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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민욱 Dec 19. 2020

{Li:Fe}오버워치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현실을 살아가는 피터팬을 위한 변론

현실을 살아가는 마지막 피터팬을 위한 변론

현실을 살아가는 마지막 피터팬을 향한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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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시절 프로 게이머가 되겠다고 할 정도로 게임을 좋아했고 여전히 좋아한다. 하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 지금은 게임보다는 게임의 스토리를 더 좋아한다. 유난히 스토리 면에서 좋아했던 게임이 있었다. 바로 '오버워치'이다. FPS(1인칭 슈팅 게임) 방식이지만 기존의 게임들과 달리 잔인한 장면이 없었다. 또한 세계정의를 목표로 하는 전 세계적 조직인 '오버위치'를 구성하는 영웅들 역시 다양하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 오버워치의 조직에 속한 트레이서와 책 소개를 함께해보려 한다. 

저기, 내 애길 들려줄까?

바로 몇 년 전 일인데 말이야, 오버워치에서 잘 나가는 조종사를 찾고 있었어.차세대 순간 이동 전투기 '슬립 스트림'을 시험하려고! 레나 옥스턴, 호출명 "트레이서"! 하하핫, 바로 이 몸이 뽑혔지!정말 평생 꿈꾸던 기회였다고! 하지만 첫 비행에서 순간 이동 매트릭스가 고장나는 바람에 난 사라졌어. 

몇 달 동안이나! 아무도 내가 어디로, 아니 언제로 간 건지 몰랐어. 오버워치에 발견되었을 때 난 완전 유령이었다? 의사들은 내 상태를 '시간분리증'이라고 불렀어.내 몸은 깜빡깜빡하면서 몇 시간, 혹은 며칠씩 사라지곤 했지. 모습이 나타나도 아무것도 만질 수 없었어.

하지만 내 친구 윈스턴은 포기하지 않았어! 밤낮없이 연구해서, 결국! 날 현재에 묶는 무슨 시간 장치를 개발해줬다고! 난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어. 아니, 오히려 더 좋아졌지! 내 시간을 마음대로 조종해서 빨리 가게, 혹은 느리게 가게 할 수 있게 됐거든! 조종사 생활은 끝났지만 오버워치 요원으로 다시 태어난 거야!
(출처: Over watch Tracer Origin Story)

    

    그는 시간을 넘나드는 활기찬 모험가이다. 레나 옥스턴(호출명: "트레이서")은 오버워치의 실험 비행 프로그램에 투입된 가장 어린 참가자였다. 유려한 비행 기술로 명성을 떨친 그는 순간 이동 전투기의 프로토타입의 참가자로 선발된다. 하지만 첫 비행에서 전투기는 순간 이동 매트릭스의 오작동에 의해 사라진다. 사망한 그가 돌아왔다. 그러나 이 비극은 그를 송두리째 바뀌어버린다. 그의 분자구조가 시간의 흐름 속에 있지 못해 과거 혹은 미래로 며칠간 사라진다. 그러나 윈스턴이라는 과학자가 시간 가속기를 발명하여 그가 현재에 존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이제 시간을 조종해 마음대로 속도를 높이거나 줄일 수도 있게 되었다! 그렇게 그는 오버워치의 핵심 요원으로 성장한다. 일부 요원들은 산만하고 가볍다고 이야기하는 그이지만 다시 유쾌하고 긍정적으로 돌아온 그녀는 이제 이야기한다. "우리는 결의야(We are Determination!)"


오버워치 초기 창립 멤버 (출처: 오버워치 시네마틱 트레일러, Blizzard Entertainment)


1.아직 기회가 있을지 몰라. 앞일은 아무도 모르잖아? 

   

    "안녕, 친구들! 해결사가 왔어!"를 인사로 건넸던 그였으나 범죄조직을 해치우기 위해 세계 각지를 갈 때마다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그러한 분위기의 미세한 온도 차로 인해 그에게는 의문이 맺혔다. 언젠가 자주 출동하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며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왜 범죄, 테러, 부패, 가난은 특정 지역에서 계속 반복될까?' 어렸을 때 배웠던 역사를 떠올리며 연관성을 생각해봤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시공간을 초월하며 여러 모습을 보았다고 평소와 다르게 무게감을 잡으며 이야기한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건넨 책의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대런 에스모글루, 제임스 A. 로빈슨 저, 장경덕 감수, 시공사, 2012) 그의 책은 머리말부터 다소 도발적인 제목으로 시작했다.

왜 이집트는 미국보다 가난할까? 
(중략)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시간이 흐르면서 왜 이런 패턴이 되풀이되며, 1688년 잉글랜드의 명예혁명과 1789년 프랑스혁명처럼 왜 이따금 그 항로가 바뀌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오늘날 이집트의 상황이 과연 바뀌었는지, 도 무바라크 정권을 무너뜨린 혁명이 이집트 보통 사람에게 번영을 가져다줄 수 있는 새로운 제도적 기틀로 이어질 지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중략) 가난한 사회가 부유해지련 이런 근본적인 정치적 환골탈태가 필요하다. (P.22-23)

     그는 국가의 번영과 국가의 성장을 위해서는 정치적 환골탈태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한 나라의 빈부격차를 결정하는 데 경제 제도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그 나라가 어떤 경제 제도를 갖게 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와 경제 제도다. 정치 및 경제 제도의 상호 작용이 한 나라의 빈부를 결정한다는 것이 우리가 제시하는 세계 불평등 이론의 골자다"(p.27) 거다른 점이 느껴지지 않는 미국과 멕시코의 접경 지역 그러나 국경으로 경계로 발생한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미국에서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넘어가는 순간 그곳 주민의 평균 가계 수입은 3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으며 멕시코 지역의 주민들은 고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트레이서는 자신이 정의를 추구하는 혁명가라고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지역의 범죄조직을 소탕하면 지역과 국가는 점점 진보해나가리라 생각했다. 아니, 더욱 정확하게는 의심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자신이 소탕하는 범죄조직을 양산하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존재했고 이를 지지해주는 공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는 깨닫는다. 이러한 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공장과 톱니바퀴의 기원을 찾아 나서야 했다. 그리고 결정적 분기점을 찾아냈다. 초기 식민지 시대에 각기 사회에서 비롯된 제도적 차이가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초기에 에스파냐는 원주민의 삶을 연명 가능한 최저 생계 수준까지 끌어내리고 그 잉여분은 모조리 에스파냐가 수탈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의 땅을 몰수하고 강제 노역을 시키면서도 최저임금만을 지급하며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자발적으로 사지 않은 물품에 대해서도 고가의 가격을 매기는 방법으로 수탈을 자행했다."(p.43) 그렇게 '착취적 경제제도'가 초기 라틴아메리카에 뿌리내렸다. 그러나 미국에 발을 디딘 영국은 이곳이 라틴아케리카 지역과 다름을 깨달았다. 초기에 정착한 그곳에는 금도 심지어 먹을 것조차 풍족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초기에 미국에 뿌리내린  '포용적 경제제도'는 그들에게 '포용적'이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생존법이었다. 그러나 그 차이는 이후에 어마어마한 격차로 이어졌다.


     각국이 독립한 이후에도 뿌리가 내렸던 제도는 계속해서 영향을 미쳤다. 멕시코보다 미국의 은행업이 경제 번영을 촉진하기에 대단히 유리했던 이유는 은행을 소유한 이들의 동기가 달랐기 때문이다. 미국은 우선 훨씬 경쟁도 치열했으며, 정경유착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이를 심판할 수 있는 선거제도가 있었다. 그러나 멕시코는 시민이 정치인을 견제할 수단이 없었다. 그렇기에 정치인들은 직위를 남용해 축적하거나 측근에게 독점권을 줄 수 있었다. 이러한 뿌리를 통해, 한쪽에서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가 다른 한쪽에는 카를로스 슬림이 부의 열매를 맺었다. 그리고 그는 뒤이어 이야기한다. "난 혁명가가 아니야. 옳은 일을 위해 싸울 뿐이지."     



출처 : 트레이서 공식 트레일러, Blizzard Entertainment


2. 때로는 옳은 일을 해야만 할 때가 있는 것 같아.

    

       혁명가로 태어나는 사람은 많지만, 혁명가로 죽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때로는 혁명보다 옳은 일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지는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일이란 단어 앞에 붙은 '옳은'은 '일'보다는 두 배, 아니 그 이상으로 무겁게 느껴졌다. 일만 정의하기도 복잡한 세상과 삶 속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그에게 현실의 규칙으로 돌아오라 이야기한다. 그러나 시간에 미끄러졌던 그녀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보다 다시 한번 현실과 현재에서 과감하게 미끄러지기를 택했다.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호출명*을 떠올리며 방아쇠를 당기는 시늉을 했다. 대상은 범죄조직이 그 위에 흔히 '혁명가'로 불리는 사람들의 머리였다. 그렇게 발사된 탄환은 사람들이 한때 어린 시절 '좋은 어른' 되고 싶다는 소망의 궤도를 그들이 꿈을 그리던 산책의 속도로 돌았다.

독립 이후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몰아낸 식민정권 및 황제가 지내던 거처에서 살며 동일한 인적 후원 관계를 활용했고, 시장을 조작하고 자원을 착취하는 방법 역시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리혀 종전보다 한 술 더 떴다고 할 수 있다. (p.511-512)


    옳은 일이 옳은 일로 지속해서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어야 했다. 그녀는 위와 같은 악순환 속에서 과두제의 철칙을 발견한다. 과두제와 착취적 경제 제도 속에서 "급진적인 변화를 약속하며 기존의 지도자를 몰아내고 권력을 잡은 새로운 지도자라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는 사실이다.(p.513)" 그는 자신의 고향에서 일어난 명예혁명과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두 혁명과 비교를 시작했다. 앞선 악순환과 세 가지 요인이 크게 달랐다. 첫째, 신흥 상인 및 사업가 계층은 자신에게도 이로운 창조적 파괴의 효과가 파급되길 바랐다. 그렇기 때문에 혁명에 주요한 일원으로 참여하였으며, 착취적 경제 제도에 필사적으로 반대를 했다. 둘째, 명예혁명과 프랑스혁명 모두 광범위한 연합이 손을 잡았다. 두 혁명 모두 소수의 엘리트층의 '쿠데타'가 아니었다. 상인, 젠트리 계층, 산업가 등 다양한 이혜관계자가 벌인 '운동'이었다. 셋째, 양국 모두 의회와 권력 분점의 전통이 있었다. 잉글랜드는 마그나카르타, 프랑스는 명사회의 형태로 권력을 분점했다.(p.514) 다음과 같은 문장을 그는 떠올렸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결론은 명확했다. 착취적 제도하에서는 '사냥하거나 혹은 사냥당하거나'의 논리 속에서 권력을 잡기 위해 투쟁을 불사하는 세력이 많아졌다. 그리고 착취는 유형의 자산이 아닌 정치적 자산으로도 이어져 한층 더 착취적인 세력이 정권이 들어선다. 이런 상황 속에서 누가 국가에 믿음을 갖고 저축과 투자 그리고 혁신을 할 수 있을까. 착취적 제도가 법질서뿐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경제적 인센티브마저 파괴해버려 철저한 정부의 실패로 이어지기도한다. 그 결과 경제는 발이 묶이고, 내전과 대규모 난민 발생, 기근, 전염병 창궐 등의 시련을 겪게 된다.(p.529) 제도적 차이가 결정적이라는 논리에 힘을 실어주듯 아프리카 내에서도 자연적 환경이 크게 다르지 않은 보츠와나는 포용적 제도가 뿌리를 잘 내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토착 제도의 기반 위에 포용적 제도를 수립하려고 근면성실하게 노력했다(p.583)" 


    불의의 사고로 인해 그의 존재 형태가 현재도 아니며 동시에 미래나 과거도 아닌 점은 책의 요지와 맞닿아있다.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는 어디에도 존재할 수 있었으며, 이는 그렇게 역사적 분기점이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도 항상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어느 시점에나 착취적 경제 제도의 씨앗이 발아할 수도, 그 바로 옆에서는 포용적 경제 제도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들이 해나가야 할 임무는 단순히 '악'을 제거하는 것이 아닌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선순환의 물꼬를 트는 일이었다. 그는 이제 동료들에게 이야기한다 "아직 기회가 있을지 몰라. 앞일은 아무도 모르잖아."



3. 저기 잠깐만 들를까?


    한편으로, 책을 쓴 이후에 그는 의문이 가시질 않았다. '과연 내가 투쟁해온 정의가 정말로 참된 정의일까?' 정의를 위해 범죄조직을 소탕하며 국가에 개입하며 더 큰 착취를 하는 '악'이 정권을 찬탈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이 아닌가. 꿈을 향해 열심히 달리던 그는 이제야 그 길 바로 아래 아가미를 널찍이 벌리고 있는 절망의 깊이를 마주한다. 삶에서 현실의 급류에 의해서 중심을 잃으면 꿈의 속력은 쉽사리 절망의 깊이가 되고 만다. 그러한 걱정이 트레이서를 드리울 즈음, 오버워치를 영웅처럼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도 명암이 갈리기 시작했다. 오버워치 내부의 은밀한 조직이었던 '블랙워치'의 부도덕한 행동이 드러나자 해산을 요구하는 여론이 점차 힘을 얻어갔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점차 그들은 테러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점차 테러에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하고 내부에서도 갈등이 일자 오버워치는 설립 당시의 취지와 크게 벗어난다는 이유로 해산되고 영웅들은 세계 각국의 용병으로 전락한다. 해산되는 오버워치 중 트레이서를 보며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흥. 넌 너무 뻔해. 애써 시간을 되돌리고도 늘 똑같은 판단을 하잖아?"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넘겨짚다간 큰코다칠걸?" 그는 사라졌지만, 책은 남았다. 좋은 사람과 책은 늘 좋은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그가 남긴 질문에 답을 해보기로 했다. '똑같은 판단'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뒤이어, 또 다른 책을 집어 들었다. 

"불안정성의 반대는 안정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는 살 만한 삶을 위한 상호의존성이 가능해지는 평등한 사회/정치 질서를 향한 투쟁이다."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주디스 버틀러 저,창비,2020년)


    주디스 버틀러에 의하면, 불안정성의 반대는 안정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유토피아는 안정되고 사람들 역시 아무런 불만 없이 살아가는 세계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안정 자체가 유토피아의 가장 디스토피아적인 면모이다. 반면 디스토피아적 현실에서 가장 유토피아다운 면은 오히려 '불안정성' 그 자체이다. '불안정성'이란 단어는 우리에게 불안을 떠올리게 만들어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 불안정성은 아무런 긍정 혹은 부정의 가치판단을 할 수 없다. 불안정성이 긍정 혹은 부정의 갈림길에서 길은 이후 투쟁이 가진 방향성이결정한다. 위의 여러 나라의 사례처럼 착취적 정치제도를 묵인하고 오히려 가세할 것인가 혹은 포용적 경제 제도에 참여하고 강화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있다. 나는 그러한 투쟁에 참여하겠다는 사람들, 조직, 국가에 '운'은 자주 기회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고 보고 배웠으며 그래서 믿는다. 

    

    그렇기에 시공간을 오가며 트레이서가 힘껏 여러 나라의 사례를 조사한 결과를 국가에만 적용하는 것은 그에게 무척 맥빠지는 일이다. 이 책에서 국가마다 결정적 분기점에서의 중요한 선택은 작게는 개인이, 그리고 그러한 개인이 뭉친 조직에 의해서 내려졌다. 제도라는 단어가 추상적이며 거대하게만 느껴지지만, 오히려 작게는 나로부터 시작해서 내가 속한 가정, 단체, 기업 등에 적용해봐도 충분히 적용이 가능한 이야기이다. 앞선 예시 중 제도에 속하지 않으며 자유로운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 내가 속한 조직과 단체 그리고 국가에도 적용을 해봤다. 



기대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feat. 축적의 길)

우리나라 속 우리 조직이 나아갈 방향은 어떤가요?

[운을 간과하지 말자!]

물론, 경제와 정치제도도 중요하지만, 이 책에서 간과하기 쉬운 결정적 요소 중 하나는 '운'이었다. 개인의 성공에도 '운'이 엄청난 요소이듯, 국가에도 운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나라 역시 현대사에 이뤄낸 경제적 성공에는 운이 많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한강의 기적'과 같은 성공에 대한 기억이 이전에 읽었던 책에서 살펴봤던 '에고'처럼 종종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여러 조직도 이처럼 과거의 성공에 젖어 포용적인 제도를 만들어나가지 못한다. 물론, 이 책에서 우리나라는 북한과 비교되며 성공적인 사례로 묘사되지만, 내부적으로는 '과연 포용적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 아쉬움  

우리나라 혹은 우리 조직 상황에서, 이 책은 어떤가요?

[당연한 것들에 질문을 던지기!]

가끔 당연한 것들에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제도와 같은 시스템을 분석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왜 우리는 연공서열에 따라서 보상이 정해질까요?' 또는 '왜 우리는 9시부터 6시까지 일을 할까요? 우선 진행을 하며 당연한 관습들에 대해 질문을 던져봤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조직에서 연공서열에 따라서 보상을 받는다. 또한 대부분의 경력에 대한 산정 방식 역시 고용보험에 가입한 것을 기준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나 많은 여성 활동가들이 충분한 경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사회적으로는 '경력 단절'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와 더불어, 일하는 시간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해봤다. 코로나 19로 재택근무가 늘어나며, 비교적 업무 시간에 대한 개인의 자유도가 올라갔다. 그런데도 여전히 '근무 시간'은 9-6으로 고정되어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효율이 그때 가장 높을지는 의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포용적인 제도 중 하나로 '개인이 업무 효율이 높은 시간에 일하면 안되는 걸까'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4. 새로운 영웅은 언제나 환영이야!

    

    시간이 흘러 오버워치 박물관에서 다시 이야기가 시작된다. 두 꼬마 아이가 찾아와 박물관에 찾아온다. 한 아이가 오버워치의 트레이서 대사를 따라 하며 형에게 계속 감탄사를 내뱉는다. 그러나 형은 냉소적으로 동생에게 이야기한다. "그게 언제적 얘기냐. 오버워치가 해체된 건 세상이 다 아는데 그리고 걔네 절반은 용병이야." 그러나 그 순간 박물관에 범죄조직이 들이닥치며 오버워치와 결투가 벌어집니다. 트레이서는 아이들에게 이야기힌다. "걱정 마! 얘들아 해결사가 왔잖아" 그리고 냉소적이었던 형이 오버워치를 도와 이들을 물리치는 데 도움을 준다. 전투가 끝나고 트레이서는 두 아이에게 이야기한다. 


새로운 영웅은 언제나 환영이야!


출처: 오버워지 시네마틱 트레일러, Blizzard Entertainment

    포용적인 제도의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일까? 나는 새로운 선순환을 위해 투쟁하는 '영웅'들이 계속해서 탄생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트레이서 역시 윈스턴이라는 과학자에 의해서 살아났다. 만약 국가적으로 그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투자를 해주지 않았거나, 그 이전에 그가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면 그도 없으며 트레이서도 단 한 번의 실험의 실패로 인해 시간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실패하더라도 이를 용인할 수 있는 사회의 분위기였으며, 실패가 실패로 그치지 않고 축적이 되었으며 결국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개인의 실패로 시작한 서사도 성공으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도록 사회가 시스템적으로 도움을 준다. 


    이와 더불어, 위의 트레일러가 감동적인 이유는 냉소적인 아이에게도 영웅의 계보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레비나스가 역설했듯, 정의란 타자에게서 기인할 수밖에 없다. 영웅은 만들어지는 존재이다. 이는 미완의 문장이다. 앞선 문장에서 생략된 단어를 포함해 '영웅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해야 문장도, 영웅도 완성된다. 오버워치의 영웅 중 메르시는 치료를 하며 "영웅은 죽지 않아요"라고 이야기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마치 위의 오버워치가 해체되듯 영웅도 인간이기 때문에 죽고 실패도 겪는다. 그러나 사회의 문제를 놓지 않고 정의를 실현해가는 많은 레퍼런스를 보며 아이들은 꿈을 꾼다. 오버워치의 해체로 인해서 사라졌던 트레이서가 오랜만에 돌아와 아이에게 건넨 새로운 영웅은 언제나 환영이야! 한 마디는 이 책의 의미가 모두 내포되어 있으며, 아이들이 이에 감동을 받는 장면은 선순환이 집약된 장면이다. 



5.현실을 살아가는 마지막 피터팬을 위한 변론 


    이런 트레이서의 모습에서는 드문드문 피터팬이 보인다. 피터팬은 동화 속에서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며 영원히 어린아이로 존재하며 아이들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자라나는 네버랜드를 지켜내려 한다. 그러나 트레이서가 마주하는 현실은 어른과 가까이는 동료의 위선도 득실거리는 냉험한 곳이다. 또한 트레이서는 시간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는 있으나 피터팬처럼 영원히 어린이로 살아갈 수도 없다. 그의 팀과 현실은 오히려 그에게 더욱 빠르게 성숙할 것을 요구한다. 정의와 옳은 일에 대한 고민 역시 그의 네버랜드를 위협하는 요소이다. 그럼에도 트레이서와 오버워치는 현실 속에서 네버랜드를 지켜내고자 한다. 

    

    포용적인 제도 속에 놓은 사람은 아이의 모습과 철학적으로 유사하다. 니체는 사람들이 낙타에서 사자로 마지막 단계에서는 사자에서 아이로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철학 속에서 아이는 현실의 규제에 포섭되지 않은 자유로운 존재다. 이처럼 사회 문제를 향한 다양한 시도 역시 아이와 같은 방향성과 상상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경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다음과 같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누군가가 다쳐서 울기 시작하면 모두 함께 울기 시작한다. 그래서 왜 우냐고 어른들이 물어보면 이렇게 답한다. "친구가 아플 것 같아요." 아이에게는 이렇듯 자아와 타자라는 고정적인 존재와 고통도 유동적이다. 이렇게 공감을 통해, 자아는 타자로 변하고 타자는 자아로 변한다. 누구라도 타자가 될 수 있으며 누구라도 자아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아이와 같은 상상력 속에서 비로소 사람들은 누구든 불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는 상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니체가 디오니소스 축제를 고찰하며 밝혔듯 아이들의 상상력은 무언가를 창조해낼 수도 있지만 파괴할 수도 있다. 자아와 타자의 뒤섞임은 번뜩이는 영감 같은 축복을 줄 수도 있지만 혼돈과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현실 속 피터팬의 주체가 아이가 아니라는 점이 위안이며 시스템이 필요해지는 지점이다.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탄생한 상상력이 추상적인 형태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형태로 자리잡고 선순환의 고리에 올라탈 수 있으려면 포용적인 시스템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렇게 피터팬은 네버랜드를 떠나서도 네버랜드를 지켜낼 수 있다.


*트레이서(Tracer)의 뜻에는 '예광탄'이라는 뜻도 있었다. 탄알의 표적에 명중시키기 위해서 사용되는 예광탄은 불빛을 내며 날아가므로 육안으로 탄도를 관측할 수 있다. 

** 그러나『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에서 주디스 버틀러가 말하는 '투쟁'은 비폭력적인 움직임의 총체입니다.

***위 글의 노란색으로 강조된 문장과 5번의 제목을 제외한 소제목은 오버워치 속 트레이서의 대사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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