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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민욱 Dec 27. 2020

{Li:Fe} The 건강한 이야기를 위해

더 다양하고, The 건강한 이야기

1. 정답보다는 해답 


『롤모델보다 레퍼런스』, 진저티 프로젝트

책 제목만으로도 반가웠다. 『롤모델보다 레퍼런스』는 진저티 프로젝트에서 발간한 책이다. 이 책이 반가웠던 이유는 사회에 조금 더 건강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짧은 인생에 비추어 보는 견해이지만 '롤모델'은 강력한 동기를 부여해준다는 면에서 좋을 수 있으나 결코 건강한 목표는 아니다. 중학교 시절에 독서감상문 수를 채우기 위해 읽었던 『 바로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라는 책은 나에게 '반기문 UN 사무총장'이라는 롤모델을 부여해주었다. 학생인 나는 그처럼 되기 위해서 그때부터 '정답'과 같은 길을 걸어야 했다. 그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서울대 외교학과'였다. 내가 살던 곳은 지방이었기 때문에 우선 서울대를 꾸준하게 보내는 고등학교로 진학해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서울대를 갔던 선배들처럼 공부하고 성적을 맞춰야 했다. 절반 즈음 성공했다.


롤모델은 다양한 삶의 방식이 아닌 마치 수학 해답지에서 봤던 깔끔하고 생략이 많은 정답과 같은 삶을 보여준다. 정답을 따라가다 보니 문제가 하나 있었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경우가 '지역균형'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진학했다. 그러나 아쉬운(?) 2등이었던 나는 다른 전형으로 지원해야 했다. 길을 따라가기만 했던 내가 갑자기 길을 개척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결국 실패했다. 첫 단추가 잘못되니 대학에 입학하고 모든 지향점을 잃어버린 상태로 방황했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다양성에 취약하지만 특히나 꿈, 구체적으로 삶의 방식에 대해서는 특히나 취약하다. 이는 베껴 쓸 수 있는 정답만을 우리가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에서는 하나의 옳은 답인 정답(正答)보다는 질문이나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인 해답(解答)이 더 중요함을 우리는 살아가며 느낀다.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정답 같은 롤모델보다는 그 풀이과정에 참고가 되어줄 무수한 레퍼런스가 중요한 이유다. 



2. 더 다양한 해답 

이 책이 더 건강했던 이유 중 하나는 '일하는 여성'에 대한 레퍼런스를 소개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반문했어야 했다. '왜 대부분의 롤모델은 남성인가?' 어린 시절 함께 외교관의 꿈을 꾸던 친구들 역시 대부분은 반기문을 롤모델로 삼으며 공부를 했었다. 지금은 강경화 장관님이 계시지만 그때 당시 대부분 '누군가처럼 되고 싶다'라고 인물을 꼽으면 대부분이 남자밖에 없었다. 이는 여성 중에 본받을 만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바로 여성에 대한 서사가 우리 사회에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오랜만에 다시 『소년이 온다』를 다시 꺼내 읽었다. 영문명(Human acts)을 함께 머리에 두며 읽었다. 


항쟁 기간 중 실종된 스무 살 정미는 남동생을 공부시키려고 공부하는 것을 포기하고 공장 노동자로 일을 했다. 이는 그 당시 수없이 많은 사람을 겹쳐 놓은 인물이다. 노동자인 선주는 끝까지 도청을 지키다 군인들에 의해 상무대로 끌려가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만다. 그녀 역시 5월 광주의 외침이 어떻게 이후의 노동운동으로 이어지는지 보여준다. 소년이 온다에서 위의 인물들은 모두 스무 살 전후이다. 2017년 개정판으로 세상에 다시 나온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여러 증언들이 위의 인물들이 단순한 소설적 상상이 아님을 아프게 보여준다. 누군가의 고민에 해답이 되어줄, 레퍼런스가 되어줄 삶은 이전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까지의 해답들이 다양하지 않았으며, 한쪽으로 편중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3. 기대 & 아쉬움 


그러나 이러한 인터뷰를 콘텐츠로 한 책에 대해 늘 아쉬움이 남는 점은 20대는 인터뷰어라는 점이다. 호기심 많은 20대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몰입해서 인터뷰이의 대답을 듣고 인사이트를 얻으며 좋은 점도 있지만 아쉽기도 했다. '왜 20대는 인터뷰의 대상이 되지 못할까?' 물론 인터뷰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사고를 겪거나 혹은 20대 창업 성공 이야기 혹은 대학 내부에서는 취업을 잘하거나 고시를 합격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20대로 살면서 나는 앞선 예시보다는 조금 더 디양한 고민들을 더 많이 하고 듣는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20대 남성으로서의 고민, 퀴어의 정체성을 어떻게 부모님에게 이야기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 창작에 모든 것을 바치고 싶은데 번번히 공모전에서 낙선하던 사람의 고민. 내 주위의 사례를 보더라도 하나의 롤모델보다는 조금 더 많고 다양한 레퍼런스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4. The 건강한 이야기를 위해


인생은 우리가 살면서 마주할 가장 복잡한 고차방정식이다. 고차방정식의 해는 여러 가지다. 또한 그 변수 하나, 하나를 대입해 과정이 바로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는 '선택'이 아닐까. 앞서 글의 서두에서의 방황은 군대에서 끝났다. 철이 든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상담 병사로 활동하며, 무수히 많은 삶을 만났다. 그렇게 마주한 삶들이 내가 하던 고민들에 해답을 건넸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오히려 한 사람처럼 살겠다는 목표를 버리니, 모든 사람을 위해서 살 수 있다는 지향점을 건네주었다. 이와 더불어 위의 경험은 내가 겪고 있는 문제를 주위의 사람도 겪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주위에서 실질적으로 도움과 조언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까지만 하더라고 나는 지극히 멀고 이상적인 정답만을 추구했다. 그러나 해답은 가까이에 늘 있었고 도움을 주고 있었다. 영어에서는 유일한 존재의 대상 앞에 The를 쓴다. 우리들의 이야기 역시 유일한 이야기로써 누군가에게 레퍼런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더 다양하고 The 건강한이야기를 위해서 이제는 내가 손을 뻗어 묵혀둔 해답들을 닦아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노력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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