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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민욱 Jan 03. 2021

{Li:Fe}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2020 구글 올해의 검색어와 함께하는 '쉼' 

1. 많은 것을 찾아서 멀리만 떠났지


최근, 나를 문학으로 인도해주셨던 교수님께 안부 전화를 드리며 짧게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다. 목적은 연말 인사겸 새해인사였지만 어느새 문학 이야기에 곁들여 글에 관한 내 고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선생님 수업을 들으며, 처음 글을 쓸 때는 감당하지 못 할 문장을 적어 내려가기도 하고 번뜩이는 문장들이 예언처럼 내려오기도 했었다고. 그러나 요즘은 그렇게 용기를 내어 적지도 영감이 오지도 않는다고 말씀드렸다. 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짧게 조언해주셨다. "쉬어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생각보다 글에도, 삶에도 중요하단다." 고민은 대체로 두서가 없는 법이지만, 고민에 대한 해답은 대체로 짧고 명쾌한 편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작년 한 해 동안 쉬었다고 생각한 날은 한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나아산프론티어 유스에 지원하거나 그 이전에 신춘문예에 도전했던 일, 말레이시아로 떠났던 교환학생, 세움과 닷페이스 후원하기와 같이 내 인생 대부분 중대하고 또 의미 있는 일은 대부분 다음과 같은 순간에 발생했다. 이를테면, 침대를 놔두고 굳이 방바닥에서 온돌의 온기를 느끼며 드러누워 있기, 새벽에 불을 모두 끄고 음악도 틀어 놓지 않고, 핸드폰도 꺼두고 창문만 열어두고 공기의 질감을 느껴보기.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막상 일하면서는 찾기 어려웠지만 그럴 때 머릿속에서 찬찬히 부풀어 올랐다. 그렇게 진정으로 쉬는 시간 동안 시선이 관점으로, 지식이 지혜로, 사건이 경험으로 쌓여갔다.


한 해 동안, '보람'이라는 이름으로 분주하게 살았다. 보람이 가득했던 한 해 동안 최선을 다해 방황했다. 나와 멀리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과 만나며 우리라는 말의 경계에 대해 계속해서 물음을 던졌다. 그러한 사람들을 만나는 데에는 많은 힘이 들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쉼과 기록의 순간에서 나는 계속해서 내가 가진 기존의 '우리'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확장시킬 수 있었다. 이전에만 하더라도 나는 똑같은 일상을 쉬이 지루해했다. 지겨워진 학교를 가로질러 매일 똑같은 역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교통카드를 찍고 똑같은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그러나 우리의 경계가 확장되자 누군가의 쉼에 대해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학교의 도보 한 가운데 버려진 쓰레기를 보며, 아직도 열악한 학교 청소 노동자분들의 아침에 대해서 생각이 들기도 하고 지하철에서 열리는 스크린 도어를 보며 지난해에 일어났던 비극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2. 소중한 건 모두 잊고 산 건 아니었나


나만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올해 코로나 19로 인해서 세상이 잠시 멈췄다. 비극이 대부분이었으나 인류는 늘 가장 디스토피아적인 상황 속에서 유토피아를 만들어가며 우리는 그것을 '인류애'라고 부른다. 구글이 2010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Year in search'에서 올해는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출처 : pixabay
   #어떻게_도울_수_있을까요
 '돕는 법'과 관련해 인기 있었던 검색어로는 오스트레일리아 산불 피해 돕는 법,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M)운동 돕는 법, 코로나바이러스 피해 돕는 법, 베이루트 돕는 법 등이 있었습니다. '돕는 법'에 대해 검색을 하며, 사람들은 시스템에 대해 더 체계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나 지난해 6월, 사람들이 인종차별을 영속화하는 제도와 정부 관행, 경제 시스템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서 구조적 인종차별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검색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출처: 닷페이스
 #우리는없던길도만들지
처음으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가 전 세계에서 검색되었다. 작년에 비하면 검색 횟수도 5배 증가했다. 이 과정에서 매년 항상 높은 자리를 지켜왔던 '인플루언서가 되는 법' 검색은 '서로에게 힘이 되는 방법'에게 자리를 그 자리를 내주었다. 2020년 6월, '동료가 되는 법'에 대한 검색이 '인플루언서가 되는 법'에 대한 검색을 크게 상회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 공감하고, 여전한 차별에 맞서기 위해서 구체적인 실천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전 세계에서 광범위한 온라인 캠페인을 펼쳐 편견을 뿌리 뽑고 흑인 및 히스패닉의 인권을 개선하려는데 힘썼다.





출처: pixabay
#저축보단_기부하기
지난해, 우리나라는 뜨거웠던 주식시장과 더 뜨거웠던 부동산으로 '부'에 대해서 관심이 크게 늘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는 우리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 집중했다. 사람들은 저축하는 법보다 기부하는 법을 두 배 더 많이 검색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많은 전문가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타당하다. 역사는 회귀하지 않는다. 우리는 위와 같이 타인에 대해서 생각하며, 과거로 돌아가기보다는 더 나은 미래가 도래하기를 바랐다. 그 결과, 세상을 바꾸는 법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법보다 2배 더 많이 검색되었다.




3.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한국은 쉼에 대해서 너무나 인색한 사회다. 쉼에 관한 책이 베스트 셀러에 오르고, 명상이나 요가를 다루는 채널에 백만 명이 넘는 구독자가 몰리는 이유는 우리가 잘 쉬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지 못함의 반증이다. 특히나 청춘은 요즘 너무나 바쁘다. 1학년은 이중 전공을 상경계열로 신청하기 위해서 학점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고 대외활동을 위해서 영상 제작을 배우거나 포토샵을 배워야 한다. 2학년이 되면 군대에 가거나 대외활동 혹은 교환학생을 위한 준비를 한다. 이후의 자소서를 위해 한 번에 3~4개의 대외활동을 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3학년 때는 뒤늦게 대외활동을 하거나 인턴을 위해서 자격증도 취득한다. 4학년에는 그렇게 경험을 쌓고 본격적으로 취준생이 된다. 나의 이야기이며, 우리의 이야기다.


그러나 1년 휴학을 하며, 돌아보니 청춘은 분주하게 살아도 가치 있는 시절이지만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기도 좋은 시간이었다. 나아가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책 밖의 사람들을 만나며, 나는 어디쯤 왔나, 어떻게 저 사람은 이곳까지 오게 되었나, 이 길 위에 나만 있는 것은 아닌가.  아픈 생채기를 많이 남기고 있는 코로나 19가  인류에게 남긴 교훈은 잠시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의 건강을 돌아보며, 우리의 건강도 잘 챙기라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을 때, 우리는 성공이나 행복을 향하기보다는 실패 혹은 비극을 향해 달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달려가고 있는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다. 간절하게.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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