사한 애플리케이션) 그룹에 커피 아워 선생님을 모집하는 공고가 올라왔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지원을 했다. 선생님을 모집하는 공고에 지원을 마치고 창을 닫고 나자 걱정이 밀려왔다. 처음에는 '이미 한국을 많이 알고 있는 친구들도 있는데 교수도 아닌 친구가 가르치는 수업에 신청을 해줄까'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수업 신청 전 설명회가 열렸는데 끝나고 이어진 신청에서 스무 명이 넘는 친구들이 수업에 신청을 해주었다. '안녕'이라는 서툴지만 반가운 인사를 건네주거나 한국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보여주며. 한 개의 걱정이 자리를 떠나나 했더니 다른 친구를 데려왔다. 마치 수업을 신청하려고 줄을 서있던 친구들처럼. 그 줄을 보니 부담감이 밀려왔다. 이런 게 개강하기 전에 대학교의 강사님들의 걱정일까. 문학을 가르쳐주셨던 교수님은 학생이 많아도 걱정, 적어도 걱정이라고 했다. 전자는 수업의 전달과 부담감 때문이라면 후자는 폐강에 대해 걱정을 해야 하기 때문. 그래서 부족한 설명을 듣고도 신청을 해주는 많은 친구들이 고맙기도 했지만 수업 준비를 생각하니 부담감이 고마움을 앞섰다.
평소에 글을 쓰는 삶에서 배운 것은 진부하고 단순하지만 명쾌한 교훈이었다. 부담은 부단한 노력을 통해서 이겨내야 하며 이렇게 부담을 극복해서 적은 글과 느끼며 적은 글은 같은 소재 같은 구성 이어도 판이하게 다르게 독자에게 다가간다는 점.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겨내지 못한 부담은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이된다. 그래서 각각의 수업을 준비하기 앞서서 8주에 걸친 수업 전반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한 시간 동안 무엇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언어를 가르쳐주는 데는 한계가 많았다. 그래서 어떤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친구들의 궁금증에 맞춰서 준비하기로 했다.
친구들이 궁금했던 것은 블랙핑크, 엑소나 경복궁 같은 유명한 연예인이나 장소가 아니었다. 매체에서 접할 수 있는 그러한 한국의 모습보다는 오히려 실제 한국의 대학생들, 즉 또래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는지를 궁금해했다. 친구들과 어디서 어떻게 놀까. 논 뒤에는 무엇을 먹을까. 어떤 친구는 사투리를 쓰면서 실제로도 사투리를 쓰는지와 같은 궁금증이었다. 그렇게 평범하면서도 같은 세대가 공유할 수 있는 감정들과 문화를 궁금해했고 나 또한 그랬다. 그래서 그랬을까 8주 동안의 수업 중에서도 친구들이 가장 좋았다고 꼽은 강의도 바로 한국 대학교의 축제 문화에 대한 강의였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학교 주변 한국 식당에서 마지막으로 저녁을 함께 먹으며 나는 여행에 아울러 어떤 지역에 대해서 공부한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아니 배움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비록 학교에서는 정치, 경제, 언어, 사회를 학문으로 배우지만 우리가 실제로 만나는 사람들은 책 속의 사람들이 아니라 이런 친구들과 사람들이다. 학교의 도서관을 수놓은 양서들을 바라보며 '이 책들을 다 못 보고 졸업하면 얼마나 아까울까'라고 생각하며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던 날들이 배움의 정의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수업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생각을 나누던 기억들을 그 배움 위로 조심스레 포개어 본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것은 이런 게 아닐까라고 조심스럽게 새겨 넣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